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불구 선대위장으로 활약
비록 거물정치인에 어울리지 않게 지난 설 연휴 때에 자신의 선거구에서 18대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을 해 관심을 모았던 김원기(金元基 71)전 국회의장이 박상천 공동대표 강금실 최고위원과 더불어 통합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임돼 4월9일부터 시작된 18대 총선에서 주로 전남북 지역을 맡아 선거 지원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하였는데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30여명의 전북도내 시군의회 의장과 정치인들이 자신을 통합민주당 비례대표로 공천토록하는 건의서를 공심의에 제출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격분. 회수토록 한 일들에 비추어 조용히 정계를 정관할 것으로 보였던 그가 중책을 맡지 않을 수 밖에 없던 것은 역시 17대 국회 전반부 6선의 국회의장이라는 무거운 관록과 공평무사을 위주로 쌓은 정치역량의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대선 참패의 상처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데다 영남권에서 전멸을 각오해야 할 통합민주당으로서는 한 석이 아쉬운 판이었는데 한나라당의 자중지란으로 기대이상의 의석확보가 활실해 보이는 만큼 존경의 대상이 되어온 거물급 정치인의 전면배치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계산이 작용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7대 국회 들어서야 비로소 입법부 다운 입법부가 돼”
김 전의장은 17대 국회의장 취임에 즈음 차후 중점적으로 실현해 갈 사항을 발표했다.
첫째 정치의 중심이 되는 국회, 둘째 일하는 국회, 셋째 중단 없는 개혁을 실천하는 국회를 만들어 갈 것을 다짐하였다.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지난 3월10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남기는 충고와 당부와 더불어 내리고 있다.
“제가 생각할 때에 그동안 17대 정치에서 가장 발전한 분야가 있다고 하면 그건 국회의 정치이다”고 운을 떼고 이어 “과거 50년 넘는 국회가 완전히 대통령 권력하에서 통법부에 불과했다고 하면 국회가 입법부가 된 것은 17대 국회에 와서 처음이고 과거 모든 법안이 정부 입법이 80%이상을 차지하고 국회는 형식에 그친 20%를 차지하던 것이 17대 국회에 들어서는 그 단기간에 모든 국회에서 산출하는 법안의 80%이상을 국회가 차지하고 정부 입법이 역전되어서 20%이하로 처지는 이런 큰 변화가 있었고 또 깨끗하게 된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의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과거의 군사 정권의 국회에 비해서도 훨씬 못한 혐오스런 국회로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역전되는 여야에 충고와 당부
국회에서 다수결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그 이전에 여야간에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합의처리하려 하지않고 다수결의 원리로 처리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국회에서 육박전이 벌어지고 단상을 점령하고 위원회를 봉쇄하는 안 좋은 모습들만 전달되다보니 국민들이 국회 혐오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김 전의장은 여야를 향해 간절한 충고를 해 중진다운 면모를 보였다.
먼저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통합민주당에 대해 충고했다.
“이제 약한 야당이 되었지만 오래 투쟁해서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 세력이 마지막 단계 국회에서 모든 것에서 법치주의가 지켜지고 다수결원칙이 최종적으로 존중되어야지 단상점령하는 물리적 수단으로 방해하는 일은 꼭 없애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여당에 대해서도 당부했다.
“여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력을 가지고 소수의 야당과 모든 것을 상의해서 국정을 운영하는 그러한 자세로 임하면 딴 것은 지금 다 제대로 발전했으니까… 투명도에 있어서는 일본 국회,정치보다 앞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부분만 잘 극복하고 우리가 전문성만 확보한다면 능히 일본보다 앞서는 그런 선진정치로 국민들이 인식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여러분들게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연세대 졸업후 동아일보에 입사 민완기자로 활약하던 중 두 번의 위기를 기적적으로 넘어 선 그의 인생관은 확고하다.
특히 정계에 입문한 후의 그는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모토로 삼고 모든 활동과 정책결정 및 그 실행에 있어 이를 주축으로 삼았다. 자신의 행동중심이 나라를 위한다는 대의에 맞추어져 있나를 성찰해야 하고 공평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스스로 경계할줄 알아야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명 총무로 13대 국회에서 위명
김 전의장이 정치력을 발휘하기는 13대국회에서 이른바 여소야대 하에서 사실상 정국을 주도했던 제1야당의 원내총무로서 활약할 때다. 그의 뛰어난 친화력과 협상력은 메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특히 전직대통령을 국회에 끌어내어 증언토록 함으로써 ‘몰락한 권력자와 그 추종세력의 정치적 죽음과 사회적 삶의 절묘한 유기적 동시 보장을 실현함으로써 정치적 예술의 극치를 보이며 한국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도록’한 역량은 높이 평가되었다.
그래서 그는 ‘협상의 명수’ ‘협상의 귀재’로 불리는 한편 메스컴으로부터는 ‘지둘러(기다려)’라는 애칭으로 불리운다. 아무리 급해도 한박자 쉬며 생각하는 스타일을 두고 붙인 별명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일컬어 졌고 열린우리당 창당과정에서 주축이 되는 개혁성에 특유의 안정성을 부여한 후 당을 이끌기도 하다 국회의장으로 정치의 최정상에 올랐던 그가 이제 18대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앞으로의 거취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토록 여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학력 및 경력
연세대정외과, 동아일보기자,제10·11·13·14·16·17대 국회의원 평민당 원내총무, IPU평양총회한국대표, 민주당사무총장·수석부총재·대표,국민통합추진회의 대표, 노·사·정위원장, 열린우리당상임의장, 제17대전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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