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입학 시즌을 맞아 학비가 필요한 대학생들을 노린 불법 다단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아르바이트를 가장하거나, 취업을 미끼로 학생들을 판매원으로 모집한 뒤 대출을 받게 하고 신용불량자로 내몰고 있다.
‘고수익’ 내세운 일자리로 유혹
최근 공정위는 판매원 가입 조건으로 수백만원에 이르는 물건을 구입하도록 3만여명에게 1천100여억원의 피해를 야기한 대학생 다단계업체 2개사를 적발했다. 방문판매법상 판매원 가입조건으로 부담을 지울 수 있는 행위는 연간 5만원 이내만 가능하다. 이에 공정위는 대학생들을 노린 불법 다단계 소비자 피해주의보를 발령했다.
우선 ‘고소득’을 내세운 일은 한번쯤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불법 다단계 업체가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수법은 소속 판매원들이 친구나 동창, 군대동기 등에게 연락해 취직을 시켜주겠다며 만남을 약속하고 당초 말했던 회사가 아닌 다단계 회사 또는 합숙소로 유인한다.
그런 다음에 합숙소 생활이나 교육을 강요한다. 합숙소에서는 상위 판매원들이 기상부터 취침까지 밀착 관리를 하면서 교육을 받도록 한다. 교육은 성공사례 발표 등을 통해 판매원으로 등록하면 ‘학비 마련’, ‘평생 고수익 보장’ 등의 감언이설로 세뇌교육을 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고소득’을 명목으로 구인`구직 광고를 올려 학생들을 모집하기도 한다. 연락이 오면 면접을 보러 오도록 한 뒤 휴대폰을 가입하게 하거나 쇼핑몰 분양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아낸다.
인터넷에서 휴대폰 판매 구인광고를 본 구직자 K모씨는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말에 휴대폰을 사고 쇼핑몰을 200만원에 분양 받았다. 속았다는 것을 알고 구매 당일 업체 측에 계약취소를 요구했으나 환불이 불가하다며 대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돈을 벌러 갔다가 되레 쪽박을 차고 온 셈이다.
한 지방대학에 다니던 박군은 어느 날 군대동기 윤군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만나게 됐다. 윤군은 자신이 서울의 의류회사에서 월 180만원을 받고 일하는데 취직을 시켜주겠다며 이력서를 보내라고 했다. 이력서를 보낸 지 3일 만에 윤군은 박군이 취직이 됐다며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군대 동기는 갑자기 일자리가 네트워크 회사로 바뀌었다며 이왕 올라온 김에 회사에서 일주일만 교육을 받아보자고 말을 바꿨다. 어쩔 수 없이 박군은 윤군을 따라 다단계 회사로 갔다가 이들이 운영하는 합숙소까지 동행하게 됐다.
합숙소 생활은 창틀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윤군은 “합숙소 방장의 지시에 따라 소지품을 박스에 넣었는데 키를 방장이 관리하고 있어 마음대로 짐을 꺼낼 수가 없어 탈출 할 수도 없었다. 급한 일이 생겨도 상위 판매원 허락 없이는 외출도 금지됐다”고 그곳 생활을 전했다. 회사나 교육센터로 이동할 때도 이탈 방지를 위해 단체로 이동하고 합숙소에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TV와 신문은 물론 휴대폰 소지도 금지했다. 휴대전화 사용 시에는 상위 판매원이 귀를 가까이 대고 엿듣는 방식으로 감시했다.
갈수록 수렁에 빠져... ‘신불자’ 전락
매일같이 이어지는 교육은 물품구매를 위한 자금마련이나 성공담 등이 주를 이뤘다. 회사가 미리 짜놓은 일정에 따라 제품성명, 합숙생활의 당위성 등과 부모로부터 돈을 구하는 방법, 대출방법 등의 교육내용이다. 피해자들은 “상위 판매원의 성공담을 통해 물품을 구매하고 판매원으로 활동하면 월 1천만원의 고수익을 벌 수 있다고 세뇌 당했다”고 토로한다.
불법 다단계 회사들은 부모로부터 돈을 타게 하거나 고이율의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아 물건을 사게 한다. 상위 판매원들이 대출을 받도록 집요하게 권유하며 거부할 땐 차상위 판매원들이 폭언, 폭행, 협박도 일삼는다. 물품구입을 거절하면 상위 판매원과 1대1 면담을 통해 물품구입을 경정할 때까지 면담을 지속한다고 한다.
물품구입을 결정하면 상위 판매원에게 이끌려 대출대행회사를 방문하여 대출을 받는다. 박군도 저축은행에서 800만원을 대출받아 물건값으로 580여만원, 소매마진 명목으로 군대동기에게 130만원, 합숙소 비용으로 월 3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60만원만 남았다. 이는 ‘덫’에 걸린 것과 다름없다. 일단 대출을 받게 되면 대출금을 갚기 위해 다단계 업체의 불법 행위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자신의 손해를 또 다른 3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구입한 물품은 환불이 불가능하다. 원칙적으로 반품이 불가능하도록 교육을 시킬 뿐 아니라 동료 판매원들로 하여금 물품을 사용 도는 음용하는 방법으로 환불을 방해한다.
불법 다단계 사진, 메모 등 증거자료 내야 피해 입증
악순환은 계속된다. 대출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후원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는 직급으로 승진해야 한다며 물품구매를 부추긴다. 추가대출을 받게 하거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친구 등을 유인해 물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박군도 1천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물건을 사고 후원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는 직급으로 승급했다. 하지만 후원수당으로 받는 돈은 교육받은 내용과 달리 몇 만원에 불과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다단계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취한 반면, 피해 학생들은 20대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승급 후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박군은 합숙소를 탈출했으나, 남은 건 마음의 병과 1천800만원의 빚이 전부였다. 현재 박군은 ‘신용불량자’ 상태이며,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아도 이자율이 높아 이자 감당도 어려운 상황이다.
공정위는 “대학생 불법 다단계는 올릴 수 있는 구조라 인간관계를 해치고 피해확산이 빨라 사회적 문제가 된다”며 “불법 다단계 업체는 일반사업자와 달리 모든 업무가 구두나 암묵적 지시 형태로 이뤄져 불법 행위 증거자료 확보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사진, 메모 등 기록을 남겨 신고시 증거자료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법 다단계 피해를 봤다면 공정위(www.ftc.go.kr)나 경찰서(경찰청 마약지능수사과(02-3150-2368) 또는 각 지역 경찰서 수사과 지능팀)에 신고해야 한다. 미등록 다단계의 경우 신고포상금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직접판매공제조판조합(02-566-1202)에도 신고 가능하다.
한편, 물품구매후 환불을 원할 경우 다단계회사에 직접 신청하거나, 회사가 응하지 않을 경우 공제조함(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02-2058-0831, 직접판매공제조합 02-566-1202)에 신청한다. 판매원은 물품구매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소비자는 14일 이내에 환불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