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천국과 지옥

URL복사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하늘 한 귀퉁이가 찢어진 듯 장대비가, 아니 기둥비(이런 단어는 사전에  없지만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장대비라 한다면, 하늘과 땅을 잇는 물기둥이 선 듯이 퍼붓는 비를 나는 기둥비라 부르고 싶다.)가 땅을 헐어내고 있다.

오늘은 골프 약속이 있었다. 골퍼들의 골프약속은 칼처럼 예리하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번개가 치나 티오프시각 30분전에 클럽하우스 집합이다. 예외는 골프장의 휴장 뿐이다.
엊저녁의 호우주의보가 오늘 아침에 호우경보와 낙뢰주의보로 바뀌면서 골프장 측으로부터 휴장 통고가 왔다. 비옷과 우산과 장갑도 5개나 챙겨넣었는데, 맥이 풀렸다. 오늘 하루는 할 일없는 백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긴 기상대에서는 일주일 전에 오늘의 장마와 태풍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기상대의 일기예보가 미쓰샷이기를, 기상이변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부킹을 따내는 사람들이 골프광이지 않은가.
골퍼들에게 물어보라. 내일의 일출은 몇 시이며 일몰은 몇 시 몇 분인지, 다음주 수요일의 최고 기온과 강수확률과 강수량이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해. 골프장의 부킹시각은 일주일 전에 결정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골퍼들은 일주일 후의 날씨에도 예민하다.
무엇을 할까. 옷장에 좀약도 넣어야 겠고, 우편물들도 찬찬히 살펴봐야겠고, 밑반찬도 몇 가지 장만해야겠고, 청탁 받은 원고도 미리 써놓으면 마감날 임박해서 밤샘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그러나 아무것도 하기 싫다.

골프백에서 채를 꺼낸다. 엊저녁에 닦은 채는 잘 벼린 도끼날처럼 빛난다. 장갑을 끼고 그립을 쥔다.  어드레스, 왜글, 테이크백, 저절로 백스윙이 시작된다. 거울에 스윙폼을 비쳐보고 몸을 왼쪽으로 꼬았다가 풀어본다.
퍼터를 꺼낸다. 퍼팅메트 위에는 흰 공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공을 가지고 논다. 가까이도 멀리도 보내본다. 공의 엉덩이를 차보기도 하고 발목을 때려보기도 한다. 가다가 서 있는 공을 다른 공으로 밀어보기도 한다. 이내 싫증이 난다. 지루하고 허리가 아프다.
창가에 의자를 옮겨놓고 앉는다. 유리창에 조롱조롱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창밖의 풍경이 호수에 비친 물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나른하게 졸음이 몰려온다. 눈꺼풀은 내리 덮이지만 여전히 퍼터는 쥐고 있다. 

님 찾아 꿈길을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떠나
밤마다 오가는 길 언제나 어긋나네
이후란 같이 떠나서 노중봉(路中逢)을 하고저.
                                -황진이의 꿈-

