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상미 기자]지하철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가니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 조끼를 입고 노란 모자를 쓴 2명의 여자가 눈에 띄었다. 경광등을 흔들며 나를 집까지 안전하게 안내할 도우미, 최숙경(46)씨와 최소영(31)씨를 19일 자정을 코앞에 두고 만났다.
여성 안심귀가스카우트는 서울시가 늦은 시간 귀가하는 여성들이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게 집 앞까지 동행해주도록 선발한 사람들이다. 올해는 총 420명을 뽑았으며 선발인원 중 85% 이상인 361명이 여성으로 구성됐다.
근무시간은 주5일 하루 3시간(밤 10시부터 새벽 1시)이며 월 급여는 75만원(4대 보험 본인부담금 및 수당 포함) 수준으로 지급 받는다.
2013년 첫 도입됐으며 주된 업무는 크게 '안전 귀가지원'과 '취약지 순찰'이다. 안전 귀가지원은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늦은 시간 귀가하는 여성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일이다.
지난해 귀가지원 10만2139건, 순찰 10만3830건, 계도 6만8091건의 활동실적을 올렸으며 큰 호응에 힘입어 서비스 대상을 여성에서 공부를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청소년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지하철역 도착 30분 전쯤 120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하니 구청 야간당직실과 연결이 됐다. 이후 '안심귀가스카우트인데요 지하철역 어느 쪽에서 기다릴까요 고객님'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개찰구 앞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곧 도착해요'라는 문자를 보내자 '1호선 맞으시죠'라는 문자가 거듭 오며 위치를 확인했다.
이윽고 개찰구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났고 우린 동행을 시작했다. 사실 지름길인 산길로 가면 5분 만에도 갈 수 있지만 가로등이 없는, 말 그대로 으슥한 산길이라 일몰 후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보통 저녁 8시가 넘어가면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15분 정도가 걸리는 길로 돌아가곤 한다.
이날도 비록 동행자들이 있긴 했지만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10분을 더 걸어가야 하지만 '자정'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동행자들이 있어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길을 택하게끔 만들었다.
직업상 밤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거나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잦다. 많이 늦은 시간에는 택시를 이용할 때도 있지만 경제적 여건으로 항상 택시를 이용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주로 지하철을 탄 후 걸어가면서 누군가와 통화하며 불안함을 달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전화 통화도 애매하다.
날이 많이 풀리긴 했지만 밤바람은 아직 서늘했다. 학교와 주택가, 공원이 인접한 언덕길을 걸으며 스카우트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마치 동네 언니, 친구와 수다를 떨며 집에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 혼자 걸을 때는 익숙한 길이라도 어둠 속 간간이 보이는 낯선 그림자에 몸을 떨었지만 동행인이 2명이나 있으니 훨씬 안정감 있는 귀갓길이었다.
그러나 정작 스카우트들이 집에 돌아갈 때는 홀로 두려움에 떨며 집에 간다고 해 아직은 이 제도가 보완할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숙경씨는 "스카우트 업무를 할 때는 2인1조라 괜찮은데 집에 갈 때는 혼자라 무섭다"며 "파트너와 헤어진 후에는 집까지 그냥 막 뛰어간다"고 토로했다.
그는 "스카우트가 원래는 남성 1명, 여성 1명 2인 1조로 구성이 돼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남성 지원자가 적다보니 주로 여자로만 구성된 경우가 많다"며 "경찰들이 더 순찰을 돌아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려워 안심귀가스카우트가 생겨난 것 아니겠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홍보 부족도 또 하나의 문제점이다. 실제로 이날 나의 전화가 이달 2일 안심귀가스카우트 업무를 시작한 이후 첫 요청 전화였다고 한다.
최씨는 "그동안에는 계속 순찰만 했다"며 "아직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안심 귀가지원 서비스를 요청한 사람은 오늘 이현주님이 처음"이라고 웃었다.
순찰을 하면서 종종 혼자 가는 여성들을 보면 신분을 밝히고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뒤 그 제안을 거절하고 가버린다.
"아직까지 안심귀가스카우트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꺼려해요. 봉사 개념으로 하는 일인데 속상한 적도 많죠."
어이없는 일도 경험했다. 한 번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50대 여성을 발견,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줬다. 문제는 그 다음날 발생했다.
"다음날도 평소처럼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분이 다가오시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전날 그 여성분 남편이었어요. 저흰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따지러 온 거였어요. 기분 나쁜 얘기도 좀 들었죠."
평범한 가정주부, 어머니인 이들이 여성 안심귀가스카우트 일에 뛰어든 것은 자녀들이 겪은 불안한 경험 때문이다.
최씨는 "딸이 대학교 1학년인데 고등학생 때 공부를 마치고 밤에 운동을 다녀 올 때 이상한 사람이 따라와서 놀랐던 경험이 몇 번 있었다"며 "나중에 그 사람 잡으려고 남편과 뛰어나가도 봤지만 결국 잡진 못했다"고 털어놨다.
최대한 밤늦게 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최씨 생각이다. 하지만 늦은 시각 집에 가야 할 사정이 있을 때는 여성 안심귀가스카우트를 떠올려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할머니도 몹쓸 짓을 당하는, 워낙 흉흉한 세상이잖아요. 늦은 시간에 다니는 것은 위험하니 여성분들은 최대한 일찍 다니시고, 여성 안심귀가스카우트를 만나면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