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기어코 터졌다. 지난 2월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또 다시 위기의 겨울이 찾아왔다. 대법원 판결과 막바지 그룹 승계구도를 남겨둔 미묘한 시점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불거진 것. 이를 둘러싼 쟁점과 향후 전망을 살펴봤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11월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년 회계처리기준 변경을 고의적 분식회계라고 판단했다. 해당종목은 거래중지 조처됐다.
증선위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데는 삼성그룹의 내부 문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논란의 시작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바이오에피스)의 회계기준을 ‘취득가액(종속회사)’에서 ‘시장가액(관계회사)’으로 변경, 4조5000억원의 지분평가 차익을 거두었다고 회계처리한 것이 의도적 분식회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그리고 이 모든 쟁점의 중심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시작은 바이오젠, 콜옵션 행사 여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있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역할이 플러스알파가 됐는지 여부는 향후 진행될 대법원 판결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2011년 설립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회사다. 최근 제약회사들은 자체 생산설비를 갖추고 의약품을 생산하는 방법 대신 위탁생산 회사에 생산을 맡기는 추세이다. 연평균 성장률 8%에 이를 것으로 증권업계는 내다봤다. 삼성물산 합병 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은 삼성전자가 45.65%, 제일모직이 45.65%, 구 삼성물산이 5.75%를 소유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상승은 제일모직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은 2012년 미국의 바이오 제약회사인 바이오젠(당시 바이오젠 아이덱)과 3300억원을 투자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제네릭) 개발사인 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은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각각 94.6%, 5.4%로 두 회사의 차이는 엄청나다. 문제는 바이오젠에겐 에피스의 지분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콜옵션 행사 권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바이오젠은 전체 지분의 50%에서 -1주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에게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일련의 과정은 정당했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방식 변경을 둘러싼 쟁점은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었나” “바이오에피스를 ‘관계사’로 볼 수 있나”로 귀결된다. 시간을 2015년 9월1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되던 날로 되돌려 보자.
구 삼성물산의 자산은 제일모직의 3배가 넘었지만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1대 구 삼성물산 0.35로 정해졌다. 한 증권 관계자는 “당시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23.23%)으로 경영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합병을 진행했다는 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국제 투자 자문회사 ISS는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가 순자산에 비해 49.8% 저평가되어 있고 제일모직은 41.4% 고평가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은 ISS의 자문 결과를 갖고 삼성그룹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나 삼성은 1:0.35라는 비율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같은해 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제품인 엔브렐과 레미케이드가 2015년과 2016년에 한국과 유럽에서 제품 판매를 승인받으면서 소위 대박을 친다.
그리고 그 해 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회사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 권리를 행사할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게 되면 지분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거의 동수에 이르게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의 관계는 지배회사와 종속회사의 관계가 아닌 실질적 지배력을 상실한 관계회사가 된다고 삼성 측이 판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근거를 기준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처리 방식을 연결재무제표에서 지분법(관계사)을 적용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때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를 조작해 회사 가치를 부풀렸다는 주장이 나온다.
연결재무제표는 지배-종속 관계에 있는 회사의 재무제표를 종합해서 작성하지만 관계사는 종합해서 작성할 수 없다. 또한 종속회사의 지분가치는 취득가액으로 평가하지만, 관계회사는 시장가로 평가한다. 2014년 말 4621억 원이었던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가치는 2015년 말 4조8085억 원으로 뛰었다.
그러자 바이오젠의 콜옵션 권리지분을 제외하고도 2조9882억원의 수익이 발생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년간 이어졌던 적자를 벗어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4년에는 99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었다.
