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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음주 후에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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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홀. 파5. 458미터. 핸디캡13. 티잉그라운드 바로 아래에 워터 해저드인 연못이 있음. 연못에서 살고 있는 비단잉어의 유유자적한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골프장의 배려로 누구나 산뜻하게 넘길 수 있을 만큼 연못의 길이가 짧음. 남성골퍼는 투 온을 노려봄직함. *** 


[신이 내린 스포츠, Golf & Sex. 음주 후에 하면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수가 있다.]

"전 여긴 버디가 기본입니다."

얼굴이 불콰해진 꺽정씨가 말했다. 우리는 그늘집에서 따끈한 청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가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는 그늘집에서 술을 마시면 티샷이나 두 번째 샷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무리가 없다기보다 알코올은 비거리를 늘리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퍼팅이 문제였다. 퍼팅라인도 잘 안보일 뿐더러 공이 스위트 스폿에 맞아주지 않았다. 그린이 좌우로 갸웃갸웃 고개를 흔드는 것 같았다. 키 속의 곡식알처럼 까불리는 기분일 때도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의 스산한 날씨가 온기를 그립게 했고, 13홀의 버디가 알코올을 불렀다. 그래서 청주로 목을 축였다.

"그늘집 다음 홀을 조심하랬어요. 민호씨, 연습으로라도 용왕제 지내지 마세요."

나는 진심으로 민호씨를 위해서 충언을 했다.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물에 공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민호씨, 미안해요. 아무 말 안하고 조용히 있었더라면 해저드를 의식하지 않았겠죠?"

"아닙니다. 술 탓이에요."

나는 물론 연못 같은 장애물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골프구력의 밥그릇 수는 채웠다. 

"굳 샷, 오늘 제일 잘 맞은 공, 오잘공이죠?"

캐디의 말처럼, 클럽헤드에 한참 동안 공이 붙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공은 알맞은 탄도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휘지 않고 날아갔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무지개처럼 굽은 구름다리 위에서 그늘집에서 사 가지고 온 건빵을 던진다. 구수한 냄새를 맡은 비단잉어 한 떼가 몰려온다. 붉은 놈, 누런 놈, 허연비늘 위로 흑갈색의 점이 박힌 놈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몰려온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있어 보이는 황금빛 잉어 한 마리가 물방울을 튀기며 수면을 차고 뛰어올라 건빵을 채뜨려간다. 

연못의 반은 연잎으로 덮여있다. 연잎 위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잉어들의 요동에 놀라 얼른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여름에는 붉은색, 담홍색, 가끔은 흰색의 연꽃들이 싱그럽게 피었었다. 한여름 아침이면 마치 극락정토처럼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연꽃들이 함초롬히 피어 우리를 맞이했었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그 꽃만은 맑고 깨끗해서 불가에서 만다라화로 존중되고 있다 한다. 또한 연꽃은 웅변으로 명성을 날리는 명사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연잎은 바람난 여자라는 은어로 쓰이기도 한다. 연은 묵화에도 등장하고, 시(詩)에도 자주 등장하는 꽃이다. 옛 풍류객들은 연당(蓮堂) 안에 별당을 짓고 연잎으로 술을 빚어 즐겼다고도 한다. 

"심청이 방석이 다 스러져 버렸군."

지나온 세 개의 파5홀 모두에서 더블보기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만회를 해볼 요량으로 정신을 집중시키는데 또 걱정씨가 허파에서 바람을 뺀다. 

"만다라화라고 하면 좀 유식해 보일 텐데. 기껏해야 심청이 방석이라니...."

내가 해야 할 말을 경희가 해 버린다. 

"심청이가 용궁에서 타고 나온 가마가 연꽃 아니었습니까. 연꽃이 좌악 벌어지면서 심청이가 샤악 나왔대죠. 그 모양을 본 임금님이 눈이 휘이떡 뒤비지면서 뭐라 한 줄 알아요?"

