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탤런트 안재환 씨의 자살로 우리사회의 자살이 또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각종 의문과 안타까움의 담론이 지배했던 몇 주였다. 사실 자살은 이제 더 이상 몇몇 사람들의 특별한 비극이 아니다. 자살이 만연한 사회,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
이성적 대처보다 정서적 판단 많아
자살은 인간의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8대 사망 원인에 속할 만큼 자살 비율이 높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국내 자살 인구는 2005년 인구 10만명당 26.1명으로 OECD 주요국가 중 자살증가률 1위를 자치하고 있다. 1991년 이후 자살사망률이 꾸준히 증가해 10년 전에 비해서 2배 이상 늘어났다. 자살은 사망원인 4위로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통사고 환자 수와 비슷하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자살이 많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트레스가 많은 시스템을 지적한다. 경쟁과 변화, 갈등이 극심한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자살로 내몬다는 것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했던가. 단축된 산업화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이면에 가족붕괴와 전통적 가치의 상실 등을 경험했고, 온 국민을 철학 부재의 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한국적 감수성도 자살과 관련이 있다. 연세의료원의 전문의는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정서적인 면을 중요시하고 벌어진 상황이나 대인관계에 대처함에 있어 정서적 판단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이러한 성향은 위기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대처보다 정서적인 판단을 하기 쉽게 만들며 사람들은 극단적인 결정을 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업실패, 실연, 입시실패 등의 심리적인 충격에 대해 대처하기 어려울 때 자살을 생각하게 되며 충동적으로 이를 행동에 옮긴다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직접적 계기로는 갑작스런 사회경제적 위치의 상실 혹은 갑작스런 역할이나 지위 변동으로 인한 공황적인 심리상태,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등이 있다.
정신건강 의학 도움 잘 안받아
물론 자살은 의학과도 관련이 깊다.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장 이홍식 박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자살률이 준 것도 모두 약제의 영향이다”고 말한다. 물론 자살의 원인은 명확한 답은 없다. 최근 자살 원인에 대한 의학적 답을 찾기 위한 실험들이 진행되긴 했지만 대부분은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학적 작용들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계의 분석을 보면 자살이나 자살기도를 한 사람의 약 95%가 정신장애로 진단받고 있다. 그 중 우울증이 약 80%, 정신분열증이 10%, 그리고 기타 치매 또는 섬망상태가 5%다. 자살의 대표적인 원인병인 우울증 환자들은 실제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비율이 정상인보다 3배 이상 높으며, 우울증 환자가 실제 자살로 사망하는 경우도 15%나 된다. 우울증 병력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자살자들의 죽음 직전의 상태를 조사해보면 우울증과 비슷한 상태에 빠져있었던 경향이 나타난다. 무엇인가 상실감을 느끼거나 불안한 상황이 우울증에 빠지게 하고 자살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
의학적으로 우울증은 생체물질의 이상작용이다. 가을에 우울해지기 쉬운 것은 스산한 바람 때문이 아니라 세로토닌의 부족 때문이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뇌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도 감소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것도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라토닌 분비기능이 남성에 비해 50%이상 느리기 때문에 분비량이 낮아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자살자의 뇌 척수액을 조사하면 세로토닌의 기능이 일반인의 경우보다 많이 떨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세라토닌 처방은 자살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을 것이다. 컬럼비아대 정신의학 교수인 존 맨 박사는 세로토닌이 들어있는 항우울제의 처방률의 증가와 함께 자살율이 낮아졌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북유럽에 자살율이 높은 것도 일조량이 적어 세라토닌 분비가 적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죽고 싶다’ 말은 가장 뚜렷한 징후
물론 자살의 원인은 개인의 인격구조와 사회적 환경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생체물질의 기능 저하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다. ‘더 힘든 상황에도 꿋꿋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는데…’라는 비난은 적합하지 않다. 스트레스와 상처에 대처하는 기능은 신체적으로 뚜렷한 개인차가 있기도 하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개인차가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신적인 병에 대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는 경향이 짙다. 우울증도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신념이 있다. 이 같은 오해가 자살 증가를 부추긴다. 자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자살예방을 위한 과학적 대처법에 신중한 것이 자살을 줄이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이 박사는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살을 하지 않는다거나 자살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는 등의 통설은 오해”라고 강조했다. ‘죽고 싶다’는 말은 자살 실행의 가장 뚜렷한 징후다. 심한 우울증 환자는 입원 치료나 가족들의 관찰을 요할 만큼 자살 예방이 중요하다.
연세의대 전우택 교수는 전문가 토론회와 선진국의 자살예방전략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도출된 ‘국가 자살예방 전략에 대한 10대 제안’을 제시했다. △첫째, 2010년까지 국민의 절반이상이 자살은 예방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함 △둘째, 2010년까지 국민의 2/3 이상이 전문적인 정신보건서비스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갖도록 함 △셋째, 2010년까지 드라마와 뉴스 등 전체 대중 매체 내용에서 자살행위, 정신질환, 약물남용에 대하여 올바르게 다루도록 함 △넷째, 2010년까지 인터넷상의 자살 사이트 운영 및 정보교환을 차단함 △다섯째, 2010년까지 음독, 추락 등 치명적인 자살방법의 이용과 치명성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인 제반조치를 마련함 △여섯째, 2010년까지 자살예방 및 정신보건에 관한 내용을 초중고 의무교육과정에 포함함 △일곱째, 2010년까지 자살의 고위험군인 우울증, 알코올/약물중독환자들에게 조기진단 및 치료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시행함 △여덟째, 2010년까지 병원에서 치료받은 자살시도자들의 80%이상이 전문적인 정신보건서비스로 연결되도록 함 △아홉째, 2010년까지 자살의 위험에 처해있는 저소득층과 실업자의 자사감소를 위하여 사회안전망을 구축함 △열 째, 자살률 10% 감소를 위한 위의 제안들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살예방정책을 총괄적으로 조정하는 전담기구를 국무총리 또는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에 설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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