시민사회단체 등 일부에선 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바이오에피스를 회계상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면서 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렸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언급했듯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종속회사가 관계회사로 바뀔 경우 지분가치를 장부상 금액이 아닌 시장가액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결과 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약 3000억원에서 4조8000억원 가량으로 올랐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바이오에피스의 모회사를 가진 제일모직에 유리한 비율(1대 0.35)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도 바로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상장 폐지 가능성 거의 없어
상장 과정도 문제시 되고 있다. 2015년 11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상장규정 및 시행세칙을 개정했다. ‘시가총액 6000억원 이상, 자본 2000억원 이상’인 기업의 상장을 허용키로 한 것. 기존 코스피 상장요건은 ‘매출액 1000억원 이상, 이익(영업이익, 세전이익, 당기순이익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이익) 30억원 이상’ 또는 ‘시가총액 4000억원 이상, 매출액 2000억원 이상’이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년 매출은 913억원, 영업손실은 2036억원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적자기업임에도 개정된 상장규정 덕분에 2016년 11월 코스피에 상장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적자기업이 ‘시가총액 6000억원, 자본 2000억원’ 요건을 만족해 상장한 회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단 한 곳뿐이다. 그렇지만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병률 전 한국거래소 상무는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고려하고 있었기에 유망기업이 코스피에 상장할 수 있게 규정 개정을 추진한 것”이라며 “삼성이나 정부가 (한국거래소에) 특혜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폐지될 가능성은 낮다. 한 법조인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곳의 회계법인으로부터 재무제표 적정성을 인정받았기에 삼성 측이 회계법인에 청탁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과징금 수준에서 끝나고 상장폐지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심상정 “이재용 경영권 승계 재검토해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더불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금감원 특별감리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심상정 의원은 “주식평가를 해본 것에 불과한데, 이를 근거로 마치 (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높아져 바이오로직스의) 지배력이 변동하는 유의미한 사건이 발생하는 걸로 간주한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이 주식평가를 근거로 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 2조원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으로 수치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오에피스라는 회사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회계상 가치가 높아진 것에 지나지 않는데 삼성 쪽이 이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이용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합작회사의 경우 처음 해당 회사가 어느 회사의 종속회사라고 정해지면 회계상 이를 끝까지 일관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관계회사로 바꾸기 어렵다고 한다.
심상정 의원은 “삼성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 2가지가 국내에서 승인됐다는 이유로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며 “복제약 2가지가 승인됐다는 것은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될 만한 사유가 될 수 없다. 국제회계기준에도 그런 근거나 사례가 없다”고 했다.
심상정 의원은 “삼성이 (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한 사유로 주장한 복제약 2가지 승인과 관련한 내용은 외부감사 조서에 적혀있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금감원에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며 “삼성에서 주장하는 근거가 외부감사조서에 없는데, 사후적으로 꿰맞춘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의원은 “한 기업의 회계조작 사건이 아니다. 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건의 최종결과가 이재용 경영권 승계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시사했다.
삼성 “이사회 구성원 동수, 경영지배력 상실”
삼성 측은 상반된 입장을 설명한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도 50%+1주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소유이며, 대부분 국내 기업들은 지분율 50%를 기준으로 종속회사와 관계회사를 나눠왔다는 근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도 여전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최대주주지만 이사회 구성이 현재 4 대 1에서 동수로 바뀐다”며 “이사회 구성이 대등한 상태에서 경영 지배력을 유지한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외부 의견이 실제로 많았다”고 해명했다.
바이오젠 콜옵션 논란에 대해서도 심병화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2015년 7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면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문서(Letter)를 보내왔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회계는 최대한 투자자들이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게 기본적인 기준”이라며 “당시 회계법인 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종속회사를 관계회사로 변경하지 않으면 회계처리가 합당하다는 의견을 줄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기업가치 증대를 위한 자의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영승계권 논란에 대해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4월 상장 발표, 11월 상장했다”며 “이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끝난 상태로 합병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결에 주목
삼성바이오로직스 소액주주 8만여명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주식 피해자 연대’ 카페를 개설하고 법무법인을 선정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소송대상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및 그 감사인들 뿐만 아니라 금감원이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진행되는 일련의 진행과정은 이재용 부회장 관련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월 열린 2심 재판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다. 승계 작업과 관련해 명시적·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1·2심에서 증거로 다뤄진 사실관계만 판단하기에 판결을 환송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겨울이 ‘시련의 계절’로 다가올지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