[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한 이후 12년이 지났지만, 같은 참사가 또다시 반복됐다. 화재 원인, 대규모 수사팀 구성, 사후약방문식 정치인들의 방문도 동일하다. 이제는 그 패턴이 눈에 보일 정도로 익숙하다.
12년 전 40명 사망 이천 냉동창고 화재 그리고…
40명의 희생자를 낸 2008년 1월 7일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는 역대 1월 화재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다. 이 불로 냉동창고 지하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57명 중 40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현장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인화성 물질인 우레탄폼 작업과 용접이 동시에 진행됐다.
당시 많은 인부들이 대거 작업했지만, 공사 현장에는 관리감독관 배치 등 별다른 안전조처가 없었다.
참사를 수사한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현장 총괄소장 정모(당시 40세)씨와 현장 방화관리자 김모(당시 40세)씨 등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했다. 이와 함께 코리아냉동 대표 공모(당시 47세·여)씨와 전기감리업체 대표 박모(당시 42세)씨 등 공사관계자 12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과 배임수재, 뇌물공여, 소방시설공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했다. 뇌물수수와 직무유기 등 혐의로 이천소방서 소방관 정모(당시 39세)씨 등 4명도 입건됐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사고에서도 38명이 숨졌다. 세월호 이후 안전 불감증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지만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어 보인다. 사고원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결과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앞 참사를 보면 어떻게 흘러갈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번 화재도 공사장 지하 2층에서 우레탄폼 작업 중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됐다. 화재원인도 12년 전과 같다. 아직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현장에 안전관리자를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건설 노동계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이 조직 문화, 안전 관리 시스템 미비 등으로 사업장 등 다중이용 시설에서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을 경우 법인·사업주·경영 책임자 등에 대해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강한수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마련되지 않아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사고에서 배관 용접 노동자에게 화재 사고의 책임을 물었다. 건설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일용직 용접공에게 2008년 화재 사고의 가해자로 지목하고 범법자로 만들었다. 건설기업이 아니라 노동자를 범죄자로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산업연맹은 "발주처는 안전이 확보된 공사 기간을 보장해야 하며,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입찰제도 불이익 등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책임기업과 책임자 처벌, 희생자 가족에 대한 투명한 정보 제공 등을 조치하라"고 강조했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도 "해마다 안전사고로 2000여 명이 죽는다. 2008년에 이어 이천 화재참사가 다시 빚어졌다"며, "20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징벌적 손해배상법, 생명안전법, 국민안전부 신설법 등이 처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법부가 첫 단추를 잘못 꿰어 경찰 수사도 솜방망이 처벌로, 사법부도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참사가 일어나서야 당내 노동현장대형안전사고방지대책 특별위원회(노동안전특위)를 설치하고 특위 위원장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3선 전혜숙 의원을 임명했다. 이제야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 사건과 관련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등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선다고 한다.
이해찬 당대표도 최고위에서 "정부는 철저한 조사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작업 구조나 안전관리 제도 등 근본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당도 특위를 구성해 법과 제도를 다시 한 번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당정은 재난대비 제도 정비와 강화를 21대 국회의 핵심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더 이상의 국민 희생 없어야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참사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제도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번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박종필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정부가 건설현장의 기술근로자의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음에도 현장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지 못해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법 체계를 변경하길 강력히 촉구한다. 철저히 수사해 명명백백 밝히도록 수사기관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사고로 수많은 가족이 사망했다. 당시 정부는 법을 개선해서 다시는 이런 화재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우리 국민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매번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의 안일한 생각과 함께 법이 개선되지 않아 또 우리 가족들이 희생됐다. 매번 사고가 날 때마다 법을 개정해서 철저히 관리한다면서 원인 규명도 안된 사건이 많다. 유족들은 이번 사건의 시공사, 건축주, 감리사 협력업체의 책임소재와 원인규명이 돼 국민이 희생되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에 강력히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