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농업을 물만 먹는 하마라고 부른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많은 투자를 하였는데도 농업경쟁력은 별로 신통치 않다는데 하는 말일 게다. 그 동안 급속한 시장개방을 맞고 있는 농업을 살리기 위해 많은 투융자가 있었다. YS정부 때는 농어촌구조개선사업으로 42조원과 농특세로 조성된 15조원의 추가 지원사업이 있었다. DJ정부는 45조원의 투융자사업을, 노무현정부에 들어와서는 농업농촌종합대책으로 119조원사업이 2004년부터 2013년 까지 계획되어 있다.
다수의 국민은 농업부문에 대한 투융자가 기존의 예산외에 추가적으로 지원된 것으로 오인하고 있기도 하다. 국가 예산 배정이라는 제로 썸 게임에서 다른 산업분야와 일부 언론이 잘못 호도한 데도 그 이유가 있다. UR이후 농업부문에 대한 지원예산은 대폭적이기 보다는 이 전 수준에 플러스 알파가 지원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농어촌 특별세까지 지원된 농업부문의 예산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집행되었느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쉽게 하기 어렵다.
시장개방에 즈음하여 시작된 농어촌구조개선사업 중에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의 적절하게 지원된 사업도 많다. 반면 사후펑가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개별 사업주에 대한 지원은 많은 부분이 부실과 부채로 이어졌고 부채탕감이라는 도덕적 해이와 무임승차자라는 문제도 야기하였다. 수천개의 영농조합법인에 대한 지원도 일부 선도조직 이외엔 그 효과를 찾아 보기가 어렵다. 생산지 규모화가 안된 상태에서의 회원농협에 대한 집하장 시설과 종합처리장 지원도 부실로 이어 졌고 다행히 농협의 신용사업수익으로 적자를 보전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준비 안된 시장개방에 대규모의 자금지원이 한꺼번에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자금지원의 효과를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방향과 비젼이 제시되어야 한다. 수입개방에 따라 경쟁력 있는 업종과 작목은 무엇인지? 적지적작과 주산단지을 선정하고 규모화와 협업화, 조직화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필요한 시설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어디에 건립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중앙 및 지방정부, 연구기관, 농촌지도소, 농협, 학계 등이 모여 지역의 농업 농촌개발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으로 의견과 방향을 집약할 필요가 있었다.
농협에 있던 필자는 1994년부터 경남 창녕 부곡에 있는 창녕 세계화 농업지도자교육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농협중앙회는 안성, 전주 창녕 3개의 농민교육원에서 협동조직장(영농회장, 부녀회장, 작목반장 등)교육을 운영하고 있었다. 농어촌구조개선 42조원 사업은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작목과 시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지? 얼마큼 어느 지역에 들어 가야 하는지? 에 대한 비젼은 충분히 논의 되어 있지 못하였다. 힘 좋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있는 곳엔 타당성 없이 예산이 지원되기도 하였다. 명절날 고향에 내려온 형님에게 농사 짓던 동생이 “군수가 몇억원을 지원해 주겠다”하는데 받아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농촌에선 “강아지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라는 우수개 소리도 있었다. 시 군에서는 사업대상자가 신청한 투융자 서류를 매년 2월경 35인의 농어촌발전위원들이 대상자를 심사 선발토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심사서류는 매 건당 분량도 많었고 창녕군의 경우에만도 800여건을 심사하게 되어 있어 물리적으로 처리하기가 역부족이었다.
창녕교육원에서는 원장을 중심으로 지역농업 민관합동교육과 품목별 민관합동교육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지역농업 합동교육은 시 군별로 행정, 지도, 농협, 농민단체, 지역농업개발과 마케팅 전문가 등이 입교하여 지역의 농업개발을 위해 어디에 무슨 작목을 입식하고 단지를 만들 것인지? 어떠한 시설과 무엇이 필요한지? 생산된 농산물의 브랜드와 포장개선 및 마케팅은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 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지역농업개발에 대한 사전 공감대 형성에 맞추어 졌다. 품목별합동교육은 시장개방에 힘들어 하는 작목을 중심으로 전국주산지의 행정, 지도, 농협, 농민, 전문가 등이 함께 입교함으로써 작목의 경쟁력 배양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수입농산물에 대응하기 위해서 작부체계와 기술력 향상, 농업관측, 전국적인 수급조절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밤이 늦도록 상호토론으로 방향을 정리해 나갔다. 이러한 교육의 산 경험은 후에 중앙회 본부에 있을 2002년에 시 군별로 시장, 군수, 농정국장, 농협시군지부장 ,조합장 및 관계담당관들이 한 조가 되어 입교하고 토론하는 지역농업개발포럼으로 이어졌고 포럼후에는 행정과 농협이 공동사업단을 만들어 지역의 농업경쟁력 강화에 힘을 모으는 자발적인 동기를 유발하기도 하였다.
