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전망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고용시장은 여전히 한파 속에 있다.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취업 준비생 등 비경제활동인구까지 모두 포함하면 사실상 실업자가 330만명이라는 집계도 나왔다. 일자리 없는 대한민국 청년이 150만명에 육박한 가운데 이 중 20대 실업자는 33만명으로 추산된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대학가 도서관은 더 좋은 스펙을 쌓아 취업문을 뚫으려는 열기로 가득 차 있다.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벽은 학벌, 성적, 영어, 자격증, 봉사활동, 수상경력에 외모까지 더 많은 스펙이 요구되고 있다. 때문에 대학 초년생부터 적잖은 취업 과외비를 지출하며 스펙을 쌓고 있다. 하지만 과연 높은 스펙이 과연 취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단순 스펙쌓기 부작용 급증
‘스펙(spec)’은 원래 ‘설명서’, 또는 ‘사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20대에게 스펙은 취업과 진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학력과 성적 등을 통칭하는 말이 됐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 결과 20대의 86%가 ‘대학때 스펙을 관리하지 않으면 취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펙관리를 위해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한다는 의견도 52.4%나 됐다. 그러다보니 아르바이트로 스펙을 관리하는 학생도 많다. 어학연수나 기타 취업과외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미현 씨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3년간 직장을 다녔다”면서 “더 좋은 스펙을 쌓아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기 위해 아직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올해 2월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들의 스펙은 얼마나 될까. 잡코리아가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 2,483명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학점은 4.5점 만점에 평균 3.62점, 토익점수는 평균 769점으로 집계됐다. 해외연수 경험이 있는 자도 전체 37.7%로 10명 중 4명꼴에 달했고 그 중 호주가 8.5%로 가장 많았다. 스펙이 토익성적에 학점, 인턴 경력 쌓기 뿐 아니라 외모까지 차지해 요즘 같은 방학철엔 특히 취업성형 붐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대생의 경우 취업은 더욱 심각하다. 올 2월 졸업을 앞둔 김 모 학생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완벽하게 스펙을 쌓지 않으면 안된다”며 “요즘은 실력에다 외모까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 뿐 아니라 운동과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스펙쌓기는 개인의 실력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권장된다. 하지만 지나친 스펙 쌓기로 인한 부작용이 급증하고 있다. 우선 대학에서나 직장에서 뚜렷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스펙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스펙증후군 또는 스펙강박증이 늘고 있고 그러다 보니 거짓 스펙쌓기도 성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고도 각종 편법을 동원해 확인서와 해당기관에서 상까지 받고 있으며,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대회에 참가해 수상한 이력 등을 제시하는 등 과열 양상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공모전만 해도 1000개가 넘을 정도로 남발되고 있어 참가자들은 경험과 도전이라는 순수성을 잃고 말았다.
‘경력 같은 신입’ 원해
실제로 씽굿과 파워잡이 함께 실시한 대학생 공모전 의식 설문조사에서 공모전 참가 이유에 대해 ‘대학생활 중 소중한 경험을 위해’(24.6%)라거나 ‘연구의 재미’(6.6%) 등의 이유보다, ‘경력 및 이력서에 활용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56.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신의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대입과 취직만을 위한 스펙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또 거짓된 스펙은 면접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취업전략으로 학점, 외국어 성적, 자격증 등 스펙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들이 스펙에 거품이 있음을 인지하는 추세이며, 외국어의 경우 성적보다 실제 영어면접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귀열 스카우트 홍보팀장은 “이제 기업은 최고의 인재가 아닌 최적의 인재를 선호하고 있다”며 “청년 취업자는 경력 같은 신입이 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들이 ‘경력 같은 신입’을 선호함에 따라 아르바이트가 필수 경력사항이 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 이정우 대표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취업경력을 쌓으려면 취업 희망 직종과 무관한 아르바이트 직종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이러한 아르바이트 경험은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인사담당자에게 훌륭한 경험으로 어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국내 30대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설문조사한 결과, 수치 중심의 단순 스펙의 중요성보다 인성이나 면접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펙의 대표격인 토익점수의 제출 하한선을 제시한 곳은 24곳 중 7곳에 불과했고, 기준이 없다는 곳도 14곳이나 됐다. 또 학점세탁이 대학가에서 성행하고 있지만 학점 제한을 두는 곳은 7곳 뿐이고 기준이 없는 곳도 17곳이나 됐다. 스펙의 가치를 두고 구직자와 구인기업 사이에 큰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스펙 가치에 구직자와 기업간 격차
취업컨설턴트 유진봉 박사는 “기업들이 인턴을 뽑아 실무테스트를 하는 등 기업이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뽑는 추세가 대세인 만큼 여기에 맞춰 취업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러 번 아르바이트나 사회경험을 쌓는 것보다 자신이 취업하고 싶은 업종과 관련된 경험을 쌓는 게 더 좋고, 3~4번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무분별한 스펙 만들기보다 자기 적성이나 관심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취업문 공략에 효과적이다. 전종민 SK 기업문화부문 부장은 “토익, 공모전, 인턴십 이런 것들이 성공적인 취업을 보장하진 않는다”면서 “그렇게 남들 다 할 수 있는 돈만 들이면 할 수 있는 영역보다 본인만의 독특한 경력을 쌓아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영어면접은 글로벌 경쟁력에 의해 취업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최근 실제로 채용전문 사이트에서 462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2% 가량의 기업이 영어면접을 실시하고 있으며, 영어 회화 실력이 당락을 결정짓는다고 응답했다.
특히 삼성그룹과 CJ그룹은 지난 상반기 공채부터 입사 지원 때 토익스피킹이나 Opic 점수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고 자격기준도 강화했다.
이들의 뒤를 이어 두산그룹과 STX 그룹 등도 하반기 신입 공채부터 영어 말하기 평가점수 제출을 의무화했다.
요즘 대학가에는 기업별 입사 전략에 맞춰 단기간에 반짝 모여 함께 공부하는 ‘스폿 스터디(Spot study)’가 유행이다. 이런 스폿 스터디 현장에 가보면 영어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학생 김민지 씨는 “요즘 기업 채용시 영어 점수와 영어 면접이다. 영어 실력이 취업을 좌우하는 만큼 스터디를 통해 면접 대비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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