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대지를 건너는 바람 속에 민족혼의 고동소리가 들린다. ‘솟대’. 화가의 집앞에 버티고 선 이 나무로 만든 새의 모양 ‘솟대’는 마을의 액운을 막고 풍작과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토속적인 신앙의 상징으로 또 작가의 영기(靈氣)를 한눈에 전하는 영물로 보는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9년 전 5년간의 미국생활을 접고 파주로 온 화가 박방영이 9월14일부터 27일까지 일본 긴자 미술세계 화랑에 함께 가는 길, 언약, 대인 등 총 25점의 작품을 출품, 개인전시회를 통해 일본열도에서 한국미술의 위상을 빛냈다.
박방영의 신바람
그의 천진난만한 작품이 부르는 신바람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기쁨을 불러일으켜 자유를 해방 시켜주는 원천적인 에너지, 그것은 철학이나 사유에 의한 것이 아닌 솟대에 내포된 소박하고 무의식적인 기도와 통하고 있다.
그는 작가로서 뒤돌아 볼 때 고등학교 시절 전국학생 서예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 1985년 홍익 대학원 시절 5년 동안 5명의 작가로 구성된 ‘난지도’라는 그룹 결성을 통한 실험적인 설치작품은 한국현대 미술계에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후 관념적인 신선함 만을 추구하여 물질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현대예술의 방향전환을 통해 정신적인 깊이를 찾아 평면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동양적인 것으로의 회귀
동양적인 정신세계로의 회귀를 결의한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화가는 한지위에 먹과 아크릴 물감을 사용, 동양화 운필법의 기본이 되는 서예의 기술을 마스터한 토대위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버리고 독특한 현대적인 회화표현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박방영의 언뜻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묘선은 숙련된 운필의 기본이 지탱되어 있어 심지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려고 하는 대상으로부터 받는 에너지를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정적인 충동으로 바꾸어 단번에 화면 위에 분출시킨다.
작품의 특징은 결코 동양화의 전통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 또 하나의 동양화의 개념인 ‘여백’이다. 그에게 여백에 대하여 묻자 판소리 할 때 들려오는 폭포소리나 나무들의 속삭임에 비유, 그의 그림 여백에서는 항상 무언가 들려오는 듯 한 가운데 그것은 머나먼 대륙의 초원을 화면에 세차게 내뿜어진 분방한 물감이나 생동감에 호응한 매운 변화가 아닌가 싶다.
그의 작품은 문인화, 민화 양쪽의 요소를 모두 가진 현대 회화이다. 문인화는 귀족이나 사대부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으로 시서화(詩書畵)의 일인체 양식을 보전해 왔다. 시서화는 박방영 작품의 초형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좀 더 내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문인화의 화제로써 등장하는 매화, 남, 바위 등을 그림으로써 존재에 내포된 메타포아(Metaphor, 은유)라 할 수 있는 문인적인 정신이 스며든다. 작품 소재는 사람과 꽃, 물고기와 작살, 또는 호랑이와 활, 화살 등이, 때로는 기호에 가까운 형태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 하나하나 에는 모두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돼 그중에서도 물고기는 그의 평소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
박방영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를 신과 인간과의 일문일답하던 태고(太古)로 인도해 주는 동시에 정신이 들면 아득한 대지를 건너는 바람에 실려 서에서 동으로 달려 나온 민족혼의 고동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