시냇물이 바위틈을 흐르는 소리를 따라간다.  햇빛을 걸러주는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을 따라 걷는다. 나는 지천으로 널린 풀을 훑어 씹어본다. 맞닿은 이의 끝을 찌르는 풀의 독향에 나는 잠시 아찔하여 눈을 감는다. 눈을 뜨니 내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어디선가 만난 듯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어서 오세요. 기다렸어요.”
나는 남자와 그루터기에 앉는다.
“여기가 어디에요? 전 시냇물을 따라왔는데요.”
“여긴 지옥이에요.”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휘돌려 사방을 돌아본다. 싱그러운 나무의 숨결, 재잘대며 굴러가는 시냇물소리, 온몸을 휘감아오는 꽃향기에 숨이 막힌다. 화려한 깃을 뽐내는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우리를 환영하듯 지저귀고 있다. 발 밑은 비다듬어진 잔디이다. 우리는 지극히 아름다운 골프코스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이다.
“여긴 천국.. 아닌가요?”
진한 향기를 뿜어내며  요염하게 피어있는 꽃송이에 코를 묻으며 내가 말한다.
“아닙니다. 여긴 지옥이에요”.
그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저는 하느님을 만났답니다. 하느님이 제게 천국과 지옥 중에서 가고 싶은 곳을 택하라 했습니다. 저는 천국이건 지옥이건 골프장이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지요. 그래서 제 소원대로 온 곳이 여기 지옥입니다.”
“여긴 파라다이스에요. 어찌 이런 곳이 지옥일 수가 있어요?”
그는 내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푼다.
“지옥은... 골프장만 있고 골프채는 없는 곳입니다.”
바라만 보는 골프장이 있는 곳, 골프장은 있으되 골프는 할 수 없는 곳, 좋아하는 골프를 할 수 없는 이곳은 정녕 지옥인가...
그렇다면 골프장과 골프채,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필요한 것일까.  골프장만 있고 골프채는 없는 곳이 지옥이라면, 골프채만 있고 골프장은 없는 곳, 그 곳은 지옥인가 천국인가. 그리고 골프채도 골프장도 없는 곳은.
“제가 천국을 보여드리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그가 내 손을 잡아 이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저자거리이다. 

행인의 왕래가 빈번한 지저분한 지하도에서 남루한 행색의 사내가 구걸을 하고 있다.
“저 거지의 천국은 바로 이곳이랍니다.”
도박 골프에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된 사람이라고 한다.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엎드려서 구걸을 하는데 깡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아니 홀에 공이 홀인 하는 소리를 하루에 18번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듣는다고 한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달려간 추억의 골프코스에서, 그린 위를 지쳐간 공이 상쾌하게 홀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깡통 안에는 돈이 고여있단다. 그러므로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하냐고, 나는 천국에서 사는 것이라고, 거지는 주장한단다. 

“어쩌면 천국과 지옥은 마음속에, 그리고 현실에 공존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물론  좋은 골프장에서 좋은 벗과 어우러져 골프를 즐긴다면 그야 말로 금상첨화, 그게 천국 중의 천국이겠지만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시퍼런 칼날이 하늘을 갈기갈기 찢는다. 뒤이어 달려온 뇌성벽력이 고막을 진동시킨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남자의 품으로 뛰어든다.
낮잠 속의 짧은 꿈이었나. 나는 놓쳐버린 퍼터를 줍고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공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빗발은 더욱 거세게 창문을 난타하고 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이스라엘 전시내각, "이란에 강력한 재보복 결정"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이란의 공격에 "강력 재보복"을 결정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재보복할 경우 다시 공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전시내각이 이란의 공격에 "분명하고 강력한" 재보복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스라엘 매체가 전했다. 15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채널12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시내각이 이란에 "분명하고 강력하게" 반격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스라엘이 "이 정도 규모의 공격을 무반응으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채널12에 따르면 이번 대응은 향후 자국 영토가 공격받을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에 다시 나서겠다는 이란의 경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도출됐다. 보복 시점은 이르면 15일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번 대응이 중동 전쟁을 촉발하거나 대(對)이란 연합을 무너뜨리는 걸 원치 않는다며, 미국과 행동을 조율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 액시오스에 따르면 전시내각 일원인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전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통화에서 이란이 탄도 미사일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번 공격 계기가 된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

