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사람들은 부유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으며,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참되고 영원한 복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에 사라질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면 더 이상 소유할 수 없고 사후의 세계로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온갖 복을 다 누렸다 해도 내세를 준비하지 않고 살았다면 아름다운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갈 수밖에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에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중에 유명한 팔복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팔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참된 복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팔복을 소유하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팔복 중에 첫 번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해 자존심이나 교만, 이기심, 욕심 등 악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악이 없는 선한 마음, 아무 욕심이 없어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하지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심령을 채울 영의 것을 사모하기에 쉽게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을 가는 중에 광야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이나 양식을 찾기 어렵고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축복하고 지키며 은혜 베풀기 원하신다는 말씀을 주십니다(민 6:24~26). 오늘날 우리도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질병과 천재지변, 사고 등으로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오늘날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일까요? 먼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
섬긴다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희생과 헌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섬김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아름다운 덕목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축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참된 섬김이란 과연 어떠한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에게 임하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중심에서 믿고 순종의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때에 백성들이 우상을 심히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시돈에 속한 사르밧 땅으로 피하여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마실 물과 떡 한 조각을 청합니다. 여인은 엘리야를 보고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임을 고백한 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합니다(왕상 17:12). 그러자 엘리야는 순종하여 행할 때에 축복이 임할 것을 알려 줍니다. 엘리야가 여인의 가정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하다가 궁금하여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하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하며 사과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평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18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사람은 인품이 닦여질수록 겸손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마 18: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며 그와 가까이하기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겸손한 사람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첫째, 말이 겸손합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있음’을 말합니다. 주 안에서 겸손한 사람은 말도 겸손합니다. 일부러 상대를 높이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기에 자연 상대를 존중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지식의 잣대로 판단하여 상대의 말을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할 줄 압니다. 혹여 자신의 기준에서는 옳지 않다 해도 상대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정확한 분별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할 뿐, 그 자리에서 상대의 말이 그르다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지적한다 해도 감사함으로 받을 줄 알고, 당장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 해도 권면하는 말을 마음에 잘 수용하고 변화되고자 하지요. 반면에 잘못이 있어서 지
사람의 탐심이란 끝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소유가 있어도 “족하다.” 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얻었다 해도 그 마음의 갈급함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구하며 천국 소망으로 마음을 채울 때라야 참된 만족과 기쁨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호화로운 집이나 진귀한 물건을 보면 “참 좋다, 아름답다!”라는 감탄이 나옵니다. 그런데 ‘참 좋다.’는 생각을 넘어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을 통해 탐심이 마음 안에 자리 잡습니다. 탐심으로 인해 형제나 부모 자녀 사이, 혹은 부부 사이에 원수 맺는 경우도 생기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자기보다 더 가진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탐심에 미혹돼 범죄하는 경우가 많지요. 성경에 나오는 아간이라는 사람은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 중 금은과 외투를 훔쳐서 숨겼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은 물론 모든 가족과 가축까지 멸망당했지요.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지만 탐심으로 인해 일부를 숨기고 나머지를 드리며 전부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예전에 전쟁터에 나가 생사를 알 길 없는 아들을 손꼽아 기다리던 노모는 손바닥에 아들의 얼굴을 새겨 넣고 그리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노모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친히 자녀들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며 천국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사 49:16).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지극히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죄와 불법에 빠져 사망으로 가는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결국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지요.