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규제로 11대총선 불출마 제하고 5대 이후 모조리 출마
72세의 고령에 4선을 이룬 이용희(李龍熙)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의 공천이 우여곡절 끝에 막판에 이루어져 화제가 됐다.
이 고문의 공천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그가 총선연대의 2차 낙천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부터다. 개혁을 모토로 하는 우리당에 있어 총선연대의 입김은 크다 않을 수 없으며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 고문의 이에 대한 해명과 반격은 거셌다. 자신이 낙천 대상 명단에 오른데 대해 “국가 발전과 정치개혁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일단 수용태세를 보인 이 고문은 “본인의 정치인생 전반은 군부독재와의 투쟁이었으며 그 투쟁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본인의 지역의 민주화가 조국의 민주화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런 삶을 살아 온 본인에게 소명할 기회도 없이 갑자기 낙천명단에 포함된 절차상의 문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면서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그 절차도 중요하다”며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서 소명서를 자발적으로 보냈다.
‘알선 수재’란 원인무효 주장
한 건은 96년 9월에 있었던 교육감선거와 관련한 것으로 ‘당시 본인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던 사람은 수십년전부터 본인과 호형호제하는 막연한 사이로 순수한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 뿐이고 당시 교육감선거에 출마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선수재란 죄명은 당연히 원인 무효’라면서 “당시 검찰측(서울지검)에서 정치사정의 일환으로 본인에게 교육감선거 알선수재운운하며 불공정한 수사를 했었다”고 해명했다. 이 고문은 당시 집권여당인 강삼재 사무총장이 YS를 업고 DJ를 맹공하면서 입게 된 ‘억울한 희생’을 자신이 입게 된 경위도 소상히 밝혔다.
아울러 “16대 국회의원 총선 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해서는 어려운 지역주민에 대한 조그마한 ‘성의’가 결코 부끄럽지 않는 행위이나 선거법위반이 된점에 신중치 못했음을 유감으로 여긴다”고 해명했다.
지역구에서 경선 통해 후보 확정
그러나 이 고문은 자신이 한국전쟁에 소대장으로 참전, 몸에 4조각의 파편이 박혀있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고 ‘상이6급의 국가유공자’이고 또 5·18광주민주화 항쟁때에는 처절한 활동으로 충북지역 유일의 광주민주화 유공자로 선정되었음도 첨기했다.
아무튼 이러한 소명이 인정되어 이 고문은 지난 3월24일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확정됐으며 여세를 몰아 야당후보와의 격차를 벌이고 끝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36,991표로 차점자와 6,844표차다. 그야말로 인내와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다. 이 고문은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후 제11대총선에 신군부 정치규제에 묶여 불출마한 일을 제하고 역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해 9,10,12대 의원에 당선됐고 나머지 총선에서는 번번히 석패했다가 이번에 당선돼 ‘기네스북’감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 고문은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과 자신의 인기가 겹쳐 초반에 좋은 활약상을 보였으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외가바람’이 불어 선거 막판에 한나라당 후보가 추격해 위기를 맞았다. 선거구민의 현명한 판단에 의해 영예를 안게 됐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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