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새 예루살렘 성곽의 셋째 기초석은 옥수입니다. 옥수는 보통 반투명한 백색을 띠며 회색, 청색, 적색을 띠는 것도 있습니다.
옥수의 영적인 의미는 ‘결백과 희생적 사랑’입니다. ‘결백하다’는 것은 행동이나 마음씨가 깨끗하고 아무런 허물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옥수에 담긴 영의 마음입니다. 희생적 사랑이란 내 것을 다 내어주되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마음이지요.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기 때문에 상대를 위해 희생한 만큼 자신도 받기를 바라며, 기대한 만큼 받지 못하면 공허하고 슬퍼집니다.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가 미워지기도 하고 가까이했던 사람과 원수를 맺기도 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과 다름없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우리의 가난을 대신 담당하고자 가난한 길을 가셨습니다.
갖가지 병을 고쳐 주고 연약한 사람을 강건케 하시며,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소망이 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오직 선과 사랑만을 베풀었지만 악한 사람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고 채찍에 맞으셨으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의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못 박고 조롱하는 이들을 위해 끝까지 사랑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아무런 흠과 티가 없는 분이 죄인인 인간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하셨습니까.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아무 대가를 바라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처럼 조건 없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 옥수가 의미하는 참사랑입니다.
룻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모압 여인으로 이스라엘에서 흉년을 피해 이주해 온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모두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리자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며느리들에게는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삶을 찾으라고 권합니다. 한 며느리는 사양하다가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하지요.
그녀에게 희생적 사랑이 없었다면 이렇게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전적으로 룻이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그것도 자신에게는 낯설고 아무 연고도 없는 땅에서 말입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를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룻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희생적 사랑이 단지 인간의 도리를 좇은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나온 영적 사랑임을 뜻합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에 온 룻은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낮이면 들에 나가 열심히 일해서 얻은 양식으로 시어머니를 정성껏 섬겼습니다. 이러한 룻의 진심 어린 선행은 자연히 그곳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시어머니의 친족 중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를 만나 많은 복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고 낮추면 자기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희생하지 못하지만, 아무 허물없는 깨끗한 마음, 곧 어떠한 사심도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 되면 오히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드러납니다. 그 선과 사랑이 영적인 빛으로 비춰지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아름다운 희생적 사랑을 이루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요한계시록 21:19)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