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다리로 당당히 서다
장애인에게 희망과 용기 불어넣는 카운슬러 김진희
그녀는 너무도 밝았다. 처음 만났음에도 주저리주저리 수다를 쏟아내고 조금이라도 재밌는 얘기가 오고가면 금새 까르르 웃어댔다. 마주한
사람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전혀 주눅들거나 쑥스러워하는 기색 없이 그녀는 매우 당당하게 대화를 나눴고, 그러면서도 가끔은 여성스런 애교를
선사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은 김진희(38), 절단 장애인이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 잃어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녀가 이렇게까지 명랑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7년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2004년 아닌가.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잘 나가는 미술학원 원장이었다. 1997년 3월 중앙선을 넘어온 5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전에 말이다.
그 사고로 그녀의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는 떨어져 나갔고, 오른쪽 눈을 제외한 나머지 얼굴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졌다.
4차례의 성형수술로도 원래 모습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는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도 떠나 보냈다.
“자살 시도도 여러번 했어요. 내리막길에서 휠체어 잡은 손을 놓아보기도 하고, 벽에 머리도 박아봤죠. 하지만 죽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러던 1998년 가을, 신문기사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두다리에 의족을 끼고서 슈퍼모델 겸 육상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에이미
멀린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그녀를 자극했고, 희망을 안겼다.
“장애인이라고 인생을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이렇게 숨어있어서는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왔죠.”
음지에서 양지로, 장애인 인권 주장
그녀는 장애인 카운슬러로 변신했다. 홈페이지(www.uk-ortho.co.kr)를 열어 자신의 경험담을 비롯, 장애인 복지사항과 해외여행
시 유의점, 외국 재활기관 이용법 등 다양한 자료를 제공했고, 더불어 밤을 새워가며 절단장애인들의 고민을 듣고 일일이 답변을 달았다.
“중도장애인들은 사고를 당하기 전과 후의 생활방식이 너무 달라 큰 혼란을 겪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때문에 서로의 노하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한데 그 창구 역할을 제가 하게 됐죠.”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그녀는 활발한 활동을 했다. 휠체어, 목발, 좌욕기, 의수족 등을 모아 국내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 베트남
등지에 전달했고, 장애인이지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경제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과 스폰서를 연결해주는 것도 그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그리고 올해 그녀는 ‘한국절단장애인협회’
발족과 장애인 패션쇼를 개최할 예정이다.
“평균적으로 매일 25명이 절단장애인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부 정책이나 지원이 매우 미비하고 편견 또한 여전하죠. 그래서 장애를 갖게되면
우선 감추고 숨기게 돼요. 마치 죄인인양 말이에요. 제가 이렇게 ‘나대는’ 것은 조금이라도 장애인의 인권이 나아지길 바라는 바람 때문입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