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순의 아트&컬처] 박여숙 화랑이 36년 강남 시대를 접고, 이태원 시대를 오픈했다. 이태원 시대의 첫 주자로 달항아리의 대가 권대섭(67) 도예가와 손잡았다. 그리고 개관전을 10일로 정해 11월11일까지 멋진 백자항아리들을 선보인다.
박여숙(66) 대표는 서울 용산구 소월로(이태원동)에 흰색의 지하 2층 지상 4층 빌딩을 신축하고 그중 2개층을 연면적 250평을 갤러리로, 1개층에는 차, 식사, 공예품을 소개하는 ‘수수덤덤’(쉐프 이재범)을 준비했다.
강남 화랑을 접고 이태원으로 이전한 것에 대해 “이 지역의 특성이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재미있고 활기찬 곳이라 너무 좋다. 강남과 강북의 중간 지점에서 외국인 컬렉터들 만나기도 좋은 위치라 선택했다”고 말했다.
홍익대에서 공예를 전공한 박 대표는 1983년 서울 압구정동에 국내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건 화랑을 열었다. 5년 후 청담동에 재개관하며 고객층을 넓혔다. 이영학 김점선 이강소 박서보 전광영 김종학 박은선 등의 개인전을 열었는가하면, 프랭크 스텔라, 아니젤 홀 등 해외 유명 작가들도 한국에 소개했다.
1990년부터 아트바젤, 쾰른아트페어 등 해외 시장에서 한국의 단색화를 계속 알려 오늘의 단색화 붐을 만들었는가 하면, 2015년 밀라노의 한국공예전 예술감독도 맡아 한국 공예의 해외 시장 보급에도 앞장서 왔다. 물론 경영 과정에서 희노애락이 있었다.
박여숙 대표는 “저는 예용해 이대원 이경성 박생광 천경자 박서보 선생 같은 훌륭한 선배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미술 공부를 했던 행운아였다”면서 “한국 미술품을 세계에 알리는 가운데, 공예전공자로서 뛰어난 한국 공예 미술품들을 세계 시장에 소개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직무유기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태원 시대 첫 전시 작가인 권대섭은 달항아리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지난해 10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달항아리는 52,500파운드(한화 약9700만원)에 낙찰되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김환기의 명명으로 ‘달항아리’가 된 백자 항아리는 한국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꼽힌다. 권대섭 이전에도 수많은 이름없는 도예가들이 반복적이고 고된 육체노동을 통해 흙, 물, 불에서 시작해 단단하게 구운 질그릇을 탄생시켰다.
높이 50cm에 가까운 백자항아리는 점토를 물레에 돌리고 가마 속에서 형태를 잡는 기술과 더불어 고된 육체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백자 항아리에 대한 권대섭의 열정은 학생 시절 한 골동품 점에서 마주한 조선 백자항아리에매료되고 말았다. 그길로 서양화가를 꿈꾸던 홍익대 미대생은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후 옛 도공들이 폐기했을 파편을 모아 연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590년대 임진왜란 이후 조선 도공들의 이야기도 추적했다.
직접 경기도 광주에 가마와 작업장을 만들고 집중과 노력 끝에 1995년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유약을 도포하기 전 섭씨 850도 정도에서 10~12시간 굽고, 가마의 온도와 산소 농도를 가까이서 조절해 재벌을 하며 작가가 원하는 색을 낸다.
‘자연의 도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권대섭은 보통 1년에 6~10점의 달항아리를 완성작으로 빚는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달항아리는 파편이 되고 만다.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부수어 버린다”고 말한다.
완전무결한 백자항아리를 꿈꾸는 권대섭은 2015년, 2018년에 벨기에 안트워프의 악셀 베르보르트에서 백자 항아리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개인 작품집도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에서 출판되어 나왔다.
국내에서는 박여숙 화랑을 통해 2017년 한국민속박물관의 ‘봄놀이-산, 꽃, 밥’, 공예 트렌드페어, 키아프 등 국내의 여러 전시와 아트페어에서 그의 백자 시리즈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도쿄 긴자 6의 클럽 갤러리의 ‘Matsuyoi:between Imperfection and Perfection’, 2016sus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민족박물관과 2015년 프랑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Korea Now! Korean Crafts&Design in Munich’ 등에서 전시했다.
이번 전시는 권대섭이 걸어온 백자 제작 40년의 시간을 결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