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재순 기자] 지난해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의 자금을 지원키로 한 것은 청와대 서별관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을 언론인터뷰를 통해 밝혀 파문을 일으켰던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멀리 도망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감사원은 15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수 조원 부실 · 분식회계를 사실상 방관했다"고 못박았다. 대우조선 지분 49.7%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대규모 부실과 분식회계 의혹 등을 사실상 방관했다는 감사결과가 15일 나왔다.
홍 전 산업은행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 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에 대해 "청와대 · 기획재정부 · 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말해 이른바 '청와대 서별관회의' 실체를 둘러싼 청문회 요구 등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파장이 일자 당시 일각에서는 홍 전 산은회장이 차기 정권교체를 염두에 둔 면피성 발언을 하고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낳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홍 전 회장이 '성실경영 의무 위반'의 굴레를 벗지 못할 경우 향후 공직진출이 어렵게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감사원은 지난해 10~12월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금융공공기관의 출자회사 관리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같은 내용을 비롯해 총 31건의 감사결과를 시행했다고 이날 밝혔다.
감사원의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 감사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이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받고도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데는 조선업 불황, 유가하락에 따른 수주절벽, 해양플랜트 계약 취소 등 대외적 요인도 있지만 산은의 경영관리 소홀로 부실에 제때 대응할 기회를 놓친 점도 대내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은 산은이 분식회계 적발을 위한 '재무이상치 분석시스템'을 구축해 놓고도 대우조선에 대해서는 지난 2013년 2월 이후 재무상태 분석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선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공사진행률 상향 조정 등을 통한 회계분식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산은은 대우조선의 회계처리 적정성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대우조선의 부실한 재무상태 파악과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등 적기조치가 지연되고 임원 성과급 65억원, 직원 성과급 1984억원이 부당지급되는 결과도 낳았다"고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대우조선의 무분별한 자회사 설립·인수에 대한 통제 등 경영관리도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조선은 철저한 타당성 조사도 없이 조선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자회사(전체 32개 중 17개)에 투자해 9021억원의 손해를 봤다. 또 플로팅호텔 등 5개 사업의 경우 이사회 보고·의결 절차를 누락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보고한 뒤 투자를 추진해 3216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그런데도 산은은 이사회 의결 과정에 아무런 검토의견도 내지 않았으며 지난 5년 이상 산은 부행장 출신들이 맡아왔던 대우조선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은 모든 안건에 찬성만 하는 '거수기' 역할을 했다.
대우조선이 부당한 격려금 지급을 요청하자 이를 그대로 승인해 주기도 했다.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후 경영관리단을 파견해 대우조선의 자금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한 산은은 지난해 9월 직원 1인당 평균 946만원씩의 격려금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등은 격려금에 성과성 상여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리고도 별도의 조치없이 경영관리단이 그대로 합의하도록 내버려뒀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0월 직원들에게 격려금 총 877억원을 부당 지급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결과와 관련해 금융위원회 및 기획재정부에 대우조선의 격려금 지급과 성동조선의 수주 관리를 태만히 한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 등 경영진 5명의 비위내용을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