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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동병상련 (同病相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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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하에 공개되면 창피하지만 가까운 친구들 앞에선 자랑을 못해서 안달하는 경험 중에 혼외정사와 음주운전이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왜 그런 것을 훈장처럼 내보이려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제가 가슴이 아프거든요.”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가을엔 남자들이 더 고독해 진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연속해서 세 홀을 헤매던 김 이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공 안 맞는 것하고 가슴 아픈 것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병이 들었다는 개인사를 사랑의 고백인양 내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일 까닭은 더욱 없다.

가슴이 아프기로 들면 내가 훨씬 더 아프리라. 나는 가슴과 머리가 동시에 쓰리고 아리다. 엄청난 손재수를 당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난데없는 유산상속이나, 눈먼 돈이 생기는 길뿐이다. 누구를 붙들고 하소연한다고 도움이 있을 것도 아니기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가슴과 골치를 앓고 있다.
“엄살 부리지 말고 빨리 쳐요. 이제 몸 풀렸으니까 잘 될 겁니다.”
김 이사는 자분치가 희끗거리는 40대 후반의 남자다. 명예를 존중할 줄 아는 기품이 있는 신사이다. 그리고 나와는 막상막하의 골프실력을 가진 호적수이다. 서로 핸디 주고받을 것 없이 맨몸으로 부딪쳐서 승부를 가려왔었다. 나는 그가 지금 겨우 세 홀을 헤맸다고 내게서 핸디를 얻어내려는 품위를 손상시키는 작태를 벌인다고 생각했다. 
내 호통에 그는 끽소리 못하고 티잉그라운드로 올라갔다. 원래 공이란 자신 없게 휘두르면 더 안 맞게 되어있다. 우려했던 대로 티타늄 헤드가 지면과 마찰하며 불을 번쩍 일으켰다. 뒷땅을 친 것이다.

“부싯돌 한번 좋습니다. 제대로 맞았으면 오비일 텐데 또옥 바르게 갔습니다. 뒷땅에 오비없다고 옛 성현들이 말씀하셨잖아요.”
남의 불행을 내 행복의 발판으로 삼는 사람은 악인이다. 하지만 나는 놀부의 심보를 가졌는지 남이 실수하는 걸 보면 유쾌하다. 얼른 나무 뒤로 숨어서 그가 안보는 틈에 웃었다. 그리고 위로의 대사를 읊었다.
“몽댕이 잡아서 온 시켜서 원펏, 그러면 버디잖아요.”
그는 스푼을 잡고 다시 푸덕거렸다. 나는 치올라오는 웃음을 지그시 이빨로 눌러 물고 또 한번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럼 쓰리온에 원펏, 파로 끝내세요.”

내 머리 속은 윤활유가 잘 도는 기계처럼 매끄럽게 회전하고 있었다. 저 친구, 이번 홀에선 보기하기도 어렵겠구나, 만약 내가 파를 한다면 배판이니까 이익도 두 배가 되는구나. 나는 즐거운 상상만 펼쳤다. 
그는 다섯 번째 샷에 간신히 그린에 공을 올렸다. 컨씨드를 주기에는 공과 홀 사이가 너무 멀었다. 나는 먼산바라기를 하며 딴청을 피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귀만 열었다. 홀로 공이 굴러 떨어지는 음향이 울리지 않았다. 돌아보니 공은 홀 가장자리만 핥고 나오고 있었다. 
“거시기, 아니 퍼터가 부실한 건가. 뺨 맞을라고 넣을래다 말아요?”
홀마다 이기면  재미가 없다. 조이는 맛도 없어지고 플레이가 느슨해진다. 
“실연을 하고 나니 퍼터가 말을 안듣누만. 구멍마다 문전박대야.”
유부남의 연애란 은밀한 사안이다. 농담이라면 다르지만.
“실연이라고라? 왕년에 누군 실연 안 해봤나. 티 내지 맙시다.”
나는 농담으로 받기로 했다.
“짤렸어요.”
애인과 이별했다는 말 같다. 헷갈린다. 농담이 진담 같아진다.
“몇호 앤하고 헤어졌다는 야그? 앞으로 할 일은 순위정리구만.”

오랜 친분이 있는 동안 나는 그를 단정한 남자라고 믿어왔었다. 그는 아름다운 부인과 영특하고 착한 아이들을 자랑했었다. 그가 애인이 있다는 정보는 줍지 못했었다.
“김 작가 애인 서열 말석에 이름이나 올립시다.”
장난으로 날 떠보려는 수작인가. 그가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 파악이 쉽지 않다. 
그는 얼마 전에 내게 과학소설을 쓸 수 있겠느냐며 의뢰를 해왔었다. 내가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학을 전공한 다른 소설가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과학소설 쪽에 접근이 용이하리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과학소설을 쓴다면 지원하겠다는 스폰서가 있어서요.”
배려는 고맙지만 난 과학소설을 쓸 능력이 없었다. 돈이 눈앞에서 아른거렸지만 거절이 아닌 포기를 해야 했다.

“써놓은 장편소설이 있어요. 연애소설이에요. 그거나 연재할 지면이나 알선 해봐요.”
“맨날 자기 연애한 얘기만 쓰고...”
빈정거림인가. 그의 말투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천국에 다녀와야만 천국 이야기를 씁니까? 남극에 안가고도 남극 얘기 쓴 사람보고 사기꾼이라곤 안하던데. 간접경험이죠.”
“에이 거짓말. 실제로 연애를 안 해보고서는 그렇게 리얼하게 못씁니다.”
“소설 쓰는 사람의 상상력을 그리 얄팍하게 보다니. 이젠 간접경험도 밑천이 떨어졌으니 김 이사 연애 얘기 해봐요. 내가 근사하게 픽션으로 꾸며볼게요.”
그늘집에 앉아서 노닥거리는데 캐디가 부른다. 따뜻한 난로를 남겨둔 채 나가기가 싫다. 난로의 불꽃을 껴안고 다닐 순 없을까. 
“공이나 칩시다.”
모자를 집어 들고 푸석푸석한 풀 위로 내려서는 그의 뒷모습엔 우수가 묻어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나무의 맨 몸통을 흔들어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마저 떨어뜨린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온 돌개바람은 낙엽을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겨울의 예감이 증폭된다.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바랜 풀들도 맥없이 쓰러져 눕는다. 그의 처진 어깨로 낙엽 하나가 견장처럼 내려앉는다. 외로움도 전염되는가. 가슴에서 고드름이 자라고 있다.

그는 떠나버린 여자를 잊으려고 골프에 열중한다고 했다. 공이 딱 맞는 순간만 빼고는, 어디든지 그녀의 환영이 따라다닌다고 했다. 
“시내버스 떠나면 관광버스 온다는데, 궁상떨지 말고 애인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홀가분하게 한잔 합시다.”
19홀은 해방파티였다. 그가 아무리 실연의 고통을 호소해도 나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덕담도 유행가 가사이다.
“세월이외에는 약이 없어요.”
취기를 가누지 못하는 그의 고개가 가슴팍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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