민관합동교육은 1995년 10월 창녕교육원에서 양산시를 대상으로 시범교육으로 처음 시도되었다. 안성과 전주의 교육원에서도 각기 2명의 교수요원이 참관하여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도록 했다. 교육은 바쁜 일정을 감안해 1박2일로 진행되었다, 당시는 처음으로 시행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로 지역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었다. 교육원측은 교육생에 금기시된 막걸리도 화합의 장에서 허용하였다. 지역의 시장 군수는 물론 지방의회의원 지역농업개발 담당공무원, 농촌지도소장, 통계사무소장, 농협시군지부장과 관내 조합장 및 담당직원, 협동조직장, 농업경영인, 마케팅 전문가 등 농업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농림부에서는 국과장이 강사로 참석하고 강의와 질의응답으로 궁금증을 풀어 나가도록 하였다.
교육원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강사는 일류급으로 편성하고 원장이하 전교직원이 정성을 다 하였다. 아침 6시 운동장에 나오시는 지도자님들에게는 문 앞에서 70도 각도로 정중한 인사를 드렸다. 아침체조와 야외교육, 식당에서의 배식과 겸상식사는 물론이고 첫날 저녘 화합의 한마당에서는 “꽃 중의 꽃”을 열창하고 20여명의 교직원이 신명 나는 “밀양백중놀이”를 펼쳐 드렸다. 힘찬 구호와 반가제창, 캠프파이어, 즉석음식판매대에서의 기관장들의 써빙, 촛불과 함께하는 우리의 다짐과 한 분 한 분과의 악수 등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진행되었다.
둘째 날 아침에는 10여분 떨어진 부곡 온천까지 단체로 뛰어가 목욕으로 심신의 피로를 씻었다. 농업인들은 시장 군수 등 관계관들과 함께 어울리는걸 큰 자부심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같이 대화를 하며 알몸으로 만나니 더욱 가슴으로 친해지고 정이 드는 모양이다. 수료식에서는 농업인. 농협, 지도, 행정의 대표들이 나와 교육에 대한 소감과 토의한 내용들을 정리해서 발표함으로써 앞으로 지역이 해 나갈 방향을 잡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도록 하였다.
교육후에는 여러가지 효과가 나타났다. 어떤 농민은 사유재산인 농지를 지역발전을 위해 농산물 집하장 부지와 길로 내 놓았다. 행정은 지역의 예산이 어디에 쓰여야 하는 지를 알고 능동적인 지원을 시작하였다. 지도기관도 어느 곳에 어떠한 기술이 집중적으로 필요한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책정된 예산은 효과적으로 집행되었다. 농협은 지역농업개발과 품목별경쟁력을 위해 행정, 지도기관과 무엇을 어떻게 협력하여야 효과적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시 군이 통합된 지역의 시군 금고는 농협이 주도적으로 유치하게 되었고 금고예금의 수익은 다시 지역농업개발에 재원으로 충원되었다.
교육원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여사님들, 청소, 난방,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등 모두가 밤 늦게까지 정성을 다 하였다. 이러한 땀의 대가는 칭찬의 보답으로 이어 졌다. 시장 군수회의에서는 “친절 봉사교육은 창녕교육원에 가 보아라” 라는 말이 회자 되기도 하였다. 그 해 교육을 마친 12월 전교직원이 한라산 윗새오름을 등반하였을 때는 전교직원의 사기가 최고조로 고양된 순간이기도 하였다. 인간은 어떠한 고생보다도 값진 보람의 긍정적 가치가 우리에게 더 소중하고 가슴에 와 닿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물만 먹는 하마인 농업이라고 하자. 이 시대 따로 국밥이 없다. 시장개방이라는 농업 농촌의 난관 앞에 민과 관이 하나되어 토론하고 상호교육 함으로써 지혜로운 미래를 대비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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