좌악, 샤악 휘이떡 따위의 의태어에 강세를 넣는 말투로 보아 꺽정씨의 취기가 오르고 있나 보다. 

"당연히 모르죠."

"지미, 시팔년 동안 온갖 년들을 보아 왔으나 저렇게 아름다운 쌍년은 처음 보도다, 이랬대요."

꺽정씨는 평소에 내게 불만이 많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술기운에 편승했다지만 저런 상소리를 뱉을 수 있을까.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 

"남의 일이지만 심히 걱정되네요. 한국말 발음을 그렇게 밖에 못해요? 발음 교정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짐이 십 팔 년 동안 온갖 연(蓮)들을 보아왔으나 저렇게 아름다운 쌍연(雙蓮)은 처음 보도다, 이렇게 해야죠."

내 목소리에는 잔뜩 가시가 돋아있다. 

"김작가, 유식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별거 아니구만, 원래는 련(蓮) 또는 년(蓮)이라 했어요. 그래서 붉은 꽃을 붉을 홍(紅)자를 써서 홍련화(紅蓮花), 흰 꽃은 흰 백(白)자를 써서 백련화(白蓮花)라고 부르죠."

꺽정씨는 어흠 어흠 큰기침까지 하면서 목에 힘을 주며 목깃을 올린다. 한방 먹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흥분하면 해롭다. 엔돌핀 분비에 방해가 된다. 

어느 봄날이었던가, 부처님이 탄생했다는 사월 초파일이 가까워서 절마다 연등만들기가 한창이었던 날이었을 것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 내려다 본 연못은 물이 안보일 정도로 연잎이 가득 떠 있었다. 여인의 앙다문 입술 같은 분홍색의 연꽃들이 초록색의 연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서 있는 내 치마를 들추고야 말겠다는 듯이 바람이 불었다. 연잎도 연꽃도 우쭐우쭐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티샷한 공이 연못을 넘지 못하고 연잎에 올라 앉아버렸다. 내가 깃털처럼 몸이 가볍다면 연잎 위를 사뿐히 걸어서 다른 연잎을 딛고 공을 쳐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공을 집어낸다면 나는 언플레이어블 선언하고 한 벌타를 먹고 한 클럽 이내에서 드롭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해저드에 빠졌다고 간주하고 재차 티샷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어찌할까 잠시 망설이는 동안 내 눈앞에서 연꽃들의 꽃술이 일제히 열리면서 동화 속에서 나오는 엄지손가락만한 작고 예쁜 여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극락세계에서는 모든 신자가 연꽃 위에서 신으로 태어난다고 믿었다는데, 나는 꽃으로 장식한 족두리를 쓰고 홍삼을 입은 요정 같은 여자들이 내 공을 은쟁반에 받쳐 들고 연잎 위를 사뿐히 걸어 나와서 녹색의 잔디에 공을 내려놓는 모양을 보고 있었다. 

연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이 오색영롱하게 햇빛을 반사시키면서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었다. 

나는 그 봄날의 착시현상을 떠올리며 연못을 바라본다. 다듬이 방방이보다 더 크고 굵은 비단잉어 한 마리가 탄력도 좋게 수면 위로 솟구쳐 날며 인사한다.

두 번째 샷이 잘 맞아주지 않는다. 뒤땅을 쳤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가 보다. 공은 겨우 100미터 남짓 날아간다. 그러나 파5홀에선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다음 샷에 기대를 걸어보자. 

꺽정씨의 두 번째 샷은 포경선의 작살처럼 날아갔다. 거의 그린에 오른 것 같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걷는다. 나는 자기암시를 넣는다. 다음 샷은 성공할거야. 

골프는 역시 맨탈게임이다. 마인드 컨트롤은 효과가 있다. 5번 우드로 친 공이 그린 가장자리에 붙었다. 핀과는 2미터쯤 되는 듯싶다. 지난 홀의 버디에 이어 파를 잡았다. 

꺽정씨는 버디를 할 줄 알았는데 파로 마무리한다. 나는 다음 홀에서도 이 상승기류를 몰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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