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정통부’ 나는 ‘SK’
그리도 급했나? 쫓기듯 팔아치운 KT
KT
드디어 민영화되었다. 지난달 21일 교환사채(EB)매각을 끝으로 정부가 마지막까지 보유하고 있던 28.36% 지분이 모두 민간에게 넘어갔다.
지난 87년 민영화 작업을 시작한 이래 15년만의 일이다. KT의 민영화는 일단락 되었지만 “SK를 위한 민영화냐”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절반 성공, 절반 실패
정보통신부는 지난달 6일 KT민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완전매각’, ‘적정가격매각’, ‘안정적인 전략적 투자자 유치’ 등을 목표로 정했다.
이 가운데 ‘완전매각’과 ‘적정가격매각’ 은 성공적이었으나, ‘안정적인 전략적 투자자 유치’엔 실패했다. 즉 제값에 다 팔았지만, 골고루
팔지는 못했다는 애기다.
‘KT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 ‘사외이사로 하여금 KT 경영진에 대한 견제’, ‘특정 기업의 KT 소유 및 경영권 획득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정통부의 민영화 방안은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력적이지 못해, 당초 정부지분 28.36%의 전량매각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정부는
작년 1월 KT 지분 14.7%(5천97만주) 매각때 불과 1.1%(333만주) 매각에 그치는 낭패를 겪은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냐”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략투자자에게 15%를 배정했으며, 3%이상 지분을 매입하는 전략투자자에게
사외이사 추천권을 인센티브로 내걸었다. 결국 공모가 5만 4,000원에 정부의 지분을 모두 팔았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략 투자자 유치’ 는 SK의 깜짝쇼로 인해 실패했다. 정통부는 당초 삼성,
LG, SK 등 3개의 재벌 그룹에게 5% 이하씩 지분이 분산되는 ‘황금분할’ 을 기대했었다. 따라서 3% 이상의 지분을 매입한 전략 투자자
2곳에 각각 사외이사 1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삼성과 LG를 KT경영에 참여하도록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SK는 동종업체이기에
사외이사 추천권을 갖지 못함)
그러나 SK가 KT주식매각에서 총 지분 11.34%를 확보, KT의 최대 주주가 되었고, 당초 최대 주주로 예상되던 삼성은 SK의 기습적인
대거 청약으로 지분확보에 실패했다. LG전자도 3% 지분확보에 실패해 사외이사 추천권을 갖지 못하게 됐다. 결국 어떤 기업도 KT의 사외이사로
참여할 수 없게돼 정통부는 바라던 전략적 투자자(주주)들의 상호견제 및 균형 구도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뭐가 그리 급했나”
이같은 결과에 대해 말이 많은데, 가장 먼저 정부의 안이한 행정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정 재벌이 최대 주주로 나설 가능성은 정통부가
KT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다만 특정 재벌이 삼성에서 SK로 바뀌었을 뿐이다. 애초 정통부가 제도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며 내놓은 민영화안 자체에 이미 빈틈이 많았다. 한성대 김성조 교수는 “애초 정통부의 민영화 방안은 매각시한에 맞추어 매각실적을
달성하는데 급급했다” 며 “특히 특정 재벌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각종 특혜 부여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및 ‘전문경영인체제 정착’ 이라는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 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의 관계자도 “정통부는 KT주식 전량매각에만 매달린 나머지 SK, 삼성, LG 등을 상대로 주식매입 종용에만 주력, 이번 SK의 대량주식
매입 등 변수에 대해서는 준비를 소홀히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통부가 국내 최대의 공기업인 KT를 민영화하면서 일개 민간기업의 동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번 민영화 과정이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년
SK 행태도 비판받고 있다. SK는 여러 차례 KT 주식 공모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막상 한도분까지 모두 청약함으로써 말을 뒤집었다.
지난달 6일 정보통신부가 KT민영화 방안을 발표한 후 SK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는 안 들어간다”, “KT지분 매입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이었다. 주식공모가 시작된 5월 17일에야 “참여를 고려하고 있다”, “실효성을 검토중이다” 등 다소 유보적인 말로 입장을 바꾸더니, 5월
18일 마감 몇 분전에 주식만 5% 청약했다.
SK의 ‘거짓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5월 18일 깜짝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은 SK는 “KT가 보유한 SK텔레콤의 지분인 9.27%
만큼만 지분을 매입하겠다”고 했으나, 5월 20일 5.77%의 지분을 추가로 청약, KT가 보유한 SK 지분을 초과한 9.55%를 확보했다.
다음날 교환사채(EB) 청약에서 잔여우선배정분 1.79%에 대해서 청약을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답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SK는 잔여배정 물량인 1.79%를 모두 교환사채로 청약함으로써 최종적으로 11.34%의 KT지분을 확보했다.
경쟁사 한 관계자는 “SK가 거짓말을 반복, 경쟁자를 속이고 승리를 쟁취한지 모르겠지만, 기업이미지는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며 “SK는
결국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년’이 될 수도 있다”고 비난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SK의 비신사적 플레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정통부는 SK의 KT지배강력 강화는 물론 향후 있을지 모를 KT인수 시도 차단에 적극
나섰다. 사실 SK가 KT를 인수ㆍ합병한다는 것은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당분간은 불가능하다. 또 SK(주) 최태원 회장이 직접 나서서 KT인수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SK의 거짓말에 뒤통수 맞은 정통부로서는 ‘소 잃었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대비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정통부는 우선 오는 7월 KT주주총회에서 최대 주주로서 마지막 권한을 행사해 정관에 전환우선주 발행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전환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와 달리, 발행과 동시에 보통주로 전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전환우선주 발행이 가능해지면 SK가 KT의 인수ㆍ합병(M&A)을
시도하거나 경영권 참여 또는 행사에 나서더라도 KT가 우호적인 주주에게 전환우선주를 발행, 인수ㆍ합병 시도를 저지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정관에 경쟁사업자(SK텔레콤)의 KT 이사회 참여 배제조항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SK의 KT인수ㆍ합병은 법적으로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전기통신사업법 제13조는 기간통신사업자간 인수합병은 정통부 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 SK의 KT인수ㆍ합병을 정통부의 장관의 인가권을 통해 차단할 수 있다. 또 SK가 KT를 실질적으로 지배함으로써 시장독점
문제가 야기될 경우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대상에 올라 정부는 독점행위 중지, 주식의 전부 또는 일부의 처분, 임원 해임, 영업양도 등의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정통부의 방안은 대부분 오는 7월 KT주총 때 정관개정을 통해 마련되는 것이어서 내년 이후 새로운 대주주가 된 SK가 또다시 정관개정을
통해 경영참여나 KT인수를 시도할 경우에는 마땅한 대응책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외에도 최대 지분을 가진 법인이나 개인의 의결권을
정부가 의도적으로 제한할 경우 자본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돼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