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러시아가 9일(현지시간) 전승절 78주년 기념식을 대폭 축소 개최한 것은 전략적으로 의도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옛 소련이 독일 나치 정권을 상대로 항복을 받아낸 5월9일을 기념, 매년 수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성대한 군사 퍼레이드(열병식)를 포함한 전승절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하지만 이번엔 규모와 시간 모두 예년보다 대폭 축소됐다. 붉은광장 열병식은 10여분 짧게 진행됐고 전시한 군사 장비도 초라했다. 붉은광장에 홀로 나온 소련 시절 탱크 'T-24'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원된 병력도 예년만 못했다. 2020년 1만4천명이었던 열병식 동원 병력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첫 해인 지난해 1만1천명으로 줄었고, 올해엔 8000여 명에 불과했다. 2008년 이후 최소 규모다.
동원된 8000명의 병력의 대부분 사관생도였다. 러·우 전쟁에 참전한 병력은 530명이었다.
우크라이나와 15개월째 전쟁 중인 탓에 군 장비와 병력을 동원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분석이 많지만 일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적'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국내 반발을 피하려는 시도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의회 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동유럽 전문가이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루드밀라 이수린 교수는 "푸틴은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의 아들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을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국가가 전쟁 중일 때 성대한 축하 행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들의 사고 방식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펜실베이니아대학 로더연구소의 에카테리나 로코만 정치학 강사는 "불멸의 연대 행진이 제한적이었던 것은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피하려는 것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푸틴 대통령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행사 규모가 축소됐다는 것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고 더힐은 전했다.
안톤 게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트위터에 "(열병식엔) 현대식 탱크, 보병전투차량, 항공기가 없었다"면서 "10분도 채 되지 않았던 러시아 역사상 가장 작은 (행사) 중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에서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러시아 국민은 AP통신에 "(열병식이) 약했다"면서 "우리는 속이 상했지만 괜찮다. 앞으론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