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창진 기자] 굴곡졌던 한국 축구사 만큼이나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들의 개인적인 사연도 많다.
축구대표팀 슈틸리케호의 김봉수(45) 골키퍼 코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김 코치는 1988년 카타르 아시안컵 준우승의 한을 품고 있다. 한국이 지난 26일 이라크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을 때 언론에 거론된 바로 그 27년 전 대회다.
한국은 1988년 대회를 끝으로 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번번이 8강 혹은 4강에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김 코치는 선수로 한 번, 지도자로 또 한 번 결승을 밟게 됐다.
대한민국 축구 선수로 좀처럼 누리기 힘든 값진 경험을 앞둔 김 코치는 이를 두고 운명 또는 숙명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2015년 현재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 당시의 준우승의 한을 풀기 위해 구슬땀을 쏟고 있다.
호주와의 결승전을 사흘 남겨둔 28일 그는 취재진과 만나 27년 된 추억을 끄집어냈다. 빛바랜 앨범에서 발견한 오래전 사진처럼 반가우면서도 설렘을 떨치지 못했다.
당시 18세로 고려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김 코치는 하늘 같았던 선배 조병득(57)에게 밀려 벤치만 지키다가 우연한 기회로 딱 한 번 골문을 지켰다.
당시 조병득이 경고누적으로 이란과의 조별예선에 나올 수 없자 김 코치가 장갑을 꼈다. 그리고 다시 벤치로 돌아가 대선배들의 활약을 응원했다.
당시 한국은 준결승에서 중국을 2-1로 꺾고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만났다. 0-0의 팽팽한 흐름을 깨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3-4로 져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뒤로 한국은 27년 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는 너무 어려 결승전이 갖는 의미를 잘 몰랐었어요. 내가 국가대표가 됐다는 것이 마냥 좋았을 때였죠."
김 코치는 당시의 솔직했던 심경을 털어놨다. 선배들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 힘들었고, 엄격했던 선후배 사이가 어려웠다. 황선홍(47) 포항스틸러스 감독과 김봉길(51) 전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이 유일한 또래였다.
27년 전 풋내기였던 그와 불혹의 나이를 지나선 지금의 그가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결승 진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누구보다 우승이 더 간절하다.
김 코치는 "여기 오니 감회가 새롭다. 선수로 왔을 때와 코치로 온 지금과는 기분이 상당히 다르다"면서 "당시는 어려서 몰랐었는데 지금이 우승에 대한 마음이 훨씬 간절하다"고 말했다.
27년 전 그 자신이 서 있던 자리는 현재 제자인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이 버티고 있다. 직접 그라운드 위에서 뛸 수 없지만 김진현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있다.
자신이 맛보지 못한 아시안컵 우승도 김진현을 통해 간접 경험을 했으면 하는 마음 역시 간절하다. 김 코치는 "(김)진현이가 너무 잘 해주고 있어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다.
27년 전 낯선 카타르 땅에서 보낸 한 달. 고향이 그리워, 또 준우승이 아쉬워 흘렸던 눈물을 간직하고 있는 김 코치는 어렵게 잡은 우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는 그의 표현대로 운명인지 숙명인지 모른 채 끌려온 아시안컵 결승 무대를 앞두고 "마무리를 잘 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