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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처음엔 강하게, 갈수록 섬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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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처음엔 강하게, 갈수록 섬세하게 정성을 다하여 공략해야 한다.]

 ***1홀 . 파4. 295미터. 핸디캡16. 좌측으로 굽은 형세의 하향 홀이지만 송림에 가려 그린이 보이지 않음. 우측은 오비. 송림을 넘길 만큼 탄도가 높은 드라이버 샷을 구사한다면 원온을 노려볼 만도 함. 그러나 낮은 탄도의 구질이라면 공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숲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음. ***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게 비어있다. 소슬바람이 머리카락 몇 낱을 기분 좋게 띄워 올린다. 바람결에는 거름냄새도 희미하게 실려 있다. 발아래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거름냄새의 근원지인 것 같다. 거름냄새는, 비록 코에 닿는 느낌은 고약할지라도 어릴 적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포근함이 있다. 어린 날, 뒷산에 올라 쌉싸름한 옹달샘물로 목을 축이고, 버려진 무덤가의 풀밭에 누워 바라보던 하늘 그 시리도록 맑은 가을하늘이 오늘도 똑같이 광목자락처럼 펼쳐져 있다. 나는 지금 풀숲을 뒤져 메뚜기를 잡고 싶다. 

"오너를 정해야죠?"

민호씨가 쇠막대기를 뽑아들며 말했다. 

"우리 제비뽑기로 하지 말고 딴 방법으로 오너를 정하자구요."

첫 홀에서 특이한 방법으로 오너를 정하자고 우기는 건 경희의 버릇이다. 

"아무리 신호등이 있어도 교통순경의 수신호가 우선이니까, 우리도 로컬룰을 앞지르는 규칙을 정하면 되지 머. 경희야 너 하고 싶은 방법을 제안해봐. 만장일치로 따라 줄 테니." 

경희는 물지게를 진 형국으로 드라이버를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선 몸통을 좌우로 돌려보고 있다. 

"오늘은, 잘 생긴 순서도 아니고, 살 많은 순서도 아니고, 우린 다 같은 동갑내기이니까 정신연령이 높은 사람부터 칩시다. 자, 정신 연령이 우리 넷 중에서 제일 높다고 자신하는 사람부터...."

"그럼 이 몸을 오너로 모시겠습니다."

꺽정씨를 오너로 만들려는 경희의 계략인 줄을 나는 미리 알았다. 그 계략에 말려들어 꺽정씨는 자랑스럽게 티잉그라운드로 오르고 있었다. 

낚시꾼은 절대로 천당엘 못 간다고 한다. 놓친 고기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낚시꾼 중에서 팔이 짧은 사람은 구제받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2미터가 넘는 고기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어도 팔은 고작 1미터 남짓이나 뻗을 수 있을 뿐이니까. 

그럼 골프꾼들은 어떤 거짓말을 할까. 

꺽정씨가 언젠가 낚시꾼처럼 말했었다. 첫 홀에서 드라이버가 제대로 맞았더니 그린에서 퍼팅 중인 사람의 머리 위로 공이 날아갔다고. 그래서 맞아 죽을 뻔 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먼저 진위여부가 궁금했고 두 번째로는 그린에 있던 앞 조가 공에 맞아 죽을 뻔했는지, 공을 날린 꺽정씨가 앞 조에게 매 맞아 죽을 뻔했는지 분간을 못했다. 

아무리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내리막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단번에 공을 300미터나 날릴 수 있을까. 

"정말 드라이버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렸단 말이죠? 믿을 수가 없는데..."

이미 티를 꽂고 있는 꺽정씨의  채 가방 안을 흘끔 넘겨보며 말했다. 짐작대로 그는 3번 우드로 티샷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드라이버는 가끔 오비를 내서 동반자에게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3번 우드는 거의 오차가 없다. 

"초짜나 스푼으로 티샷하는 거 아닌가?"

꺽정씨에게도 들리도록 경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그가 나를 뒤 돌아 본다. 3번 우드와 드라이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윙크를 날려준다. 

잠시 후 꺽정씨는 무슨 커다란 결심이라도 한 듯, 뽑았던 3번 우드에 헤드카바를 씌운다. 그리고 비장한 얼굴로 장검을, 아니 드라이버를 뺀다. 그는 여자의 야유에는 맥을 못 추는 순진함이 있다. 소녀 앞에서 어쭙잖은 힘자랑 하려는 풋내기 소년 같다. 

나는 솟구치는 웃음을 간신히 이빨로 혀를 눌러 참는다. 남자들만의 내기가 붙은 플레이였다면 그는 결코 드라이버를 휘두르진 않을 것이다. 

그는 내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벼슬세운 수탉처럼 오만하게 힘 좀 과시하려다가 소나무 숲속으로 공을 집어넣고 만다. 어쩐지 오늘만은 행운의 여신이 내 손을 들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첫 홀이라 몸도 안 풀렸을 텐데... 힘 깨나 쓰셨네..."

"역시 강한 남자는 멋져. 그치? 경희야."

경희의 킬킬거림에 내가 한마디 보탰다. 꺽정씨의 입 모양을 보니 올라오는 욕을 삼키고 있다. 신사 체면에 숙녀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티샷 만회하는 거야 뭐."

격려인지 야유인지 모를 소리를 한 사람은 민호씨이다. 

나는 꺽정씨가 위기에서 멋지게 탈출하는 장면을 숱하게 보아왔다. 오늘 같은 첫홀의 실수도, 실수의 만회도 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나는 꺽정씨가 공을 찾는데 도와주기로 했다. 꺽정씨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햇빛과 바람을 적당히 걸러주는 나무 사이를 걷노라니 삼림욕장에 들어온 듯 심신이 맑아진다. 폐부에 스며드는 초록의 공기가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그의 공은 소나무 밑동에 얹혀있었다. 둥치 밑에 콱 처박히길 바랐는데, 그래서 벌타를 먹고 드롭하는 불상사를 겪기를 바랐는데, 행운의 여신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가 캐디에게 3번 아이언을 달랜다. 기다란 3번 아이언을 들고 소나무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경희야, 꺽정씨 저런 자세로 어떻게 공을 친대니? 한 타 먹고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지 않니?"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는 거의 무릎이 땅에 닳을 정도로 엎드린다. 클럽의 샤프트 중간부분을 잡고선 하키경기에서 스틱으로 공을 밀어내듯 톡 쳐낸다. 공이 30미터를 굴러 그린 위로 올라온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입에서 감탄사가 연발한다. 

경희와 나의 두 번째 샷은 그린 앞 벙커에 빠졌다. 우리 둘은 사이좋게 벙커에서 탈출했다. 벙커 턱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 피칭웨지를 사용하여 잔디가 없는 맨땅에서 런닝어프로우치를 하듯이 굴려 올렸다.

꺽정씨는 파, 나는 3온에 2펏을 해서 보기를 했다. 첫 홀부터 기분이 꿀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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