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합병바람이 수그러들면서 자체 개발한 상품과 거래시스템 등에 대한 특허·실용신안권 출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허나·실용신안권으로 인정받을 경우 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해당 품목에 대해 진입장벽이 생기기 때문에 자사의 시스템과 상품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은행권의 이러한 기술개발이 신상품 개발쪽에는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허취득은 일거양득
최근 은행권이 특허·실용신안권 등을 획득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은행들은 자체 개발한 상품이나 시스템 등에 대한 특허를 취득할 경우 경쟁은행의 진입을 막으면서 상품도 보호할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외환은행은 외화현찰과 여행자수표(T/C)를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환전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이버 환전서비스’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도 고객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해외뮤추얼펀드 매매를 위한 ‘해외펀드 매매시스템(AFLS)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다.
AFLS는 외환 환거래와 환헤지를 위한 선물환계약 등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고객의 거래시간 단축과 환위험을 자동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국민은행 측은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은행이 지불결제 중개자로 참여해 인터넷의 지불결제를 보증하는 ‘어스크로 서비스 시스템’을 출원했고 신한은행도 금융상품인 ‘외화재테크적립예금’에 대해 특허청에 신청한 상태다.
은행권은 이와 관련 “치열한 경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면서 “은행들이 자체개발한 상품과 서비스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취득에 공을 드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원 중 20%만 인정받아
이처럼 자사의 상품과 거래시스템 보호를 위해 은행이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허권이나 실용신안권을 획득한 것은 미미한 상태여서, 아직 국내은행 선진형으로 가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를 인정받는것도 인터넷 시스템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고 신상품이나 선진투자기법을 활용한 것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고객 서비스 부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허청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신청한 특허·실용신안권은 모두 115건. 이 가운데 정작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20%인 24건에 불과했다. 특허를 신청했지만 거절된 것이 48건인 것을 감안하면 등록율이 낮은 수준이다.
출원건수는 우리은행이 42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26건) 신한(16건) 외환(10건) 순이었다. 반면 실제 특허나 실용신안권으로 등록된 것은 우리은행(8건)에 이어 한미(5건) 외환(3건) 순이었다. 국내 최고 은행이라고 고집하는 대형은행들이 출원에 비해 등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타 은행에 비해 기술개발 부분이 미흡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허출원 내용도 고객과 직접적으로 연결됐다기 보다는 인터넷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은행이 선진 금융상품 개발보다는 내점 고객 줄이기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은행들은 자체 개발한 상품이나 시스템 등에 대한 특허를 취득할 경우 경쟁은행의 진입을 막으면서 상품도 보호할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인터넷·시스템 관련에 편중
실제 은행권이 특허나 실용신안권에 등록된 내용을 보면 23건 가운데 30%가 넘는 8건이 인터넷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은행의 경우 특허권 3건을 등록했으나 모두 인터넷과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인터넷을 이용한 환전시스템 및 환전 방법’ ‘인터넷 커뮤디티를 통한 환전시스템 및 그 방법’ ‘인터넷을 이용한 주도해지 예금신탁 운용 시스템 및 그 방법’ 등 인터넷 관련된 거래에 집중돼 있다.
한미은행도 실용신안권으로 등록된 예금통장을 제외하면 특허로 인정받은 것은 ‘사이버브랜치 뱅킹 시스템’과 ‘펌뱅킹을 이용한 네트워크형 실시간 금융계좌 이체시스템과 그 방법’ 등은 내점 고객이 아닌 전화나 인터넷 등을 이용하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다. 조흥은행 또한 ‘인터넷을 이용한 무역업무 처리방법’이라는 내용의 특허를 받았다.
은행들의 이러한 행태는 창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활발하게 기술개발을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특허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주장해온 선진금융기법 도입과 같은 쪽은 아직도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서울에 사는 K모(38)씨는 “은행들이 새로운 시스템이나 상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개발이 편중돼 있어 자주 출입하는 서민들이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신종명 기자 skc113@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