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희 기자]
경기불황에 서민들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요즘이지만, 사람보다 나은 삶을 누리는 개들도 많 다. 국내 애완견 수가 460만 마리에 관련 산업이 5조원에 육박할 정도다. 고령화, 저출산, 이혼 등으로 1~2인 가구수가 늘면서 애견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애견인들 사이에서 ‘삼성화재의 애견보험’이 화제가 되고 있다. 2010년 이후 자취를 감춘 애견보험이 다시 출시된 것이다. 보장내역을 따져보고 애견인들의 궁금증을 풀어본다.
실패한 애견보험 재출시 왜?
삼성화재는 지난해 11월 피보험견의 상해 및 질병치료비와 배상까지 책임지는 ‘파밀리아스 애견의료보험’을 선보였다. 애완견의 동물병원에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운 애견인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애견카페 등에선 가입여부를 두고 의견을 공유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사실 애견보험은 지난 2008년 동물보호법 시행과 더불어 애견인 수가 증가해 시장성을 보고 삼성화재, 현대해상, LIG손해보험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사업 초기라 치료기준과 진료비 청구가 모호해 손해율이 200%를 넘어섰다. 보험가입자에게 100만원 받고 200만원을 돌려줬다는 얘기다.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를 견디다 못한 보험사들은 사업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런데 업계서 유일하게 삼성화재가 ‘파밀리아스 애견보험’이라는 이름을 걸고 지난해 11월 다시 나왔다. 실패한 사업에 삼성화재가 다시 뛰어든 것은 장애인 안내견 등 개와 관련한 사회공헌활동을 해온 인연 때문으로 알려졌다. 애견보험에서 큰 수익을 얻기 어렵지만 애견인들의 열망에 보답하고자 관련 상품을 다시 선보이게 됐다는 게 삼성화재의 설명이다.
하지만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셈이 빤한 보험사의 성격과 맞지 않다. 선심성으로 내놨다고 해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를 두 번 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타사의 애견보험이 없어진 지금, 애견인구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손해 보지 않는 범위에서 상품을 출시한다면, 애견보험의 선두를 차지함과 동시에 잘만 하면 이익도 챙길 수 있게 된다.
과거 애견보험을 유용하게 활용했던 가입자들은 재출시 소식에 고무됐다. 감기치료비가 1~2만원, 배탈`설사치료비가 3~4만원으로 병원비 부담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다소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가격은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반면, 보장내용은 크게 축소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애견 동호회 등에선 ‘가입금액에 비해 제약되는 항목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험료 두 배 올랐는데 본인부담금까지...
이 상품의 연간 보험료는 1살짜리 애견을 기준으로 50만원 정도다. 과거 20~30만원 정도에서 두 배 정도 오른 셈이다. 연간 내는 소멸성 보험이라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애견보험의 손해율이 200%였던 점을 감안하면 보험사도 더 이상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삼성화재는 애견보험 가입자를 받을 때 개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는 점을 고려해 애견협회와 관련 있는 대리점을 통해 접수하고 있다. 현재 가입은 ‘삼성화재애견보험’ 사이트 한 곳에서만 담당하고 있다.
애견보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기 위해 담당자에게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회사측은 따로 마련한 자료는 없고 고객문의가 오면 보내주는 정형화된 형식의 ‘고객메일’을 자료로 보내왔다.
여기에 따르면, 삼성애견보험은 전국 어느 병원을(대학병원포함) 가든 진료비, 치료비, 검사비, 입원비, 수술비, 통원치료비, 약값, 주사비 심지어 응급실, 한방치료까지 모든 보험이 적용된다. 우리나라 국민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는 CT, MRI, 초음파 검사와 약들까지도 해당이 된다고 돼 있다. 얼핏보기엔 모든 병원비와 약값이 다 혜택을 보험이 다 적용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장 내용이 참 까다롭다. ‘질병 당(치료일수에 관계없이) 자기 부담금 1만원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의 70%를 하나의 질병 당 100만원, 1년에 500만원까지 보상해 준다’로 적혀 있다. 즉 50만원의 보험료를 내고도 의료비 청구는 자기부담금 1만원과 본인부담금 30%를 제한 나머지만 보상이 된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병에 걸려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10만원이 청구되면 보험사는 6만3천원만 돌려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질병당 100만원, 1년에 5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개가 타인이나 다른 개를 물거나 다치게 했을 때도 자기부담금 10만원을 제외한 금액을 하나의 사고당 100만원, 1년에 5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무분별한 의료비 청구가 보험료 인상 부추겨
보험료 외에 개 주인이 부담하는 본인부담금도 오른 셈이다. 그런데도 제외되는 보장 항목이 많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보험사의 다양한 면책 사유를 도입했다. 예방접종, 제왕절개, 피임수술, 미용ㆍ성형, 손톱 깎기, 치석제거, 목욕, 한약 제조, 안락사, 장례 등 비용은 보장 대상에서 제외했다. 당시 배상 책임은 물론이고 애견장례비까지 보장해 주는 바람에 애견을 이용해 보상금을 타내는 보험 사기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청구빈도가 높은 ‘쓸개골 탈구’도 이번 보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애견보험 담당자는 “쓸개골 탈구의 경우 대표적인 유전병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되지 않는다”며 “소파에서 떨어져서 다쳐도 ‘상해’로 보고 보험료 청구하는 사례가 많아 아예 제외 항목으로 명문화시켰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의료비 청구를 막기 위한 것인데, 이러다 보니 애견보험의 매력이 떨어진다.
과거 병력이 있어도 가입이 거절 될 수 있다. ‘보험 가입 전 90일 이내 걸렸던 질병’에 대해선 보장하지 않는다. 단, 과거 병력에 대해 ‘부담보’를 설정하면 심사를 거쳐 가입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질병의 발생빈도가 높은 개의 특성상 가입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측은 “십만가지가 넘는 상해와 질병 중에 몇가지 항목이 빠진 것을 마치 보장이 잘 안되는 걸로 인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보험료가 비싸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개가 사람에 비해 질병발생 빈도수가 훨씬 높고, 통상 애견 병원비가 사람에 비해 3~4배 비싼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보험료는 절대 비싼 편이 아니라고 반론한다. 동물병원의 과다한 의료비 청구와 가입자들의 무분별한 병원 출입은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삼성화재 애견보험 담당자는 “우리나라 동물병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편은 아니지만, 청구비용을 보면 과잉진료인지, 과다청구인지 비싼 편”이라면서 “배탈, 설사로 병원에 가도 갖가지 검사항목이 붙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보험료 인상의 요인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애견보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각자의 사정에 따라 득을 볼 수도, 무리한 부담이 될 수도 있으므로 꼼꼼하게 따져보고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