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고 연말이 다가오는 시즌. 바야흐로 술 마시는 계절을 맞이해 음주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다. 음주에 관대한 한국문화는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고시원 방화, 처남 재혼반대 살해 등 각종 묻지마 범죄와 자살 등의 사회적 문제가 취중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놈의 술이 웬수’인 것이다.
트렁크 애인가두고 만취 운전
지난 11월17일에는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서 30대 남자가 애인을 야구방망이로 위협해 차량 트렁크에 감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범죄는 연인이 함께 술을 마신 뒤 다툼을 벌인 끝에 일어났다. 남자가 애인을 트렁크에 태우고 주차장을 돌다 다른 차와 충돌했고, 이로써 경찰이 남자의 혈중 알코올농도를 조사하게 됐는데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0.06%로 나타났다.
지난 11월7일에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가출 여중생들에게 술을 먹인 뒤 집단 성폭행한 고등학생 3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11월16일에는 여중생이 채팅에서 만난 남학생들과 술을 마시다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났고, 술에 취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장애인임을 비하하고 모욕을 주는 피해자를 살해하려던 사건도 있었다.
사실상 술로 인한 각종 사고와 범죄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도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음주 산행으로 인한 실족사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알코올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1995년 약 14조원에서 1997년 16조원, 2002년 22조원 등으로 해마다 급격히 늘며 엄청난 사회적 비용 부담이 되고 있다.
술이 범죄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어서 호주의 현재 경찰 신고전화의 75%를 음주 관련 사건이 차지하고 있으며 시드니 소재 1800여개의 주류 판매 허가업소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50%가 음주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주취자가 경찰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 등 음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날로 심각해짐에 호주는 ‘음주와의 전쟁’을 선포, 커틴 대학에 유흥업소 영업시간과 폭력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는 등 유흥업소의 폐점시간을 앞당기는 방안을 강구 중이기도 하다.
실제로 호주 뉴캐슬과 미국 LA도 영업시간을 각각 새벽 3시와 2시로 제한, 음주관련 범죄가 감소하는 성과를 거둔 경우도 있어 음주의 통제가 범죄를 막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청소년에게 무방비 노출
술은 특히 청소년 범죄와 가정폭력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조사에 의하면 음주시 범죄를 저지를 위험도가 남자 청소년은 15.56배, 여자 청소년은 8.21배가 증가한다. 청소년은 음주 시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고, 공격적인 충동을 일으켜 폭력 및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확연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혁희 청소년보호단장은 “술이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등 우리 사회의 관대한 음주문화로 인해 청소년의 음주율이 높아지고 이는 청소년 범행 증가로 이어진다”고 지적하며 “청소년 음주예방으로 청소년 범죄를 예방할 수 있으며, 청소년 음주예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고 사회적 비용 최소화하기 위한 주요 과제”라고 강조했다.
가정 내 폭력 또한 술이 문제다. 최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가정폭력 당사자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폭력 행위자가 ’자신의 음주문제‘(25.6%)뿐 아니라 ’아내의 음주문제’를 폭력 사건의 원인으로 응답한 경우가 19.8%로 나타나서, 행위자 자신이나 아내의 음주를 폭력의 발생원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45.4%에 이르고 있었다.
가정폭력행위자의 음주문제를 살펴보면, 응답자 116명 가운데 93.1%가 지난 1년간 술을 마신 적이 있는 현재 음주자였고, 지난 1년간 적정 음주빈도 수준을 넘는 주 4회 이상의 음주자가 19.7%(응답자 112명 중 22명)로 나타나 높은 수준의 음주빈도를 보였다.
가정폭력 행위자의 80.7%는 지난 1년 간 한 자리에서 6잔 이상의 폭음 경험이 있었고, 주 1회 폭음이 38.6%, 거의 매일 폭음은 15.8%로서 전체(114명)의 54.4%(62명)가 주 1회 이상 폭음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38명 중 31명, 81.6%)와 40대(52명 중 43명, 82.7%)의 폭음 경험이 50대 이상(24명 중 18명, 75.0%)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WHO의 음주문제 조기개입을 위한 선별도구인 알코올사용장애 선별검사(AUDIT)에 의해 문제성 음주자로 선별된 응답자는 70.3%(118명 중 83명)였고, 알코올의존 의심군은 24.6%(29명)로 선별됐다. 이는 지역사회의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동일척도를 사용한 선행연구결과들에 비해 거의 2배의 높은 비율로 음주문제 개입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가정폭력 발생 시의 음주상태를 살펴보면, 행위자의 59.1%(110명 중 69명), 피해자의 25.0%(108명 중 27명)가 음주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져, 음주문제가 가정폭력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대한 풍토와 규정이 범죄 부추겨
음주가 범죄로 연결되는 현상은 일단 술에 대한 관대한 문화가 원인이다. 가정폭력 행위자의 경우 음주문제에 대한 문제인식이 없거나 변화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행위자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소현 상담위원은 “가정폭력행위자의 음주행동 변화동기에 대한 조사에서는 문제인식이 없거나 변화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행위자가 43.2%로 가장 많아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음주문제 교육의 필요성을 시사해준다”고 말했다. 또한, 음주문제를 가진 가족이 있다고 대답한 가정폭력 행위자가 58.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음주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이와 같은 결과는 음주문제에 대한 전문기관의 상담자에 의한 전문적인 선별과 평가가 필요하며, 음주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기관에서 전문적이며 통합적인 음주문제 상담을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음주운전의 경우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음주운전으로는 최소 3번을 걸려야 취소가 되고, 취소된 뒤에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면허를 재취득할 수 있으며 또 부정기적인 사면으로도 면죄부가 주어진다. 음주운전 적발 벌금도 100~300만원 수준이지만 미국의 경우 변호사비 등을 포함 700만원을 넘고 있어 상대적으로 약한 수준이다.
술을 마신 후 저지르는 실수와 범죄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풍토와 인식, 그리고 관대한 처벌규정이 각종 음주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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