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겨울, 화재로 전소된 할머니의 집
지난 9월 21일, 남해군 이동면 초양마을에 잔치가 난 듯 여러 사람이 몰려들었다. 바로 화재로 집을 잃은 장봉순(84), 최영악(81) 두 할머니의 새 집이 지어져 남 못지않게 버젓한 입택식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 올매나 좋노! 그 고매운 맴 우짜몬 좋노, 우짜몬 좋노…” 화재와 경매로 집을 잃고 시름 속에 어려운 노후를 보내던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 두 명이 추석을 맞아 생애 가장 큰 선물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비로 황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 두 할머니는 올 추석 연휴 직전에 ‘사랑의 집 짓기’후원을 통해 깔끔하게 지어진 새 보금자리를 추석 선물로 받고 각계인사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렇게 입택식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희망마저 불태워버린 화재의 기억이 매 순간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최영악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큰아들과 함께 살다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지난 2001년 자신이 갖고 있던 집과 논밭이 경매에 넘어가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 지난 2004년부터 같은 마을에 홀로 사는 장봉순 할머니 집에서 함께 생활해 왔다. 하지만 두 할머니의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두 할머니가 동고동락 3년째인 지난 1월 전기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장 할머니의 집이 화재로 온통 불타버리면서 이들 두 할머니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후 최 할머니는 부산에 있는 친척집과 동네 할머니 집 등을 옮겨 다녔고, 장 할머니는 같은 마을에 사는 외동딸과 이웃집을 전전해 왔다.
이 원인 모를 화재로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장봉순, 최영악 두 할머니는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것에 가뜩이나 황혼이 드리워진 마음에 큰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기초생활수급자라고 정부에서 보조하는 최저생계비와 몇 푼 노인수당이 소득의 전부인지라 다시 집을 짓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헌데 화재현장에 출동했던 진주소방서측에서 e-아름다운기금에 지원요청을 하면서 희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십시일반 쌓아올린 마음의 벽돌

남해군은 우선 이들을 ‘사랑의 집짓기 사업’ 대상자로 선정, 보조금 2천만원을 투입하고 외부 도움의 손길 등을 받아 연건평 48㎡ 규모의 작고 아름다운 조립식 집을 지어주기로 한 것이다. ‘한 지붕 두 가족 할머니’를 위한 이 ‘사랑의 집짓기’에는 장남인(전 재부산 남해향우회장)씨 등 독지가들과 이랜드복지재단인 ‘e- 아름다운 기금’, 그리고 남해군내 각 기관단체 및 초양마을주민 등이 동참했다.
그렇게 남해 초양마을의 ‘한 지붕 두 할머니’ 가족 새 집이 지어지던 날, 이 ‘사랑의 집’ 입택식에는 하영제 남해군수와 면내 기관단체장, 자원봉사, 마을주민과 아름다운 기금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 새로 지은 주택의 열쇠함과 ‘사랑의 집’ 표지판을 달아주고 그들 할머니들의 행복한 삶을 기원했다.
이날 동네 부녀회에서는 앞치마를 질끈 둘러매고 행사를 도왔고, 화재 시 손실한 가재도구는 마을 주민들이 알음알음 모은 돈으로 구입하여 거의 다 충당이 되었다. 집 한 켠에 쌓아 올려진 휴지, 세제, 가스렌지, 이불세트를 보니 두 할머니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하늘에 닿는 듯 했다. 찾아오는 가족도, 그간의 보금자리도 다 잃어버린 팔순의 두 할머니에게 이제 소망이 있다면, 이제 아무 일 없이 그저 평온하게 삶을 살아내는 것 일게다.
“여긴 바람이 잘 통해서 참 좋아…”
현관문 앞에 앉은 장봉순 할머니가 바닥을 손으로 쓱 쓸며 말한다. 이렇게 새 집이 지어져서 너무 좋다는 말일 게다. 모두가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때라서 꼭 안아드렸더니, 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시다. 부디 이제는 텃밭에 채소를 재배하며 하루하루 사는 소소한 기쁨이 새로 지어진 집에 가득가득 담겼으면 좋겠다는 소망 한 마디를 두고 떠났다.
그날 입택식에 모인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겉으로 보면 하나같이 무채색처럼 보이는 이들이지만, 이 모두의 노력으로 인해 두 할머니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생각하자, 산타클로스는 결코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새 집에서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E-아름다운기금이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화재 등 재난, 재해 이웃의 경제적, 심리적 재건을 목적으로 이랜드복지재단이 아름다운재단에 10억을 기부하여 운영되는 순수민간기금으로 자연재난, 화재, 붕괴, 폭발에 의한 주택복구비 및 의료비로 개인 최대 500만원 범위 내에서 지원한다. 단 지원대상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및 2007년도 기준 최저생계비의 150% 이하(차상위 150% 이하)에 해당하는 재난 피해 가정에 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