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반복되는 여야의 ‘힘겨루기’를 보다 보니 국회 출입한 지 4년이 훌쩍 지나갔다. 철 지난 레코드판이 돌고 도는 것처럼 야당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재표결이 무한 반복되면서 정쟁을 보는 시선도 무뎌진 느낌이다. “역대 이런 국회는 없었다”는 모 선배기자의 말에 자조적인 한숨이 잔뜩 묻어난다. 한창 진행 중인 22대 국회 첫 국감에서도 여전하다. 장이 서자마자 여야가 상대에 쏟아내는 격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가 실종된 여야 강대강 대치로 ‘민생 국감’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이런 정쟁의 쳇바퀴 속에 반년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구직자는 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8월 기준 실업자 수는 56만 4,000명으로, 이 가운데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 실업자는 20.0%인 11만 3,000명에 달했다. 외환위기 당시 1999년 8월 이후 2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장기 실업자는 올 3월부터 다시 늘기 시작해 최근 6개월째 증가추세다. 전체 실업자 수는 7월부터 지난해 동월 대비 두 달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인데 장기 실업자는 오히려 늘면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장기 실업자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장기 ‘쉬었음’ 청년도 올 들어 다시 증가세라고 한다. 청년층 경제활동참가율이 넉 달째 뒷걸음질 치고, 청년층 장기 실업자와 장기 ‘쉬었음’이 느는 건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한계상황에 몰린 자영업에 빨간불이 켜진 건 이미 오래다. 플랫폼·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가 2018년 이후 5년간 청년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233만 명 넘게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또 세계 최저 출생률에 세계 최고 자살률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 국민은 하루에 38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 통계를 보면 OECD 평균이 10.7명인 데 반해 한국은 지난해 기준 24.8명으로 압도적 1위다. 평균의 2배가 넘고 2위인 리투아니아(17.1명)와도 격차가 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 수는 줄었지만 자살률은 2년 만에 증가해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9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자살 사망자는 1만 3,978명으로 전년 대비 8.3% 증가한 수치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는 27.3명으로 1년 전보다 2.2명(8.5%) 늘었다. 2014년(27.3명) 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년 연속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10년 내 자살률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지만 추세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 중인 나라에서 세계 최고 자살률이 계속된다면 그 나라는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료대란에 대응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띄우기로 한지 수주가 지났지만 현재 별다른 진전은 없다. 반복되는 국회 파행과 보이콧, 서로를 향한 고성과 피켓 시위는 정치를 대표하는 광경이 된 지 오래다. 정치인이 입에 달고 사는 ‘민생’이 과연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고 있는지 때때로 궁금해진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안을 도출하는 게 정치의 할 일이라는 걸 모르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자극적인 단어들을 동원해 정치를 황폐화시키는 건 바로 그들이다.
국회가 각자도생과 진영 논리에 빠질수록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은 계속 막다른 절벽으로 몰릴게 뻔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이, 고공행진하는 물가로 줄도산 위험에 내몰린 소상공인이 처한 상황이 두렵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만큼은 이슈 중심의 정쟁을 멈추고, 정치 본연의 취지를 살리길 바래본다. 문제는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