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칭다오에 진출한 의류업체인 S사. 중국의 평균 임금 상승뿐 아니라 올해부터 변경 시행되고 있는 노동계약법으로 인건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 퇴직 시 경제보상금 강제 지급’, ‘최저임금 20% 상승’, ‘5대 보험 강제 가입’ 등을 감안하면, 지난해에 비해 인건비가 30~40% 추가로 들어갈 판”이라고 털어놨다. 값싼 노동력과 세제혜택 등에 매력을 느껴 중국에 진출한 것이 되레 ‘역풍’을 맡게 된 셈이다. 정영진 상해한국상회 사무총장은 “최근 ‘기업소득세 인상’, ‘가공무역 금지품목 확대’, ‘신 노동계약법 시행’, ‘토지사용세 징수’ 등 중국진출 기업들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최근에는 중국 위안화 절상압력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28% ‘철수 고려, 준비’
최근 중국에 진출해 있던 한국기업들이 법적인 청산절차를 밟지 않고 야반에 무단도주를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세금인상과 인건비 상승, 사업규제 강화 등으로 경영난 한계에 부딪친 한국기업들이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것이다. 오늘과 같은 눈부신 중국의 경제성장이 있기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이 한국의 기술을 바짝 따라잡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은 ‘차이나 드림’ 이었다.
비싼 인건비에도 인력난에 시달려야 하고 땅값 상승으로 공장부지 확보가 어려웠던 기업들에겐 ‘또 다른 기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달라지면서 한국기업들의 ‘먹튀’가 횡행해 졌다. 산둥성 통계에 따르면 불법 야반도주를 감행한 한국기업은 지난해에만 100여개에 달했고 이는 불법 철수한 외자기업 가운데 90%에 달하는 비율이다.
하지만 ‘탈출 러시’는 여전히 ‘적신호’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의 30%가 철수를 고려 중이고, 이미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업체가 상당수라는 최근의 설문조사가 이를 대변해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중국 현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국한국상회 회원사 350개 업체를 대상으로 ‘재중(在中) 한국기업 경영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25.0%의 기업이 ‘중국에서의 사업청산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3.1%는 ‘현재 청산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진출기업들의 85.8%는 ‘앞으로 중국의 기업환경이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해 3월 같은 조사에서 ‘중국 기업환경 악화’를 점친 기업들이 33.1%였던 것에 비하면, 1년여 만에 비관적인 전망으로 돌아선 기업이 52.7%포인트에 이르는 셈이다.
청도 지역에서 ‘탈출러시’로 불리는 기업들이 한결같이 섬유, 봉제, 완구, 피혁 등 대표적인 노동집약기업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중국 내수를 겨냥한 것이 아닌, 이른바 ‘밀어내기’식 미국시장 수출을 염두에 둔 회사들이다. 하지만 달러화 대비 위엔화 평가절상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환급세로 돌려받던 비율조차 기존 15%에서 5%로 급감하면서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경영활동에 있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으로 43.1%의 기업들은 ‘노무관리’를 꼽았고, 다음으로 ‘잦은 법규, 제도 변경’(21.4%), ‘내수시장 개척 어려움’(13.3%), ‘현지 금융조달 문제’(10.5%), ‘세제 문제’(6.1%) 등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상의 관계자는 “올해부터 실시하는 중국 노동계약법이 우리기업에게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기업 청산절차 까다로워 ‘야반도주’
한국 내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집단 철수에 대해 지난 1월1일부터 발효된 신노동법 개정 등 중국의 사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지나치게 까다로운 중국의 청산 절차 때문에 몸만 빠져 나오는 등 야반도주하는 기업 경영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중국에서 외자기업이 청산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와 세관, 공상국, 전력 기관 등 신고해야 할 국가기관만 10곳이 훌쩍 넘어선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은 청산을 할 때 ‘복잡한 청산절차’(56.7%), ‘토지사용료 및 세제상 감면 금액 소급반납’(18.7%), ‘지방정부의 비협조’(14.7%), ‘대출상환’(3.3%), ‘체불임금’(2.0%)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최근 중국 내 한국기업의 무단 철수 사태가 산둥성 지역에 국한된 것이라며 중국 전역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자칫 현지 진출 기업의 활동에 위축을 초래할까 염려가 돼서다. 홍지인 산자부 통상협력기획관은 “이 사안은 중국 진출 기업 전체에 발생하는 공통 현상은 아니란 것이 우리 정부의 판단”이라며 “이를 확대하는 것은 한중 양국 정부는 물론이고 양국 산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산업·경제 중심지인 상하이에는 1000여개 이상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지만 아직도 무단 철수 사례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기업이 중국 산둥성에 있는 청도에 진출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청도시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며, 물류유통이 잘 돼 있어 중국 진출 1순위 도시로 꼽혀 왔기 때문이다.
최근의 조사를 보면 청도에서 한국기업의 탈출이 빈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정경제부·외교통상부·산업자원부·대한상의 등으로 구성된 ‘중국 진출 기업 지원 민관 공동 대책반’이 현지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 2002년 청도시 진출 한국 기업 수가 2233개에서 2007년 609개로 줄어들었다. 여기서 지난해 청도에서 무단 철수한 한국 기업은 모두 87개나 됐다. 합법적인 기업철수를 진행한 한국기업을 포함하면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일부 한국기업의 야반도주가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현지에 남아있는 기업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원재료 공급업체는 재료를 대주지 않거나 현금을 결제를 요구하고(과거에는 어음으로 거래) 은행도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한 주재원은 “마치 2006년 동북 3성 최대 규모의 한국기업이던 삼보컴퓨터가 부도난 뒤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15개 한국협력업체들이 대출금회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줄도산한 것과 같은 사태가 우려된다”며 걱정했다.
사태의 확산을 우려한 우리 정부는 서둘러 긴급 대책을 마련했다. 앞으로는 고의로 야반도주를 할 경우 사법처리 된다. 정부는 중국 청도에 기업의 청산과 기업인 신변보호 등을 지원할 기업청산 대책반을 설치, 한계기업 청산을 돕기로 했다. 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채산성과 경영의 합리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중국 탈출 러시는 계속될 전망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최근 어려워진 중국 경영환경으로 기업 철수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어 합법적이고 원활한 사업정리를 위한 지원책이 단기적으로는 필요하지만 대다수 진출기업은 여전히 중국 내에서 사업유지를 희망하고 있어 내수시장 진출확대, 업종 전환 등을 포함한 중장기적인 정부-유관기관의 경영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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