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속의 고독한 사람들은 내 자신의 반영일 것이다.”(에드워드 호퍼)
고독은 보통 불행한 감정이라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그 고독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단체를 통해 여러 만남을 갖고 분주히 살아간다. 하지만 고독을 피할 수는 없다.
현대인의 고독을 자신의 회화에 주요 주제로 삼은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전시에 올해 상반기 최다 관객이 몰렸다.
지난 4월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인기는 광풍이라 할 정도였다. 미술관에 따르면 4월 20일 전시 개막에 2000명이 다녀갔고 6월까지 매일 티켓이 매진이었다. 7월18일 현재 23만6천명이 관람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의 어떤 점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호퍼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가장 많이 갖춘 뉴욕 휘트니미술관과의 협업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 등 뉴욕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이 아닌 작품은 빠져 호퍼 팬들에게는 다소 섭섭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등 에드워드 호퍼의 주요 작품이 포함된 국내 최초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호퍼 그림의 특징은?
호퍼는 1920년대부터 30년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국이 현대화 되어 가는 시대에 사람들이 겪었던 고독과 소외감, 욕망과 좌절, 권태 등 인간의 정서, 감정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호퍼의 말처럼 그림 속 고독한 사람들은 곧 자신을 반영했다. 대공황과 생명과 환경을 무자비하게 파괴시키는 전쟁을 지나 고도로 발전되어 가는 사회상 속에 뼛속까지 추워지는 외롭고 비참한 심정을 호퍼는 화폭 속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한 호퍼의 말처럼 그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독감과 욕망과 좌절 등을 표현하고자 애썼다. 그의 시선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흘려버리는 평범한 것”에 머물고, 대상과 공간을 세심히 관찰하여 포착된 현실은 호퍼 특유의 빛과 그림자, 대담한 구도 그리고 시공간의 재구성 등을 통해 자기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호퍼의 그림은 풍경 너머 내면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모습은 우리와 닮아 있다.
목회자이자 시인, 사상가였던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는 힌두교를 미국에 도입하고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에머슨은 자신을 신뢰하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적 사상과, 자연과 신과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범신론적인 초월주의 철학 입장에 섰다. 모든 개인 안에 신성(神聖)이 들어있기 때문에 개인은 초월적인 존재라는 초월적 개념을 주장했다. 그는 세속을 싫어하고 자연 속에서 사색을 쌓아 ‘문학적 철인’이라고 추앙받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이상주의는 젊은 미국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자기 안의 신’을 주장했던 그는, “내가 가르친 유일한 교리는 ‘개인의 무한함’(the infinitude of the private man)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호퍼는 에머슨을 대단히 존경해 그의 저서를 보고 또 볼 정도로 빠져들었으며, 에머슨의 사상을 받아들여 긍정적인 고독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호퍼는 애늙은이처럼 9세(1891)에 뒷짐을 진 채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소년의 뒷모습을 스케치(사무엘 테일러 콜리지의 <늙은 선원의 노래> 중)할 정도로 일찍부터 고독감을 알았던 것 같다.
대도시의 고독과 욕망...
그의 작품 중 ‘밤의 창문’(1928)을 보자. 이 그림은 고가 철도를 타고 가며 호텔 방 창문 너머를 그린 것이다. 20세기 초 뉴욕은 오늘날과 같은 대도시로 변모하던 시기로 마천루가 형성되고, 지하철과 철도에 이어 자동차 보급이 확산되며, 다리와 고속도로가 잇따라 건설됐다. 하지만 호퍼의 관심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 풍경보다 낡고 사라져 가는 19세기 건축물의 코너나 지붕 등을 포착하는 데 있었다.
특히 그는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대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의 삶을 관찰해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밖에서 실내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적 시선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장치인 ‘창문’을 통해 도시인의 일상을 묘사한 데서 드러난다. 진부한 호텔 방 속에 핑크빛 속옷을 입은 익명의 여인의 뒷모습만 보고 느낀 욕망은 호텔 방 커튼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창문의 커튼처럼 가볍게 날린다. 도시의 고독은 심연처럼 깊다.
20세기 대표 아이콘이라는 ‘잠 못 드는 사람들 Nighthawks’(1942년)은 카페의 유리창 안에서 본 ‘대도시의 고독’이다. 두 거리가 만나는 길모퉁이, 뉴욕의 그리니치 애비뉴에 있는 밤샘 레스토랑에서 호퍼는 영감을 얻었지만, 특정 지역을 넘어서는 시대적 보편성을 가진 작품이 되었다. 세 명의 고객이 앉아있는 밤샘 식당에 비치는 차갑고 윙윙거리는 형광등 불빛 아래, 조리사를 포함해 늦은 밤을 함께 지새우는 네 사람, 함께 있지만 모두 외롭다. 인간의 고립과 도시의 공허함, 썰렁한 형광등 불빛 속에 현대인의 고독이 잘 포착되어있다.
호퍼는 “무의식적으로, 아마도 나는 대도시의 외로움을 그리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지나가다 본 어느 가정집 창 안의 장면을 그린 ‘뉴욕의 방’(1932년)에서는 권태로움을 그렸다.
호퍼는 1920~1930년대 도시의 밤 풍경을 자주 그렸다. 호퍼를 흠모한 작가 조너선 샌틀로퍼는 호퍼의 작품 ‘밤의 창문’에서 영감을 받아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인공의 빛, 자연의 빛
호퍼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영역인 ‘빛’ 은 그가 오랫동안 천착한 부분이다. 빛을 활용해 공간에 대한 존재감과 마치 그 공간에 누군가가 있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색상, 빛, 명암으로 주조해낸 그의 세계에선 인간의 감정이 느껴진다. 호퍼가 그린 도시의 밤을 비추는 빛은 당시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빛이다. 호퍼가 고안해 낸 회화적인 빛이다.
도시의 인공광이 도시의 고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빛이라면 자연의 빛은 호퍼가 그린 여러 낯선 감정을 견딜 만하게 만들고, 그의 그림을 결정적으로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적인 요소이다. 그림 ‘햇빛 속의 여인’ 속 여인도 문득 햇빛을 향해서 일어섰다. 손에 들려 있는 타 들어간 담배는 그녀가 꽤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지체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햇빛이다. 빛이 강렬한 만큼 그녀의 뒤에 따르는 어둠도 깊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종류와 크기는 호퍼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다. 고독감, 소외감, 불화, 좌절감 등이 우리를 찾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호퍼의 많은 그림들에서 인물들은 빛을 향한다. 빛이 거기에 있으므로.
조세핀이 기증한 휘트니미술관 자료로 구성
이번 전시에는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 점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의 자료 110여 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누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휘트니미술관은 1968년에 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1968)에게 작고한 남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2,500여 점과 작품 관련된 정보를 꼼꼼히 기록한 장부를 기증받았다. 또 휘트니미술관은 2017년에 아서 R. 산본 호퍼 컬렉션 트러스트가 보유한 4,000여 점의 아카이브를 이어받아, 에드워드 호퍼와 관련된 독보적인 연구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작가가 선호한 장소를 따라,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작품의 지평을 넓혀간 호퍼의 65년에 이르는 화업을 돌아본다.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케이프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의 7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에서는 작가의 예술세계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어릴 때의 경험과 기억을 표현하는 작품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