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여름철 무더위는 조기 사망을 비롯해 건강 악화로 인한 병원 방문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질환 위험도 높아진다.
생리적인 불균형 나타나
폭염은 급성심정지 위험을 증가시킨다. 오세일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강시혁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이 급성심정지 환자 5만 318명을 분석한 결과, 폭염으로 급성심정지 발생률이 증가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 중 최고기온이 28℃일 경우 급성심정지 발생률은 가장 낮았으나 기온이 1℃씩 올라갈 때마다 급성심정지는 1.3%씩 발생이 증가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은 폭염에 더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또 심정지 환자를 시간대 별로 분석한 결과, 폭염이 아닐 때에는 오전 7시~오전 10시에 급성심정지 발생이 많았던 반면, 폭염인 날에는 오후 3시~오후 5시에 급성심정지 발생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로 조사됐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급성심정지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폭염은 기상청 기준으로 33℃ 이상의 최고 기온이 이틀 이상 지속될 때를 의미한다. 기상청은 낮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경우가 이틀 이상 지속될 때 ‘폭염주의보’를, 35℃이상인 경우가 이틀 이상 지속될 때에는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폭염으로 인한 주요 인명피해로는 2003년 유럽에서 약 7만 명이 사망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1994년 폭염 당시 3,384명이 사망했다.
극심한 폭염 속에서는 탈수, 전해질 불균형, 신장 기능 이상, 자율신경계 불균형, 혈전 발생 등 여러 생리적인 불균형이 나타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특히, 심혈관계가 취약한 사람에게는 이런 변화가 급성심정지와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체온이 올라가면 혈관을 확장해 땀을 배출시키는 데 넓어진 혈관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심장이 무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폭염이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에 있다. 최근 질병관리청 의과학지식센터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위협과 대응방향’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권호장 단국대 의대 교수가 발표한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영향 및 적응정책’에 의하면 지구 온도가 4도 상승하면 50년 만에 한 번 오던 폭염의 횟수가 최대 39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 의대 심장의학과 부교수인 칸타나 박사는 “앞으로 수 십 년에 걸쳐서 극한 폭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사망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라며, “극한 폭염은 전체 인구의 서로 다른 계층에 대한 악영향이 고르지 않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건강평등권 문제와 보건 차별의 문제가 앞으로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신장애 증상 악화시켜
정신장애인에게 폭염은 증상 악화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장애 등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폭염으로 사망할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3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환희 부산대학교 정보의생명공학대학 의생명융합공학부 교수팀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와 관련해 최근 16년간(2006~2021년)의 자료 45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여름철 폭염에 노출된 지적장애인, 자폐스펙트럼장애인, 정신장애인 등의 응급실을 경유한 입원 위험이 비장애 인구에 비해 4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름철 폭염에 노출됐을 때 응급실을 경유한 입원이 비장애 인구의 위험이 1.05배 증가한 데 반해 지적장애인 1.23배, 자폐스펙트럼장애인 1.06배, 정신장애인 1.20배가 증가해 비장애 인구에 비해 정신장애 인구는 초과입원 위험이 최대 4.6배의 증가폭을 보였다. 평소 입원 인원을 100명이라고 상정하면 폭염 시 비장애 인구는 105명으로 5명 증가하고, 지적장애인의 경우 123명으로 23명 증가해 증가폭이 4.6배에 달하는 것이다.
무더운 날씨는 강력범죄 발생 비율을 높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등 신체적 질환과 같은 영향을 정신적으로도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미국 콜롬비아대 공공보건대학원과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 공동 연구팀이 미국 시카고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일어난 총기 사건과 날씨와의 상관관계를 연구 조사한 결과 일평균 기온이 상승하면 하루에 총을 쏘는 횟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카고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1만 4,633건의 총격이 있었고, 3시간당 평균 1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하루 평균 기온은 15.3도로, 평소보다 3도가량 더 높았다. 특히, 기온이 평균보다 10도 높아지면 전체 총격 비율이 33.8% 더 높아졌다. 평일에 기온이 평균보다 10도 상승하면 34% 더 많은 총격이 발생했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42% 더 많았다. 평균 총격 횟수는 2월이 가장 적었고, 8월이 가장 많았다. 하루 평균 총격 횟수는 8.0번이었고, 특히, 주말(10번 이상)과 공휴일(최대 9번)에 더 많았다.
프랑스 보건 연구소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정신·심리학·신경과학 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미국에서 2013~2015년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분석한 결과 여름철 총격 사건 사망자와 부상자 수가 뚜렷하게 증가했고, 이런 양상은 3년 간 해마다 반복됐다. 총격 사건은 5월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8월까지 증가하다가 9~10월부터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계절은 적대감, 분노, 짜증, 불안감 등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가정폭력의 증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네소타 캐서린 대학 연구팀은 홍수와 가뭄, 극심한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정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유의미한 통계를 제시했다. 국가 보건 데이터를 근거로 작성된 통계는 ‘극심한 기후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에서 가정 폭력이 60%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폭염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1차적인 뇌의 기능적 이상을 불러일으키는 외에도 정신건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생활습관, 특히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견해도 있다. 기온이 높으면 수면의 질이 저하되고 이 같은 건강하지 못한 수면 상태가 지속되면 정신질환에 취약하게 된다.
수면 최적온도 18~22도로 열대야 속에서 수면의 질은 급격히 낮아지고 이는 신체적 건강과 함께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팀이 10년 간 한국 성인의 수면특성 변화와 우울증과의 관련성을 확인한 연구에서 7~8시간 수면을 취한 사람의 우울증 유병률이 가장 낮았다. 5시간 미만 수면을 취한 사람은 적정 수면시간을 취한 사람보다 3.08~3.74배, 9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면 우울증 유병률이 1.32~2.53배 높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