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줌마의 ‘행복한’ 봉사활동
시민단체 활동에서 장애인 보모까지, 1주일이 부족한 가정주부 편숙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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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낮시간을 무료하지 않으면서 의미있게 보내자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편씨는 '이제는 이 일이 마냥 행복해서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
가정주부 편숙희(46)
씨는 1주일에 네 번 봉사활동을 한다. 월요일엔 ‘아름다운 가게’ 휘경점, 화요일엔 원자력병원, 목요일엔 ‘동천의집’, 금요일엔 서울특별시립뇌성마비종합복지관.
가는 곳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편씨는 한결같이 “순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열혈 자원봉사자가
되기까지, 그녀의 사는 얘기를 들어봤다.
첫 호스피스 환자 죽음 후 충격
“종교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이런 일을 한다니까 뭔가 특별해 보이나봐요. 그런데 전 종교도 특별한 신념도 없어요.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죠.”
처음 시작은 자녀가 학교에 가고난 낮시간대에 무료하지 않게, 그러면서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단순한 동기로 출발했다. 때마침 고려대
사회교육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이 마련됐고, 편씨는 전부터 관심 뒀던 터라 이거다 싶어 수강했다. 6개월 과정을 수료하고 편씨는 드디어 환자와
첫 대면을 했다. 호스피스의 성격상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환자였다.
“20대 백혈병 남자환자였어요. 그런데 제가 인사를 하러 간 날 갑자기 발작하더니 며칠 후 세상을 등졌죠. 처음 인연을 맺었던 환자가 바로
그렇게 되니 충격이 너무 컸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하고 그렇게 환자를 보내고 나서 편씨는 “솔직히 겁나 또 다른 환자를 만나기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좀 더 나이가 들면 하자는 결심으로 우회한 것이 뇌성마비복지관 유아교실 봉사였다.
“7~8세 아이들을 돌보죠.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운 아이들이라 선생님 외에 간식 먹이는 것에서 대소변누기까지 세세한 손길이 필요해요. 반응이
없는 아이들을 대신해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하죠.”
“순수한 사람들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쁨”
1996년부터 시작한 유아교실 봉사를 편씨는 지금까지 줄곧 해오고 있다. 말을 할 줄 아는 아이가 거의 없어 힘들 때도 있지만, 편씨를
보면 벙긋 웃는 아이들이 모든 시름을 잊게한다. 또 출석을 불렀을 때 이름을 알아듣는 아이를 보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자기의 이름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죠. 그래도 졸업할 때쯤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반응을 보여요. 그 모습이 때론 뭉클하죠.”
편씨는 작년부터 노원구 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 ‘동천의집’에 매주 방문, ‘엄마’로서 생활하고 있다. 또 한국이웃사랑회에 8년간 후원금을
보내고 있으며 중증장애인재가복지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편씨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역시 호스피스다. 원자력병원에서 소독하는 봉사를 하는 것도 병원과 계속 연계하고 싶기 때문이다.
“조만간 독거노인 간병봉사활동을 시작할 계획이에요. 그분들은 떠날 때 아무도 없거든요. 그분들이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특별할 게 전혀 없다는 편씨는 “내 마음이 마냥 행복해지는데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느냐”며 웃음 지었다.
“동네분들이 그러더라고요. 노원구에 살면서 가까운 미사리에 안 가본 주민은 저밖에 없을 거라고. 그래도 어째요. 그곳에 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소중한 사람들 만나는 것이 더 즐거운 걸요.”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