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치와 실적치 최대 4% 포인트 격차
올해도 한국개발연구원과 산업연구원과 같은 국책 연구기관과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 연구기관 등 10여개 연구기관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망’이기 때문에 예측이 빗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소마다 전망치에 큰 편차를 보인다면 살림을 하는데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2008년 경제성장률을 5%대로 잡았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와 고유가 등 외부의 변수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불과 몇 달전 5%의 성장을 낙관하던 한국은행은 최근 4.7%로 낮춰 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50.%, 현대경제연구원은 5.1%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발표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 후 2~3월경 재조정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오락가락 전망’으로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대한 신뢰도는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최근 연구기관들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실제 성장률의 차이가 커 ‘반쪽짜리 경제성장률 전망’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와 각 연구기관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국책.민간연구소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실적치와 최대 4% 포인트의 오차범위를 보였다. 지난 2002년 말 각 연구기관들은 2003년 최대 5.6%의 성장률을 예상했지만 경제성장률은 3.1%에 그쳤다.
특히 경기가 상승장에는 하락을 하락장에는 상승을 점쳤다. 카드대란 등의 변수가 있었지만 오차 범위가 2.5%에 달한 것은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2003년 말에도 5% 이상의 성장을 점쳤지만 2004년 경제성장률은 4.6%에 그쳤다. 2004년 말은 3.5%에서 5%까지 전망됐지만 실제는 4%에 간신히 도달했다. 2006년 말 각 연구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4.3~4.4%로 전망했지만 2007년 실제 경제성장률은 4.8%로 잡혔다.

정확도, 한계 있다
특히 한국은행 경기전망 정확도 논쟁은 국정감사 때부터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명색이 ‘국책은행’인데도 외환위기 이후부터 실제 성장률과 큰 차이를 보인 전망치를 발표해 망신살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전망치가 실적치에 차이를 보인 것은 대부분 연구소들이 낙관적으로 경제성장을 전망했기 때문이다.
당장 투자를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기업의 입장에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평을 토로한다. 기업들은 전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아예 실제 체감하는 경기를 살피고 자체 전망을 통해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SK텔레콤은 자체 경제연구소를 산하에 두고 경제를 전망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외부에 공개하진 않지만 회사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면서 “연구기관에서 발표하는 자료에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국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제전망을 보고서로 내놓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한국은행 전망치와 비슷한 4.8%로 전망했다. 유가는 최고 100달러 가까이 오르고 원 달러 환율은 최저 800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연구소들도 ‘불신의 벽’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전망치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반론한다. 한국 경제는 북핵문제와 유가급등 외에도 변수가 많아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제를 예측하는 것은 변수가 많은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연립방정식을 구성하는 각각의 방정식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생산측면이나 투자 측면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각 연구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경제성장률 전망은 날씨예보와 같이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도 한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재정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신용 정책과도 직결되고 기업의 투자시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따르면 투자 손실이 두렵고 낮은 경제성장률을 따르면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경제성장률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연구소의 전망을 믿고 경영계획과 경제운용 방향을 세우고 있는 기업들은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다.
대내외적 변수의 영향 큰 것이 요인
그렇다면 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이렇게 다르게 나오는 걸까? 국제유가나 북한 핵문제 등 외부 변수의 영향이 큰 한국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오차 범위가 크고 전망치 조정이 너무 빈번하다. 전문가들은 대내외적인 변수의 영향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경기 후퇴 우려가 커지면서 5% 성장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면서 “국내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 대외변동성이 커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통계학적 계산을 통해 나오는 전망치의 태생적 한계도 전망치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연구소별 계량 모델을 활용하는 데 모델이 발전해도 통계학적으로 성장하는 것뿐, 정확도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도 100~200개 정도 변수를 감안하지만 사실 전망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최근 대외여건 악화를 반영해 예상보다 낮은 연 4.7%로 발표했다. 5%대의 성장률을 제시했던 민간연구소들도 전망치 수정이 예상된다. 한 민간경제연구원은 “전망치 발표 후 유가가 급등했고 서브프라임 사태와 관련해 금융회사 피해 등이 구체화되면서 대외여건이 악화됐다”며 “부정적인 요인이 강해졌기 때문에 전망치가 하향 조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은 “수출이 GDP의 43%를 차지하는 등 세계경제나 유가 등 외부여건에 민감한 한국경제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 97년 외환위기 이전 한국 경제는 매년 6~8%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면서 성장률 전망과 실적치에 큰 오차가 없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국제유가 및 북핵문제, 노사분규 등 대내외적 변수의 영향력이 커졌다. 특히 내년엔 국제유가 급등과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장 등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할 불확실성이 경제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이런 실정은 외국기관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의 연구기관들도 한국의 2008년 경제성장률에 큰 이견을 보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2%, 아시아개발은행(ADB)은 5.0%, 국제통화기금(IMF)은 4.6%로 각각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그만큼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세계 신용경색의 악화로 수출 증가세는 둔화되겠지만 내수경기가 받쳐줘 그나마 4~5%대의 경제성장률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특성상,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는 미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수경기가 좋아도 수출이 받쳐주지 못하면 경기가 좋아질리 만무하다. 내년은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와 고유가 등 국제적 난제들이 산재해 어느 때보다 경제전망이 불투명하다.
IMF의 2008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지난 7월과 10월 두 차례 낮춰진 데 이어 또 하향 조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1.5%로 떨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치솟는 원유 가격도 한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