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시장주의자’로 국내 최대은행을 이끌어온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이 제재심의위원회로부터 ‘문책경고’라는 제재가 취해지면서 국민은행 회계위반 사건이 일단락 됐다.
금융감독 당국이 `신(新)관치’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중징계를 결정한 것은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증권사 출신으로 주택은행 행장직을 맡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주의 CEO’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통금융기관인 은행에 입행한 그의 떠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회계부정이 치명타
국민은행의 회계처리기준 위반은 국민카드의 합병을 2003년 9월 결산일에 전격적으로 행한게 화근었다. 국민카드 합병 당시 대손충당금 등 1조6,564억원을 합병전에 카드사에서 설정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합병 후에 계상했다.
자금을 ‘지분법 평가손익’으로 처리돼야 하지만, ‘합병관련 대손충당금 전입액’이라는 항목으로 1조2,302억원이 잘못 처리됐다. 국민카드를 합병할 당시 1조3,720억원의 손실을 낸 것을 대손충당금을 계상하지 않아 마치 2,844억원의 이익을 낸 것처럼 허위 기재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이 국민카드 합병과 관련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했다며 국민은행에게는 과징금 20억원, 감사인지정 2년과 함께 시정조치했다. 또 국민은행을 감사한 삼일회계법인에게는 손해배상기금 추가적립 25%, 특정회사 감사업무제한 2년과 함께 벌점 30점 조치했다. 아울러 공인회계사 2명에게는 감사업무에 대한 책임을 묻고 경고와 감사업무제한조치를 내렸다.
국민은행은 이에 대해 “담당 회계법인과 국세청을 통해 충분히 알아보았다”고 주장했으나 ‘국민카드 합병관련 합병세무 절세전략보고’라고 돼 있는 국미은행 재무/전략본부 회계팀에서 지난 2003년9월에 작성한 문건에는 절세를 위한 회계처리 등과 관련해 삼일회계법인과 국세청과의 질의·응답 등에 자체 의견을 담아놓았다. 보고 문건임에도 팀장, 부행장, 행장, 상임감사 등이 결재란에 사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 행장의 거취는 좁아졌다.
행내외 평가 엇갈려
주택은행 행장으로 임명되면서 ‘연봉 1원’이라는 획기적인 제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김 행장은 그동안 노조와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 주가는 떨어질 때로 떨어진 상황에서 어느 누가 행장으로와도 주가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게 금융게의 관측이다.
특히, 국민은행과의 합병이 이뤄질 시기에는 그에 대한 평가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김 행장은 ‘시장주의자인가, 로비스트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외적인 활동은 왕성했지만, 회사경영에 대해서는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병 당시인 2000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각각 11.18과 9.92였는데 이듬해 10.23 2001년 10.41에서 지난해에는 10.10까지 곤두박질 쳤다.
카드대란이 불거질 시기인 지난 2002년 이후에는 가계대출을 확대하면서 종합통장 대출과 다세대 중도금대출, 인터넷 대출 등의 연체가 급증 경영능력에 타격을 입었다.
이는 국민은행 노동조합이 발표한 김 행장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올 초 노조가 직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82%의 직원이 행장연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여론조사의 속내를 드려다 보면 김 행장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은행측만이 아니라 6년간 선장이었던 주택은행 직원들조차 3명중에 2명은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김 행장이 은행을 경영하면서 스톡옵션 도입과 미국증권시장 상장 등 금융권도 기업으로 주주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차기 행장은 누구?김 행장 퇴임이 결정되면서 국내 최대은행을 이끌 후임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기행장을 선임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 만 큼 비상경영이 불가피한 상태다.
그러나 김 행장이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하면 현재 9명의 부행장 중에서 이번 회계규정 위반과 관계없는 적당한 인사를 뽑아 행장의 직무를 대행시키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그동안 김 행장이 추진해 온 전략적 제휴와 외국은행 인수, 팬아시아정책 등 은행의 큰 사업 방향에 대한 결정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의 이번 결정으로 국민은행의 상설기구로 운영되고 있는 ‘은행장 후보 추천위원회’(행추위)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행장 선임을 위한 임시주총이 다음달 29일로 예정돼 있고 주총 2주전에 안건과 소집통보를 해야하는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다음달 14일전까지는 후보 선정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일정은 김 행장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제재가 감안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행추위의 행장후보 선정은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신종명 기자 skc113@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