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다. 물론 간혹 원하는 공부를 더 하거나 유학을 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삶과 미래를 위해 직업은 꼭 필요한 ‘수단’이다. 과거에 최고의 직업이라 함은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의사 변호사 판·검사 등이 꼽혔다. 하지만 최첨단과 정보가 주를 이루는 현대사회에선 단순히 돈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최고의 직업으로 평가하진 않는다. 이제 그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고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시대에 유행했던 직업을 보면, 그 시대의 사회, 경제상을 엿볼 수 있다. 광복 직후 유행했던 버스 안내양부터 현대의 미스터리 쇼퍼나 프로게이머까지, 시대별 직업상을 구성해 본다.
한국전쟁 이후 생계형 일자리…
70년대 화이트칼라가 대세
1930년대부터 대박산업으로 꼽혔던 광산업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돼 수많은 광산개발업자들을 양산해냈다. 자원이나 물자가 부족해 전국을 누비며 고물을 사들이는 고물상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광복 직후 당시 최고의 인기 직종은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였다. 초중고 교사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제때 현금으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이자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혔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서민들은 생계를 꾸리기조차 힘들었고 고작 날품팔이나 괴나리봇짐 장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고 엿장수, 소방수 등 생계형 일자리가 주목받았다. 전쟁 회복기였던 1950년대 중후반까지 인구의 약 80%는 농·어·임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했다. 굴뚝 청소원, 숯쟁이, 버스안내양, 전화교환수, 연탄배달원 등도 활발히 활동했다.
60년대는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산업화가 속도를 내기 시작한 ‘산업 태동기’다. 이때는 탈농촌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노동인력이 대거 도시로 유입되면서 다양한 직종이 생겨났다. 1차 산업에서 경공업으로 옮겨가면서 섬유·합판·신발 산업 기능공과 기술자, 공장 근로자, 전자제품 조립원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섬유·가발 공장의 여공은 서민층 여성의 대표적인 직업이 됐다. 버스안내양은 경제개발의 신호를 쏘아 올렸고 아나운서, 탤런트, 스튜어디스도 선망의 직업으로 꼽히기 시작했다. 성인들 사이엔 화이트칼라의 인기가 부각됐다. 은행원은 당시 손꼽히는 최고의 신랑감으로 부상했고 정년과 안정적인 보수가 보장되는 교사 군인 경찰 간호사도 인기였다.
수출과 중화학공업의 성장기였던 1970년대는 해외 건설붐이 일면서 근로자들이 중동 등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밖에 중장비 엔지니어링, 자동차 산업 성장 속에 떠오른 자동차 기계 엔지니어링, 토목·설계 기술자, 철강업 종사자, 전자공학 전문가, 수출전문가 등이 새롭게 각광받았다. 이 시기엔 사회경제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변모하면서 대기업 직원이 최고의 인기직종으로 부상했다. 특히 종합상사와 같은 대기업 직원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고 월급도 많아 선망의 대상이었고, 여성에겐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승무원이 최고의 인기직업이었다. 이 시기 나타난 특징은 외식업 창업의 등장이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외식쪽 해외브랜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 프랜차이즈의 효시로 꼽히는 커피전문점 ‘난다랑’이 1979년 7월 등장했고 같은 해 10월 롯데리아가 탄생했다.
외환위기 때 안정적인 ‘공무원’ 선호
산업의 고도화에 있던 1980년대는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게 젊은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운동선수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고액연봉을 받는 프로야구 선수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외국인 방문이 많아지면서 관광업, 유통 및 음식 숙박업 종사자가 급증했고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스포츠 외교 전문가가 주목받았다. 증권과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펀드매니저, 외환딜러 등이 선호직종으로 부상했고 반도체, 컴퓨터, 광고분야도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또한 88 올림픽을 전후로 대기업들이 외식산업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전국에 체인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반면 출퇴근 시민들의 길 안내자였던 버스 안내원과 동네마다 즐비했던 전당포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서울에만 7000여개 이르던 주산학원도 문을 닫거나 속셈, 보습학원 등으로 속속 간판을 바꿔 달았다.
90년대는 지식 정보화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했고 농·임·수산업 부분 종사자는 전체 근로자의 10명 중 2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었다. 동시에 금융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으면서 금융계 종사자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펀드매니저, 증권분석사 등의 직종은 깔끔한 이미지와 고임금 직업으로 선호됐고 IT가 발달하면서 프로그래머, 벤처기업가, 웹마스터 등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전문직과 공무원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군의 선호도가 크게 높아졌다.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사무직 근로자나 준전문직 종사자의 절반이 직장을 잃거나 기능직 또는 단순 노무직으로 전환됐다. 반면 의사, 법조인, 대학교수 등 전문직과 공무원은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겨 대학생과 구직자들 사이에 ‘철밥통’으로 대변되면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떠올랐다.
21세기는 직업 혁명의 시대
21세기에 들어서는 2000년대는 그야말로 ‘직업 혁명의 시대’였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지식경제 산업이 중심으로 떠올랐다. 클릭 한 번으로 정보를 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어짐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출몰했다. 소호,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 프로그래머, 프로게이머 등이 속속 등장했다. 손님처럼 매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나 인터넷 학습사이트인 ‘사이처’ 등 이색 직업군도 눈길을 끈다. 분야별로는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환경·에너지 산업 및 실버산업에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 유망직업은 어떤 직업일까. 전문가들은 미래엔 첨단의 가도를 달리는 환경과 달리 인간을 다루는 직업이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존에는 수공으로 하던 설계, 제작 등 생산의 모든 부분을 기계와 컴퓨터가 담당하게 되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분야가 떠오른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노인전문 간호사, 실버시티·심리치료사, 운동처방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M&A 전문가, 경영컨설턴트, 인사컨설턴트 등도 대내외 기업들의 수요가 늘면서 성장세를 달릴 것으로 보인다.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미래에는 선진국에 비해 직업수와 종사자수 모두 부족한 서비스와 복지분야가 주목받을 것”이라며 “또 정보통신업의 경우 지금도 거품이라는 의견이 잇지만 당분간 인력 수요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사전에 오른 직업 명칭의 수는 1969년 3260개에서 2003년 1만2306개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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