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하기 정말 힘들다. 일할 의지가 있는데도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인구가 전국에 350만명에 달한다.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신규취업자는 물론 재취업 희망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대대적인 ‘공무원 행정 인턴’ 제도를 선포했다. 하지만 ‘알바보다 못한 행정인턴’이라는 조롱과 함께 눈가리고 아웅식 대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공무원 행정인턴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88만원 세대는 양반
지난 1월7일자로 공고된 경기도 행정인턴 채용계획을 보자. 모집인원은 170명. 계약기간은 약 10개월, 주5일 8시간 근무하면서 일급 3만8,000원을 받게 돼 있다. 지원대상은 대졸자로서 대학(원) 재학생과 입사 대기자는 제외된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경험을 쌓는 인턴으로 근무하기에 10개월은 너무 길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공무원 사무를 보조하는 행정인턴 근무경력이 공무원 임용에서 가점을 받는 등 별다른 혜택이 없다. 보수 또한 한달 20일 근무라고 했을 때 62만800원에 불과하다. 지금의 20대 취업자를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있지만 행정인턴은 88만원 세대보다 못한 처지인 셈이다.
대학생 김모씨는 “남자의 경우 대학졸업하고 군필자 자격 요건이 붙어 26살은 돼야 자격이 주어진다”며 “취업준비도 못하고 경력도 뭐도 아닌 10개월짜리 알바나 하고 있으라는 건 근본적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닌, 단지 실업률의 통계치를 좀 줄여보자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정부는 경제위기에 따른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중앙행정기관 5259명, 지방자치단체 6505명 등 올해 총 2만5409명의 인턴을 채용키로 했다. 정부는 취업응시를 위한 특별 유급휴가를 인정하고 근무실적이 우수한 10% 이내의 행정인턴에게는 장관과 기관장의 입사추천서를 발급해 주고 공무원이 되면 보수규정에 의해 인턴 근무기간의 5할이 호봉으로 가산되는 등 혜택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행정인턴을 하면서도 면접이 있으면 휴가를 이용해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행정인턴들은 공무원 업무 보조 경력이 사기업 취업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검찰청 인턴 김모(24세 여)씨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단기간 용돈을 벌 목적이 아니라면 추천해 주고 싶지 않다”며 “일이 없을 때는 눈치 보이고 정규직원이 아니라는 생각에 복사나 자료정리 외에 별다른 업무도 없다”고 말했다.
청년판 공공근로사업
외교통상부에서 인턴근무를 하게 된 이모(25세 여)씨도 “처음 인턴근무에 합격해 기뻤지만 복사 등 단순 업무만 하면서 실질적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일에 얽매이다 보니 취업 준비하기가 더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가 대대적인 행정인턴제를 시행하면서 공무원도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 정부부처는 행정인턴이 대거 들어오자 인턴에게 맡길 보조업무를 정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경찰청 인턴 김모(27세)씨는 “정부가 체계적인 준비를 갖춘 후에 시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시행해 공무원과 인턴 모두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행정인턴에 선발돼 근무하더라도 공무원 특채나 임용시험시 가점 등의 혜택도 없다. 때문에 취업과 연관성이 없는 인턴이라면 기초단체보다 중앙부처가 낫다는 것 때문에 중앙부처와 지자체간 쏠림현상도 발생한다. 여성부가 3명 모집에 210명이 몰려 가장 높은 7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국무총리실이 8명 모집에 484명이 몰렸고 금융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등도 평균 30대1 이상의 경쟁률을 보였다. 하지만 기초단체의 경우 미달사태가 속출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16명을 모집한 행정인턴에 214명이 지원해 88명만이 면접에 응시했고 62명이 최종합격했다. 강원도교육청도 행정인턴 76명을 모집했는데 서류전형 합격자 39명 중 27명만이 선발됐다.
현재 시행하는 행정인턴 제도와 관련해,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다”거나 “청년판 공공근로사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 강사는 1월19일자 프레시안 칼럼을 통해 “정부가 제시한 내용대로라면 정규직의 임금을 깎고, 비정규직과 단기채용 비중을 늘리겠다는 말”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는, 전형적인 밀실행정이고, 비종합적인 대책”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쉽게 얘기해서 정부가 제시한 인턴제는 정규직 한 자리를 쪼개 3~4자리를 만들고 1년 미만의 근무기간과 월1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1년 미만으로 뽑고 있는 공공기관 인턴에 대해 해당기관의 공채 때 서류전형 면제 같은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혜택 제공의 여부는 공공기관의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일자리 수 늘리기보다 근본적 실업대책 제시돼야
현행 인턴 제도는 행정인턴과 취업연수생, 신규고용촉진장려금제도, 해외인턴 등 정부 부처 등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대부분 일회성에 불과하고 장기적인 고용으로 이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인턴제도가 취업으로 가는 가교 역할이 아닌 일시적으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임시방편적 고용형태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에는 유능한 경력자까지 신규 입사시험에 뛰어들면서 인턴세대가 정규직으로 입사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급속한 산업구조 개편 등으로 전통 직업군이 줄어드는 데다 기업생존의 부침도 심해 기업은 기초인력을 키우기보다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턱대고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지금의 고용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종구 경희대 취업진로처 교수는 “정규직원 채용의 기회가 없다면 인턴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다”며 “청년들에게 있어 매력적인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인턴이 실질적인 고용형태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직업훈련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실업자를 방치하는 것보다 88만원 세대라도 늘리는 것이 낫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지만 인턴들이 좋은 일자리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도록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보다 근본적인 실업대책과 예산배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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