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주총회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주총장을 뒤흔들어 놨던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장이 펀드시장에 직접 나타났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이끌며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그가, 이제는 전면전에 나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첫 먹잇감으로 지목된 대한화섬은 실제로 주가 급등이 현실화되면서 증권가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지배구조가 약한 기업들은 장하성 펀드의 다음 대상자가 아닐까 남 몰래 노심초사 하는 분위기다. 펀드의 목적으로 본다면 경영주로선 ‘적’이 되지만 소액주주 입장에선 더 없이 반길만하다. 증권가의 핵폭탄으로 돌아온 장하성 교수. 하지만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다, 돈벌이용이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소액주주를 위한 ‘약’이 될까, 국내 기업에 대한 ‘독’이 될지 의견이 분분한데…
장하성이 이용당하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유는 뭘까. 장하성 펀드는 지난 4월 버지니아대와 조지타운대 재단 등 국내외 10여개 기관이 투자한 1200여억원으로 출범했다. 이 펀드의 본래 명칭은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다. 자금조달과 운영주체는 미국계 운용사인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로 장하성 교수는 투자 자문 역할을 할 뿐이다. 장 교수와 관련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투자대상 기업의 지배구조 분석을 해주고 그 대가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장 교수는 이 펀드가 종국에는 ‘국부증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배구조가 좋아지면 자연히 주가가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주주를 포함 소액주주도 이익을 얻게 되고, 궁극적으로 국부증가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감시자 역할을 하던 시민운동가가 펀드를 농해 직접 자본시장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비판에 그는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하는 게 가능하고 사회책임펀드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장 교수는 1996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현 경제개혁연대 전신)의 초대 위원장으로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대기업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이며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재벌개혁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국내 많은 기업의 주가 저평가 현상이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기관투자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는 점에서 이번 행보는 그의 의지와 일관성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펀드를 설립하지 못했을까. 그는 “펀드에 대한 규제 때문에 국내선 활성화될 수 없게 돼 있어 투자자들이 원하는 바에 따랐다”고 밝혔다. 또한 펀드로 인한 보수는 전액 사회공익재단에 기부하기로 돼 있어 개인적인 이익 목적은 일체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장 교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라자드가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운용사가 외국계 사모펀드인데다, 조세 피난처인 아일랜드에 적을 두고 있다. 때문에 결국 지배구조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저평가된 가치주의 주가를 올려 단기 차익을 챙기고 떠나는 ‘먹튀’현상이 나올 것이라는 의견이다.
명분은 사회책임펀드, 목적은 돈벌이
이 때문에 외국계 자본으로 운영되면서 단기 차익만을 남기고 떠났거나 예정인 아이칸과 소버린과 다를 게 뭐냐는 비판도 따른다. 실제로 라자드 매니지먼트사는 소버린의 SK공략 시 자문을 받았으며, 미국에선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에게도 조언을 하기도 했던 기업 사냥꾼이다. 때문에 라자드가 국내 기업 실정에 밝은 장 교수를 이용해 이윤을 추구할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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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가 외국계 자본과 손을 맞잡을 계획이 있어서였을까. 최근 들어 국내 기업에 비판의 잣대를 휘두르던 장 교수가 친기업인으로 변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를 두고 장 교수는 지난 7월20일 강연회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내가 변한 게 아니라 기업과 시장이 변했다”고 대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크게 개선돼 더 이상 참여연대가 나설 필요성이 없어져서다. 또한 “외국자본은 무조건 투기자본이라는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리 기업을 지키려면 주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나서 한 달 후, 라자드와 손잡고 펀드를 내놓았다.
그는 장기가치투자로 지속가능한 가치창출 모델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영리 목적’보다 사회책임펀드 성격이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주식전문가들은 반대 논리를 주장한다. SRI펀드는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측면’에서 투자참여자의 관점을 충족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장하성 펀드의 경우 지배 구조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사전에 주주에게 투자의향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반적 SRI펀드와 다르다는 것이다.
외국계 자본의 ‘먹튀’현상을 따라갈 것이라는 일부 우려에 “앞으로 10년, 20년 장기적으로 펀드는 계속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최종 결정권이 라자드 측에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 펀드 투자 결정에 관련 지난 1일 “이사회가 결정하고 존리가 KCGF의 자문을 얻어 최종 투자 결정하도록 위임한다”고 공시했다. 존리가 사실상 투자대상을 선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장하성 교수를 전면전으로 내세운 라자드도 서서히 국내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국내 자산운용시장에 직접 진출을 금융당국과 협의 중이다. 최근 장하성 펀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 KCGF)는 ‘라자드 KCGF'로 이름을 정정했다. 때문에 처음부터 라자드 에셋매니지먼트가 KCGF의 설립과 운용을 주도하고, 장 교수는 일정 역할에만 그쳤는지가, 의혹을 갖게 하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