정치

더보기
‘巨野’ 민주 원내대표 선거...김민석·서영교·김병기·박찬대 등 하마평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 첫 원내 사령탑을 다음 달 3일 선출한다. 이번 선거는 친명계 인사들 간 경쟁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7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는 5월3일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차기 원내대표가 원(院) 구성을 준비하기 위해 조속히 원내대표 선거를 해서 뽑을 필요가 있다는 인식하애 의결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당헌에는 원내대표를 매년 5월 의원총회에서 선출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해 9월 선출된 현 홍익표 원내대표는 중도 사퇴한 전임 박광온 전 원내대표의 잔여 임기를 수행한다. 통상 3~4선 의원이 맡는 게 관례인 차기 원내 사령탑 후보로는 이번 총선에서 3선, 4선에 성공한 친명계 중진 의원 10여명이 거론되고 있다. 4선 의원들 가운데 총선 상황실장을 맡았던 김민석 의원을 비롯해 최고위원인 서영교 의원이 후보로 거론된다. 박범계·남인순·한정애 의원 등 4선 중진 의원들도 하마평에 이름을 올렸다. 3선 의원들 가운데에서는 최고위원인 박찬대 의원, 수석사무부총장인 김병기 의원 등을 비롯해 강훈식, 김성환, 박주민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분실 신고한 여권 맡기고 고가 카메라 대여 후 출국한 30대 일본인 여성 구속
(영상=인천경찰청 제공) [시사뉴스 박용근 기자] 여권을 분실 신고한 후 분실 신고한 여권을 담보로 고가의 카메라와 렌즈를 대여 후 출국하는 수법으로 4000만원 상당을 편취한 30대 일본 국적의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인천경찰청 공항경찰단은 18일 일본 국적 A(30대·여)씨를(사기)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9일 서울 한 카메라 대여점에서 카메라 등을 대여한 후 반환하지 않고 일본으로 출국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대여점 업주는 카메라에 설치된 위치정보장치(GPS) 신호가 인천공항에서 감지돼 이를 수상이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A씨가 출국 직전에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대여 과정에서 여권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전에 여권을 분실 신고한 후 재발급 받아 분실 신고한 여권을 대여 업체에 맡기는 수법으로 범행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3차례 걸쳐 국내에서 4079만원 상당의 고가의 카메라 등을 대여한 뒤 반환하지 않고 일본으로 가지고가 처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고가 전자제품에 대한 대여업이 성행하는 만큼 유사 피해가 발행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

문화

더보기
첼로 레퍼토리의 틀을 깬 거침없는 연주, 클래식라운지 ‘심준호 첼로 리사이틀’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매해 첼로 레퍼토리의 틀을 깨며 강렬하고 도전적인 리사이틀을 선보인 심준호가 꿈빛극장 기획공연 ‘클래식라운지’를 통해 음악 팬들과 만난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는 클래식라운지 ‘심준호 첼로 리사이틀’은 오는 5월 11일(토) 오후 5시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꿈빛극장에서 진행된다. 이번 공연은 피아니스트 신재민의 탁월한 반주와 함께 이뤄지며, 유려하고 웅장한 첼로 연주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심준호는 지난해 ‘슈만’을 주제로 해 첼로로 편곡된 연가곡 ‘시인의 사랑’과 세 명의 첼리스트와 함께 ‘첼로 협주곡’을 선보이며 연주력은 물론 기획으로도 극찬을 받았다. 그 연장으로 이번 ‘클래식라운지’에서 ‘브람스’를 선보인다. 독주와 협연,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오가며 이미 국내 음악계에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 심준호는 이런 제한적인 첼로 레퍼토리에도 매년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구성하며 리사이틀을 선보여왔다. 본격적인 국내 연주활동을 하기 전 신예였던 2015년 이미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하루 만에 완주했고, 터키 출신의 피아니스트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진정한 리더는 용장 지장 아닌 소통 능력 갖춘 덕장이어야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오전 용산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한 4·10 총선 결과에 대해 “취임 후 2년 동안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미흡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총선 참패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고, 192석을 차지한 야당을 향한 대화나 회담 제안 등이 없어 야당으로부터 대통령은 하나도 변한 게 없고 불통대통령이라는 이미지만 강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여당의 총선 참패는 한마디로 소통부재(疏通不在)와 용장 지장 스타일의 통치방식에서 비롯된 참사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윤석열정부는 출범 2개월만인 2022년 7월부터 각종 여론조사기관 조사결과 윤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가 40%이하였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적 평가가 40%이하로 떨어진 시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약 3개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1년 10개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2년 5개월이었던데 비해 윤대통령은 2개월로 가장 짧았다. 윤정부 출범하자마자 특별히 이슈가 될 만한 대형사건들이 없는데도 역대 가장 빠른 민심 이탈의 이유는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