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뛰기 인생’ 레미콘 기사들, “우리도 노동자”
레미콘 총파업 그 후 2년, 다시 시작되는 힘겨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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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여의도 국회앞 레미콘 건설 운송노조의 파업을 경찰이 강경진압 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
2001년 4월10일
레미콘 총파업 이후 2년이 넘게 지났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법원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다’고 한다. 회사
측이 어떤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횡포를 부려도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미콘 기사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보장’, ‘유가 보전’, ‘레미콘 운반 단가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다시 일어서고 있다.
연료비 5배 인상, 운반비는 그대로
‘탕뛰기 인생’. 레미콘 기사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한 탕이라도 더 뛰려고 새벽 이슬을 맞으며 레미콘 차량을 몰고
일터로 나간다. 그리고 별이 총총한 자정 녘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이러다가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어느 레미콘 기사는 몸이 견디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덜컥 겁이 났다고 고백했다.
정규직원이었던 레미콘 기사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회사의 강요에 의해 ‘지입차주’라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말로는 레미콘
차량을 가진 어엿한 ‘사장님’이 된 것이다.
사장님이 됐지만 사정은 더 안 좋아졌다. 다달이 강제 불하받은 레미콘 차량값을 물어나가야 하고, 기름값, 차량정비, 차량보험료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회사에서 회전(레미콘을 현장에 한 번 운반하고 돌아오면 1회전으로 친다) 당 주는 운반비가 현실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1965년부터 레미콘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는 어느 늙은 기사는 “13년 전 160원이던 기름값은 800원대로 올랐는데, 회전 당 운반비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했던 당시 “버스기사 월급이 3만원이었는데, 레미콘 기사들은 3만5,000원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버스기사들은
200만원 가까이 받지만 지입차주가 되면서 80~90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한탄했다.
쥐꼬리만한 실수입
통장에 들어오는 돈만 보면 수입이 꽤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구체적으로 한 번 들여다보자.
건설경기가 좋다는 수도권의 경우 레미콘 기사들은 한 달에 120~130회전을 뛴다. 한 달에 28∼29일을 일하고 있는 현실. 하루 회전수는
4회전 정도가 되는 셈이다.
회전 당 운반비는 대략 3만5,000원. 월수입을 따지면 400만원 가량 된다. 하지만 이제부터 떼야 할 것이 있다.
우선 기름값으로 130~150만원, 그리고 차량 보험료로 20만원, 차량수리비로 30~40만원이 든다. 이것으로 끝이었으면 좋겠지만 차량할부금이
있다. 레미콘 차량에 대한 폐차기간은 정확히 규정된 바 없지만 기사들은 보통 10년에서 13년 정도 사용한다고 한다. 레미콘 차량의 가격은
새차가 7,000만원, 중고도 4,000~5,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렇다면 월 50만원 정도가 차량에 대한 감가상각비로 빠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차량을 폐차한 후에 다시 차를 사야 하기 때문에 새로 살 차를 위해 목돈도 만들어놔야 한다. 그렇게 또 50만원을 떼고 나면 남는
것은 실제로 1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것도 수도권이니 이 정도지, 지방의 경우는 사정이 더 안 좋다. 소화물량이 없다보니 차량 대금조차 제대로 갚지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삿돈 아끼려고 지입차주제 고집”
회사에 소속된 경우는 지입차주들보다 그래도 조금 낫다. 2만3,000여 명의 레미콘 노동자 가운데 회사 소속 노동자는 4,000여 명.
이들은 차량에 대한 감가상각이나 연료비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월등히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금전적으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운송노조 박대규 위원장은 영덕의
한 레미콘 회사를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43만원의 기본급을 받고 한 탕(회전)을 뛸 때마다 2,500원씩, 1km 당 60원을 받고
있었다. 18시간씩 일하면서 한 달에 8,000km를 뛴 기사의 통장에 입금된 돈이 겨우 130만원이었다.”
6월초 건설운송노조의 도움으로 이 회사는 노사간 협상에 들어가 작은 성과를 이뤄냈다. 기본급이 80만원, 1회전 당 3,000원, 그리고
1km 당 80원으로 인상된 것. 한 달에 두 번 쉬던 것도 매주 일요일에는 쉴 수 있게 됐다.
지입차주들은 회사 소속 기사들과 똑같은 일을 한다. 차량에 회사 마크를 달고 회사의 지시대로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거나,
혹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불평을 할 수도 없다. 너무 먼 곳이라서 기름값이 많이 든다고 불평할 수도 없다. 단지 다른 것은 차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인데, 이게 지입차주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지입차주와 회사소속 기사들의 가장 큰 차이는 노동자인가 아닌가다. 지입차주들은 회사에 매어 있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사업자가 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 개인사업자이니 당연히 보너스와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회사로서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항변한다. 좋아서 떠맡은 차량도 아닌데 회사가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박대규
위원장은 “회사가 차량 구입비, 복지후생비, 퇴직금 등을 아끼기 위해서 지입차주제를 고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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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한·일 레미콘 노동자들이 일본기업 태평양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항의한 적이 있다. |
한일 연대투쟁 계획
일단 노동부에서는 지입차주 레미콘 기사들의 성격이 회사에 매어 있는 노동자와 같다고 보고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회사가 계약을 해지해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법원에 그게 부당하다고 아무리 항의해도 법원은
정식으로 고용계약을 맺은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6월15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레미콘 기사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보장’, ‘유가 보전’, ‘레미콘
운반 단가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레미콘 기사들은 “인간답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7월중으로 다시 한 번 양대 노총이 연대해 특수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대대적인 결의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도 배제할 수 없음을 밝혔다.
한편, 건설운송노조는 한일 연대투쟁도 벌일 방침이다. 6월말, 소속 조합원 5명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레미콘 노동조합원들과 한국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다. 또 한국의 쌍용양회를 소유한 일본 기업 태평양에 대한 항의 방문도 계획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지입차주제를 실시하면서 사정이 한국과 다를 바 없었으나, 5년여에 걸친 싸움 끝에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태평양은 일본 내에서는
레미콘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으면서 한국에서는 지입차주제를 실시하고 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