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성년을 상대로 한 성폭행이나 인면수심의 무차별 강간, 심지어 가해자가 청소년인 경우까지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고, 그 위험수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성폭력 상담소는 ‘2004년도 성폭력 상담현황’을 발표, 성폭력 범죄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으나, 그 피해에 대한 법적 구제 방법이나 지원상의 한계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담소에 따르면 성폭력 상담건수가 1991년 66.5%에서 2004년 94.3%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로 살펴보면 아는 사람 1,887건(79.9%), 모르는 사람 389건(1605%), 미상 86건(3.6%)으로 성폭력 피해는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해자 중에는 교수, 의사, 공무원, 법조인 등이 전체 성폭력 상담건수의 8.4%를 차지해 여전히 사회지도 계층 내에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청소년 가해자 처벌은 관대
특히 지난해 12월 발생한 경남 밀양 고교생 집단 성폭행 사건처럼 청소년 가해자들에 의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늘고 있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간 청소년 가해자들에 의한 성폭력은 청소년기 특성상 ‘범죄’로 인식하기보다 성적 호기심이나 억제할 수 없는 성욕구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이들 역시도 성인들에 의한 성범죄 못지 않게 폭력적이고 심각한 문제 양상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소 통계에 의하면, 전체 성폭력 가해자 중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 9.6%(274건), 2004년 7.7%(183건)로 증가 추세이며, 이들에 의한 피해 유형도 강간이 82건(44.8%)으로 가장 많았고, 이중 윤간 등 특수강간이 18건으로 전체의 9.8%를 차지했다.
피해자 역시 청소년인 경우가 87건(47.5%)으로 가장 많았고, 어린이 46건(25.1%), 유아 31건(16.9%)으로 피해 연령이 낮아지고 있어 더욱 큰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에 의한 성폭행에 대한 처벌은 매우 관대한 편이다. 지난해 전체 상담 중 청소년 가해자를 고소한 건도 35건에 불과하다. 이는 상대적으로 미약한 소년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상담사례에서 보더라도 같은 동네 여러 명의 청소년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고 신고했으나, 보호감찰처분으로 나와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다시 찾아와 전학과 이사를 한 경우도 있고, 공판과정에서 가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가해자 가족들은 참석토록 했지만 비공개심리의 원칙 하에 피해자 가족들은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경우 등이 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인식수준이 성인과 같지 않더라도 성의식에 있어서는 성인 가해자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관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차 피해 우려해 ‘전전긍긍’
성폭행 피해는 다른 범죄와 달리 사회 전반의 낮은 인식 수준과 편견으로 인해 피해 직후 법적 해결에 나서거나 고통을 호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성폭력상담소 전체상담 중 고소한 건은 2002년 375건(12.7%), 2003년 422건(14.9%), 2004년 439건(18.6%)으로 나타나 점차 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신고. 고소율 자체가 낮은 상황이다.
피해자들이 고소를 꺼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가해자측 가족 등 주변인에 의해 발생하는 2차적인 피해도 작용한다. 2차 피해 유형은 주로 피해사실 유포에 대한 위협, 신체적 위협, 합의 및 고소취하 요구 등이다. 이러한 가해자측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합의나 고소 취하를 한 이후 오히려 피해자들 돈을 요구한 꽃뱀이었다는 소문을 유포하거나 합의금으로 준 돈 뿐 아니라 자신들의 변호사 비용까지 돌려달라고 협박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상담소측은 설명한다.
이는 성폭력 피해 후유증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고 피해자가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거나 직장 및 일상생활 등에 문제를 겪게 되는 등 더욱 피해를 가중시키는 심각한 문제이다.
가해자 주변인에 의한 2차 가해는 한국 사회 내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성폭력의 경우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의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면서 합의하자고 협박한다. 피해자에게 있어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리겠다는 것이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가해자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을 짚어내지 못한 채 가해자 측의 합의, 고소 취하 요구가 단순히 사건 해결에 있어서의 권리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상담소는 지적한다.
지금은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 정도가 가해자의 협박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지만 이것 역시 현실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폭력상담소는 “협박이나 위협에 대한 가중처벌, 신변보호제도의 신설 및 강화, 피해자 변호인 제도 도입, 가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교육의 제도화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당수 공소시효 지나 고소 자체 못하기도
성폭력 피해는 다른 범죄와 달리 사회 전반의 낮은 인식 수준과 편견으로 인해 피해 직후 법적인 해결에 나서거나 고통을 호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상담소 전체 상담중 고소한 것은 439건(18.6%)에 불과한 실정이다. 성폭력에 대한 신고.고소율이 낮은 가운데서도 특히 친족 성폭력은 피해사실이 은폐되기 쉽고 문제제기를 하고자 해도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걱정과 가해자에 대한 이중감정과 생활기반에 대한 두려움 등의 복잡한 요인으로 인해 피해자들 또한 즉각적으로 고소를 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지난해 친족 성폭력 피해현황을 보면, 유아 어린이 청소년 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현재 20세 이상의 성인이 되어 상담을 한 경우가 약 95건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적게는 3~4년 전 많게는 40~50년 전에 일어난 것이어서 피해자가 법적 해결을 원하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 고소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많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공소시효가 피해를 인지한 날로부터 7년 이내로 규정하고 있고, 민사소송에서는 성폭력이라고 인지한 날부터 3년 이내(피해일로부터는 최장 10년)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난 피해는 공소권 없음으로 가해자가 주장할 경우 법적 구제 방법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상담소측은 “성폭력은 많은 여성들에게 지속되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피해로 인한 고통이 ‘현재적’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예외 규정 등을 통해 공소시효를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