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강화군의 석모도 해명산이다. 오늘 아침, 작은딸이 교원임용시험의 시험감독으로 일찍 나간다고 해서 덕분에 집사람과 나도 아침 일찍 서둘러 석모도의 해명산 등산을 준비하였다.
바다를 볼 수 있는 해명산은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받으며 산과 바다의 정취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산이다.
석모도는 ‘돌이 많은 해안 모퉁이’라는 뜻에서 ‘돌모로’를 한자화(漢字化)하면서 석모로(石毛老)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설이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인 보문사가 있는 섬으로, 2017년에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 대교가 개통한 뒤로는 육로를 통하여 직접 갈 수가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본 해명산의 들머리 격인 전득이 고개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가 조금 못 되었다.
그래도 주차장에는 예닐곱 대의 자동차가 벌써 주차되어 있다. 일출을 조금 넘긴 시간이라서인지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모자와 장갑까지 단단히 챙기고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초입부터 도로를 가로지르는 예쁜 출렁 구름다리가 등산의 기대를 부풀게 한다.
초입의 등산로는 바로 오름세가 이어지지만 그리 경사도가 심한 편은 아니라 초보 산행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오르는 산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가끔 미끄럽기는 하지만 오르는 구비 마다 보이는 바다 풍경이 새로운 느낌이다. 산의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구고 겨울 준비로 몸을 잔뜩 움츠려 약간은 살풍경일 듯한데도 오름의 높이에 따라 변하는 바다의 풍광이 그렇게 신선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오랜만에 보는 색다른 바다의 모습에 잠시 앉아 코코아 한잔을 마시며 바다에 떠오른 해를 바라보기도 한다. 한참을 오르다 만난 여학생들은 일출을 보러 일찍 올랐다 내려간다 한다. 서해는 낙조라는데 젊은 사람들은 일출이 더 좋은가 보다. 우리도 아침 일찍 서둘렀건만,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항상 있는 것도 세상인가 보다.
드디어 한 시간을 못 미쳐 오르니 해명산(324m) 정상이다. 석모도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에서는 서쪽 바다의 이름 모를 섬들이 아른거린다. 정상에서 그냥 내려오기에는 너무 짧은 산행에 대한 아쉬움으로 다시 상봉산(316m)으로 방향을 튼다. 정상을 떠나 주변 바다를 보면서 능선을 따라 낙가산으로 가는 길은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주위의 나무들은 그 이름을 잘 모르지만, 수형(樹型)으로도 잘 알 수 있는 진달래가 무척 많다. 그 많은 진달래 나무를 보며 내년 봄에도 꼭 다시 와서 활짝 핀 진달래를 보고 싶다는 집사람의 소망을 들었는지 이 초겨울의 계절에 철모르게 꽃을 피운 한그루 진달래가 있어 얼른 사진에 담는다. 허 참! 가끔 가다가는 철모르는 돌연변이가 사는 것도 세상인가 보다.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며 많은 봉우리를 넘어서는 능선길은 그리 험하지 않은 산행길로, 바다와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곳곳에 있어 긴 거리를 지루하지 않게 지날 수 있다. 역시 석모도는 이곳저곳 기이한 모양의 돌이 많은 섬이 분명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앞에 바위가 많은 산이 보이고, 그 산모퉁이를 돌아 바라보이는 바다 쪽 방향에는 보문사 주차장이 보인다. 조금을 더 주차장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발아래 보문사 절이 보인다.
몇 년 전 집사람과 다녀온 보문사.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은 절로, 낙가산의 ‘낙가’는 관세음보살이 있는 인도의 ‘보타 낙가산’에서 따온 이름이고, 보문사의 ‘보문’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특히, 이 바위 아래 암벽에 새긴 ‘마애관세음보살 좌상’으로 낙가산의 보문사가 유명하다. 이 때문에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3대 해상 관음 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발아래 절과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자니, 육조혜능 선사의 일화가 생각이 난다. 오조홍인 선사의 승인을 받고 의발(衣鉢)을 갖고 길을 떠나다 어느 절에 들어갔는데 마당에 있던 두 스님이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저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논쟁을 하고 있을 때, 혜능 선사가 나서서, “바람이 흔들리는가, 깃발이 흔들리는가, 다만 마음이 흔들릴 뿐이다”라 하지 않았다던가.
사람의 마음은 또 어떠한가.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얼마 전 읽은 프라우커 바구쉐 작가의 <바다생물 콘서트>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열대의 바다에는 흰동가리라는 물고기가 있단다. 이 흰동가리류의 물고기는 <니모를 찾아서>라는 디즈니 영화로 더욱 유명하다.
작은딸이 어렸을 때 좋아하던 영화라서 기억하는데, 그 내용은 엄마가 꼬치고기에 잡아먹히고 아빠와 사는 ‘니모’가 수족관 물고기를 거래하는 잠수부에 납치되어, 아빠 물고기가 우여곡절 끝에 ‘니모’를 찾아 함께 말미잘 숲으로 돌아온다는, 미국 디즈니 영화 특유의 꿈과 모험을 찾는 줄거리이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단다. 이들 흰동가리는 처음에는 수컷으로 태어나, 물고기 한 쌍과 한 마리에서 여러 마리의 새끼 물고기들로 살아간다. 가장 큰 물고기가 암컷이고 그다음으로 큰 물고기가 기능적인 수컷이다.
대부분 오렌지, 흰색,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이 작고 예쁜 물고기들은, 암컷이 죽으면 집단 내의 두 번째 큰 물고기, 즉 성숙한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고 어린 물고기 중 덩치가 큰 물고기가 기능적 수컷이 된단다. 현실은 ‘니모’ 엄마가 잡아 먹히면서 남겨진 아빠와 아들, 즉 아빠는 암컷으로 성전환이 시작되고 이어 ‘니모’는 번식 능력을 갖춘 수컷으로 발달한다. 이제 ‘니모’는 성적으로 성숙한 유일한 수컷이기에 둘은 짝짓기를 하고 근친상간을 통해 후세를 생산한단다.
또한, 해마의 출생은 어떤가. 수컷이 직접 임신하고 출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히는 먼저 암컷이 수컷의 몸에 난자를 낳고 수컷이 그 난자를 품고 있다가 새끼를 직접 낳는단다. 그렇게 저 바다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세계를 품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암수의 역할도 세상에는 뒤집히는 경우가 다양하다. 불가에서는 세상에 선도 악도 없다고 한다. 선도 악도 다 마음에서 일어나니 그 마음을 다잡으라 한다. 원철 스님의 책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에서는 이런 말도 있다. 꿈이란 한 사람이 꿀 때는 꿈이지만 모두가 꿀 때는 현실이다.
금강경은 그 꿈을 이렇게 말했다. “모든 법이 본래 꿈인 줄 알고 보라.” 제대로 알고 보면 꿈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세상을 내 마음의 선과 악으로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숲에서 배우고 싶다.
보문사와 바다를 바라보며 헛된 망상을 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본다. 낙가산은 해명산과 상봉산 사이의 커다란 암석 바위인지 정상 석도 없어, 노란 국가 지점 번호판에 누군가가 써놓은 ‘낙가산 정상 235m’ 표시를 못 보았다면 그저 지나칠 뻔하다.
서둘러 내려온 보문사 정문 앞 터미널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하고 전득이 고개로 향하는 순환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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