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한 아들을 사지로 밀어 넣을 분이 있겠는지요? “큰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고 무슨 소원이든 들어 줄 테니까 네 아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우리 입술이 차가워진 때 일상적인 기계처럼 나이를 먹고 있어요. 세워진 돌처럼 바라보고 우리는 남겨져 있어요."(For everyday robots getting old. When our lips are cold. Lookin' like standing stones. Out there on our own.) 브릿팝 밴드 '블러'의 프런트맨 데이먼 알반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의 가사를 뜯어보면,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매력은 배가 된다. 미니멀한 트립합(음습하고 몽롱한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 사운드에 배인 도회적이면서 쓸쓸한 '에브리데이 로봇'의 정서를 따듯하면서 애잔하게 치환했다. 스마트폰을 기계처럼 지니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정경을 그린 '에브리데이 로봇' 노랫말에서 한국인 작가·작사가 박천휴와 미국인 작곡가 윌 애런슨이 영감을 얻은 작품. 동명영화가 바탕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아날로그 감수성을 뽐낸 이 콤비는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들의 사랑'이라는 디지털적 소재에서 다시 한 번 아날로그 감성을 길어 올렸다. '어쿠스틱한 분위기가 흐르는 미래의 메트로폴리탄 서울'이 콘셉트로 미래가 배경이지만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신약은 암, 알츠하이머병, 감염병, 노화 등 병 치료뿐만 아니라 일상의 건강함에 기여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유한양행 신사업개발팀을 이끌며 한국의 제약 기술을 해외로 수출하는 일을 진행하는 윤태진 박사는 약물의 최신 개발 현장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살펴보며 신약 개발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변화들을 이야기한다. 윤 박사는 신약 개발이야말로 화학, 생물학, 의학, 분석과학 등 현대과학 정수가 녹아 있는 자연과학의 종합예술이라고 말한다. 여러 분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신약 개발은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질병 치료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분야를 더욱 넓혀가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다. 약과 거리가 멀어 보이던 장내 미생물 연구, 약과 관련이 없어 보였던 인공지능까지 신약개발에 도입되고 있다. 1980년대 암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심을 일으키는 대표 질병이었다. 이후 각국 정부가 암 치료제 개발에 나섰지만 암의 정복은 이루어지지 않았고비관의 목소리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알츠하이머병과 면역질환 또한 당초 예상과는 달리 난관에 부딪혔고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질병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들 질환의 약물 개발 역사를 되짚으며 과거 치료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입니다. 이를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도 하지요.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킵니다.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 간의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욱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말씀을 100%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영적 믿음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결코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며 한번 이루리라 하시면 변개치 않고 반드시 이루시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였습니다. 질병이 있는 사람이 나음을 얻고,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았고, 무의미한 삶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과 태어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소경을 치료하여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진흙을 눈에 바른 후 물로 씻는다고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이런 지시를 했을 때에 대부분은 믿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나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눈이 밝아져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둘째,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사
다윗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사람입니다. 그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말째로서 소년 시절 아버지의 양을 쳤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사무엘 선지자가 집으로 찾아와 형제 중 가장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심을 소유하였고 선 가운데 행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이방 족속 블레셋과 대치했을 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진영에 키가 3미터에 가까운 골리앗이란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40일 동안 밤낮으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해도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외치며 골리앗을 향해 물맷돌을 힘껏 던졌습니다. 이마에 물맷돌을 맞은 골리앗은 그대로 쓰러졌지요.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충천하여 블레셋 군대를 진멸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사울왕의 보내는 곳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서경덕 교수가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영상을 공개했다. 국가보훈처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7일 봉오동 전투 승전 100주년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영상을 공개했다. '자랑스런 전승의 역사, 여천 홍범도 장군'이라는 제목의 이번 영상에서는 독립군의 첫 승리인 봉오동 전투의 전개 과정과 그 의의, 승리의 주역인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영상은 한국어 및 영어로 제작됐다. 영상을 기획한 서경덕 교수는 "봉오동 전투 승전 100주년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애국심 및 평화정신을 국내 뿐만이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소개하고자 다국어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유튜브 뿐 아니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와 전세계 주요 20여개국의 한인 및 유학생 커뮤니티에도 영상을 공유해 재외동포에게도 널리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해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역을 맡았던 배우 최민식씨가 이번 영상에 한국어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최민식은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봉오동 전투와 홍범도 장군을 네티즌들이 꼭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레이션에 임했다"고 전했다. 한편 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