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해도사람은 미워 말라’는 말이 있다. 악의적인 범죄를 저질러 세인들의 따가운 지탄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쩌다보니 범죄의 늪으로 빠져 불행의 길을 걷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대한민국 검찰이 뽑은 지난해 가장 아쉬운 사건을 돌아봤다.
빈번한 구속영장 ‘기각’의 후유증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례가 빈발하면서 타당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법원이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3회나 기각한 도박 프로그램 제공자가 공범이 검거되자 도주한 사건이 발생한 사건이 있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도박 프로그램 개발업체 대표 이 모씨(34세)는 공범 심 모씨(33세)로부터 도박 프로그램 개발 및 제공 대가로 1억 원 및 추가옵션을 받기로 했다. 이후 이 모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1개월간 약 46억 원 상당의 게임머니를 심 씨에게 제공했고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던 중 하위조직인 지방 PC방에 단속되기 직전, 이 모씨 등 일당은 태국으로 출국했다. 태국에서 여권 유효기간이 만료되자 두 차례 연장하던 가운데 인터폴에 수배로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다.
이때 검찰은 이 모씨에 대해 3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타겟을 공범인 심 모씨로 돌렸다. 결국 지난 10월 6개월간 심 씨를 검거, 구속했고 이 씨에 관한 사건 전모를 밝혀냈다. 이런 사태를 알고 있던 이 씨는 가족과의 연락도 두절한 채 도주해 버렸다. 검찰은 4, 5번째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으나 아직도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씨의 도주로 결국 하위 조직인 PC방 수사는 불가능해졌고 도박 프로그램 제공 공범들만이 징역 1년간의 실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박찬록 청주지검 검사는 “인터폴에 수배돼 온 피의자를 3회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정형적인 문구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의 판단이 옳았는지 현재의 구속영장 제도 운영이 합리적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식물인간 아들의 안락사로 ‘살인자’
식물인간 아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떼버린 부모,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윤 모씨의 아들은 오랫동안 불치병을 앓아오다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 그동안 힘겹게 살아왔는데 사고로 희망마저 잃게 되자, 윤 씨는 아들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편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자기 손으로 아들의 숨줄인 인공호흡기를 떼고, 아들은 사망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피의자 윤 씨는 화장터에서 아들의 변사체 지휘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윤 씨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경찰에 입건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비록 충분히 이해는 가나, 법이 인간의 생명을 최고의 법익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 사건이라 하겠다. 김윤선 광주지검 검사는 “비록 피의자 아들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회생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우리 법이 보호해야 할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에 피의자를 형사처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란 동영상 업로드 ‘조심’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은 잘만 쓰면 약이 되지만 나쁜데 쓰면 독이 된다. 인터넷에 음란 동영상이 만연히 유통되고 있다. 일반인들은 음란 동영상을 업로드 하는 것을 범죄 행위로 여기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도 엄연히 ‘불법’이다. 아직 청소년인 A군은 어머니 명의로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로 가입해 활동하면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적립하기 위해 음란 동영상을 업로드 했다. 경찰 사이버수사대에서 아이피를 추적한 결과 A군임이 밝혀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률위반(음란물유포 등)죄로 입건됐다.
A군은 “어머니 명의로 인터넷을 하면서 용돈을 절약하기 위해 범행을 하게 됐다”고 동기를 밝혔으나, 형사처벌은 피할 수 없었다. 박병규 서울서부지검 형사 3부 검사는 “음란 동영상 유포에 대한 처벌 의식이 없고 범행이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적발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과학적인 수사기법으로 범행 적발은 물론 처벌까지 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인면수심’의 구타유발자
세상엔 ‘인면수심’의 파렴치범들이 판을 친다. 말더듬이로 따돌림을 받아온 박 씨는 성격장애가 발생했고, 부모를 상습적으로 구타하여 실형을 복역하고 출소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박 씨의 구타에 못이긴 부모는 외숙모의 집으로 자주 도피 다녔다. 그러던 중 박 씨의 계속된 행패에 외숙모 가족들에게 구타를 당한 사실이 있자 “죽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고 한다. 박 씨는 아버지를 요치 4주의 상해를 입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법원이 “아버지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석방됐다. 집으로 돌아간 박 씨는 여전히 부모를 위협하고 구타하며 계속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등 행패를 일삼았다. 그러던 중 부모는 아들 박 씨를 피해 집을 나갔고 극심한 경제적 곤경에 빠진 박 씨는 외숙모 집을 방문해 부모의 소재를 추궁했다. 이에 박 씨는 외숙모가 부모를 숨겨주고도 소재를 알려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여 살인을 결심했다. 박 씨는 외숙모 집에 남자들이 집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몰래 들어가 외숙모의 며느리를 칼로 수차례 찌르고 이를 목격한 외숙모를 심한 구타로 살해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조재빈 청주지검 검사는 “항소심 재판부가 자식으로붜 구타 당하여 상해를 입었다는 부모의 말을 믿어 주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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