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된 내용이 확산되면서 '인터넷 괴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광우병 괴담을 계기로 촉발된 인터넷 괴담은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진 글을 퍼 가는 방식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급속하게 전파됐다. 비슷한 방식으로 한때 개똥녀 사건 이후 ‘인터넷 루머’가 이슈화가 된 적이 있긴 하지만, 최근엔 단순히 ‘루머’ 수준이 아니라 ‘괴담’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괴담은 약간의 개연성과 단서를 제시하고는 있지만 왜곡된 얘기가 대다수인데도 사이버상에는 인민재판도 벌어지는 기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같은 ‘알 수 없는 괴담’은 누리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그 배경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 괴담이 떠돌게 된 배경과 그 진실, 혹은 거짓을 파헤져 본다. 최근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를 통해 급속히 유포되고 있는 ‘괴담’은 대략 5가지로 요약된다.
괴담1. 인터넷 종량제 파문
이명박 정부의 공약사항으로 인터넷이 사용한 만큼 비용을 내는 ‘종량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괴담이 누리꾼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 처음 ‘루머’에 불과했던 내용은 실제로 ‘인터넷 종량제 테스트’가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기름을 부었다. 마우스 클릭 한번에 30원이 들어 인터넷 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터넷 종량제 실시’는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종량제 추진은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사실이 없으며 2004년 이후 정부가 종량제 추진을 검토한 바가 없다”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괴담2. 이명박, 독도포기設
지난달 말부터는 현 정부가 독도 포기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유포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독도를 일본에 팔아넘겼다’에서 ‘이미 독도 포기 절차가 시작됐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5월2일 독도 포기선언이 각종 웹 포털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4일 오전 ‘독도 포기 절차가 시작됐다’는 문자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면서 ‘의혹’은 ‘사실’처럼 바뀌어 유포됐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부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하고 “소문의 발원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괴담3. 광우병 전염設
최근 미국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고 있다. 광우병 괴담 가운데는 “정부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 “수돗물이나 공기로도 광우병이 전염된다”는 황당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미국산 쇠고기 졸속협상 무효화 특별법 제정 촉구’ 청원 게시판은 5월7일 현재 25만명이 서명에 동참하는 등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명으로 농림수산식품부는 구체적인 논거 없이 “수입 쇠고기는 무조건 안전하다”는 식의 주장이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괴담4. 정도전 숭례문 예언
괴담은 조선시대 정도전의 예언대로 숭례문이 소실돼서 나라에 재앙이 닥질 것이라고 까지 한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이 “숭례문이 불타면 국운이 다한 것이니 피난을 가야하며 나라는 쇠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일화에서 괴담은 시작된다. 이런 근거에 따라 올 2월 숭례문 화재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 등 재앙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과거 임진왜란 한일 강제합방 6.25전쟁 등과 같은 국가적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이 실제 이같은 예언을 했는지 조차 사실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다소 황당한 주장이지만 숭례문 화재와 더불어 최근 물가급등 국제유가 폭등과 같은 이상조짐으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괴담5. 수도.건보 민영화
최근 공기업을 중심으로 민영화 바람이 불면서 수도와 건강보험도 민영화를 타서 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는 내용이 확산되고 있다. 현 정부가 물산업지원법 추진으로 수돗물 사업을 민영화하면 하루 물 값이 14만원에 달하고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의료보험을 민영화하면 감기 치료비가 10만원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소문이다. 포털사이트 ‘수도민영화반대서명’에 3만9000여명이 참여해 의료비 양산 소문이 확산됐다. 괴담들 중에서 가장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기도 하지만 다소 과장된 측면이 많다.
“단속한다지만 글쎄…”
이같은 괴담은 ‘광우병 만화’ ‘탄핵 송’ ‘수도요금 계산서’ ‘인터넷 요금 계산기’ 등의 UCC를 만들어 내며 웹 포털, 블로크, 카페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논란이 ‘루머’에 그치지 않고 집단행위로 까지 확산되자, 정부는 대책마련에 진땀을 흘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따른 ‘광우병 논란’을 두고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5월7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누리꾼(네티즌)들을 상대로 오해를 해소하겠다며 인터넷 블로그를 통한 ‘끝장 토론’에 나섰다.
검찰은 인터넷괴담 등 사이버폭력에 대한 엄단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5월7일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임채진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 담당 부장검사들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연 자리에서 임 총장은 “사이버폭력은 거짓, 과장 정보를 인터넷에 유포해 정부 정책을 왜곡하고 사회 불신을 부추기는 심각한 범죄”라면서 “전담 수사팀을 중심으로 한 단속활동을 강화할 것”을 피력했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에 따라 유언비어를 유포한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겠다지만 하지만 단속에 적발돼도 이를 규제 또는 처벌할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의심된다. 47조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정작 해당 방통위는 ‘공익’을 어디까지로 봐야할지 기준이 애매모호해 이를 적용할 수 있을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인터넷 괴담이 횡행하게 되었을까?
이들 괴담은 ‘무책임’ ‘무분별’ ‘무자비’라는 3無하의 공통점이 있다. 대체로 명백한 근거 없이 그럴듯한 내용으로 국민의 감성적 분노를 자극한다. 한 누리꾼은 “괴담이라기보다 비판내용을 확대 재생산 한 것”이라며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루머들을 부풀려서 고의적으로 부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유언비어의 근원
괴담은 통상적으로 현실이 어려울 때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등장한다.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유가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살기는 더욱 힘들어지면서 현실의 돌파구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가상 현실’이라라는 말을 처음 만든 미국 컴퓨터 과학자 겸 작가 재런 러니어 씨가 2006년 인터넷을 통한 감성적 집단주의의 위험을 극단적으로 좌파나 우파, 마오이즘(마오저뚱주의), 독일 나치즘 같은 집단주의 운동에 빗대 사용한 ‘디지털 마오이즘(digital maoism)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인터넷 괴담 사례는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사회나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확산시키는 디지털 마오이즘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괴담이 나온 데는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쇠고기 문제’ 등 국민 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민주적 절차가 부족했고, 그나마 사후에 정확한 정보 공개도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낳은 근원지라는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정보를 감추고 숨길 때 ‘유언비어’가 생겨난다”며 “쇠고기 수입 결정과 관련해 자료 공개도 하지 않고, 해명도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릇된 사실로 소통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유언비어, 거짓말, 미신에 포위된 나라’라는 사설에서 “정부의 권위는 물론 신뢰할 만한 집단과 세력이 허물어진 것도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확산시키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광우병’ 괴담‘의 혹세무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정부의 무능한 태도를 비판했다.
‘괴담’의 내용을 보면, 보수 정권의 출범으로 ‘공공 안전망’이 흔들릴 것이란 불안감이 녹아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앞서 5대 인터넷 괴담 중에는 생활이나 건강과 직결되는 것들이 많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는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독도 포기라든가, 국운 소진 등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낳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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