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신종플루 감염자가 4000명을 넘어서고 네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신종플루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공포 수준에 달하고 있다. 해외출장만 갔다 와도 직장에서 환자취급을 하는가 하면 가벼운 증상에 거점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판이다. 하지만 신종플루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기단계 ‘심각’ 상향조정 준비
신종플루 감염자가 급격히 늘면서 국내 신종플루가 사실상 ‘유행’단계에 진입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재난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한 단계 올리는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지난주 의료기관을 찾은 외래 환자 1000 명 당 신종플루 의심 환자의 비율은 2.76명.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 유행을 판단하는 기준인 2.6명을 넘어선 수치다. 이것이 사실상 ‘유행단계’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는 신종플루 유행주의보를 내릴 단계는 지났으나 국가전염병 위기단계를 ‘경계’에서 ‘심각’단계로 올릴 상황은 아니라는 신중한 입장이다. ‘심각’단계로 격상될 경우 초래될 혼란을 우려해서다. 신종플루 위기단계가 '심각'으로 상향조정되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려는 방안이 검토된다. 단체행사가 금지되고 기업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신종 플루가 처음 발생한 멕시코는 환자가 급증하자 전국에 휴교령을 내리고, 대중 음식점의 휴업 조치를 취했다. 일부에서는 대중교통의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조치가 취해졌을 때 불필요한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전염병 위기 단계 격상에 신중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심각단계에 대한 정확한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아 국민들의 공포심만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에 휴교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할 심각단계에 대한 설명요청에 정부는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한다"는 애매한 답변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어느 수준이 '심각'한 위기단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유행규모나 사망자 발생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기평가위원회가 결정한다"며 "감염자 대비 중증환자 몇 명, 사망자 몇 명 등 정해놓은 기준은 없다"고 밝혔다. 전염병이 사회에 끼칠 영향 정도를 객관화해 미리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들어맞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기단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터지는 상황을 보고 위기단계를 맞추겠다는 얘기다.
신종플루 백신이 전세계적으로 생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투여 우선순위에 대한 논의만 불거지는 것도 국민들의 공포감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실제로 일선 병의원에서는 백신을 투여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고, 항 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 암거래도 횡행하고 있다.
신종플루를 예방하기 위해 앞다퉈 독감이나 폐구균 백신을 접종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병·의원들은 이런 사회적 불안심리를 악용해 불필요한 접종을 부추기거나 슬그머니 접종료를 올려 받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얄팍한 상혼 판쳐
‘계절 인플루엔자’로 불리는 일반 독감의 경우 통상 매년 9월께 예방접종이 시작됐지만 올해는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예방접종을 맞으려는 사람들로 병원에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독감에 걸려 면역력이 떨어지면 신종플루에 감염될 위험이 그만큼 커질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라매병원 송 과장은 “단순히 걱정이 돼 찾아온 후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검사 없이 바로 귀가하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며 “현재 질병 자체의 치사율은 독감 수준으로 그리 높지 않은데 공포감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신제조사의 공급물량이 달려 일선 병원에서는 물량 확보전까지 펼치며 미리 대기자를 접수받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신종플루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이 부른 부작용”이라며 “계절독감 예방접종이 면역력을 높이는데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신종플루에 대한 면역력은 없다”고 말했다.
신종플루 공포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얄팍한 상혼이 판을 치고 있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선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신종플루 예방 ·치료제가 버젓이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소비자단체 등에 따르면 일부 일반의약품이나 건강보조식품, 비누나 공기청정기 업체 등은 신종플루에 대한 객관적인 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면역력 강화’, ‘호흡기 질병예방’ ‘향균’등의 문구를 내세우며 불안한 심리의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모 흑염소 판매업체는 ‘신종플루 대(大) 유행, 면역력 증강이 최선책’이라는 제목의 기사형 광고를 최근 모 일간지에 게재했다. 광고에서 이 업체는 흑염소가 신종플루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했다.
집단 공포, 사태 악화
모 월간지에는 향기치료 요법인 아로마테라피가 신종플루 예방에 최고라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아로마테라피 에센셜 오일이 항바이러스에 효과적이므로 신종플루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바이러스 오일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쇼핑몰에서도 항균비누나 공기청정기 등을 ‘신종플루 예방 필수품’으로 내세우며 마케팅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반의약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이나 항균 작용제, 각종 바이러스 박멸제 등이 신종플루에 효과가 있는지 전혀 검증된 사실이 없다며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신종플루 치료효과를 인정받은 항바이러스제는 타미플루와 리렌자 단 두 가지 뿐이며 예방백신은 나온 게 아직 없는 실정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개별 사례별로 좀 더 면밀히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허가받은 의약품 외에 건강보조식품이 신종플루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것은 허위, 과대광고일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식약청에서도 단속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는 지나친 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신종플루 사망률은 30일 기준 0.07% 정도로 사스의 10%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60%보다 훨씬 낮다. 건강한 사람은 감염됐어도 어렵지 않게 회복된다. 손씻기 같은 위생수칙만 잘 지키면 아직까지는 공포에 휩싸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박승철 신종인플루엔자 대책위원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국내 감염자는 4000명이 넘지만 실제로는 최대 100배 이상 감염됐고 이미 대부분 자연치유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이겨내 면역력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공포는 서로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면서 사태를 악화시킨다. 신종플루에 너무 예민해지면 효과적 대응이 어렵고 사회적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이성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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