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도 부천시 역곡남부시장은 몸을 움츠리게 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바람소리와 과일 값을 흥정하는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비슷한 시간, 인근 대형 할인마트는 차들이 줄지어 주차 차례를 기다리며 때 아닌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춰 제작된 대형 트리가 거리를 더욱 환하게 비추고, 할인마트 내부는 어느새 물건을 가득 채운 카트들이 계산대 앞에서 줄지어 서있다. 할인마트에서 만난 유혜영씨(32세, 주부)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할인마트에서 일주일치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사간다고 한다. 유씨는 “매주 한번 씩은 꼭 오게 되는데 쇼핑과 외식, 가족들 나들이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이처럼 할인마트가 소비자의 발걸음 유도하는 것은 편리성과 신뢰성, 그리고 잘 짜여 진 부대시설이다. ,
짐은 무겁고, 주차는 불편하고…
유씨에게 인근 역곡남부시장을 이용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많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유씨는 “주차시설이 열악해 한 번 장을 보면 많은 물건을 사게 되는데 불편한 점이 너무 많고, 공산품을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어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생필품을 사기에 에로사항이 크다”고 한다. 또, “여러 개의 물건을 살 때 카트가 없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길이 좁아 사람들하고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씨가 호소하는 불편함은 이 뿐만이 아니다. 매 번 물건을 살 때마다 계산해야 하는 것 또한 번거로움을 더 해 준다는 것이다. “물건을 한 두 개 사는 것도 아닌데 계산할 때마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니고 영세 상인이 많기 때문에 현금영수증은 고사하고 카드조차 받지 않는 상인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래시장 이용자는 마트보다 가깝고 살 물건이 몇 개 안될 경우, 채소류나 과일류를 살 때 아니면 갈 이유가 없다는 말에 설득력을 더 해 준다. 유씨는 “시비를 들여 아케이드 설치도 좋지만 주차 공간·유동인구의 동선 확보, 카드사용 등 소비자들의 기본적인 요구사항 조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상인들은 대형마트 때문에 상권이 몰락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재래시장 전체가 변하지 않는 한 결국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충고했다.
<그림1>대형마트와의 차별화가 우선돼야
이처럼 유씨가 언급한 사항은 재래시장 전반에 걸쳐 고질적인 문제로 언급 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원인에 대해 박영근 창원대학교 경영학 교수는 재래시장의 노후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박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재래시장은 개설시점이 20년 이상 된 점포들로 구성 돼 있고, 무질서하게 밀집해 있는 점포들은 보수나 재건축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재건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재래시장 상인회를 중심으로 시설현대화와 친절교육으로 재무장함으로서 재래시장을 활성화 시켰다”며 “더 나아가 대형 유통점들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감성적인 교감을 채워주는 특화사업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 예로, 일본의 스가모 지조토리(동경) 시장은 전통사찰과 연계한 지역의 역사 문화를 전수하고 점포종업원도 중장년층을 채용하는 등의 특화사업으로 노인층의 고객층을 확보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박교수는 “일부 재래시장에서는 아케이드와 같은 구조물들을 철거하고 옛 점포의 형태로 복귀하고 있다”며 “이제 일본 소비자들은 정형화된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정을 나누면서 쇼핑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를 재래시장 상인들에게서 찾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재래시장이 침체된 데는 할인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점의 입점이 아니라 소비자의식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소비자들은 깨끗하고 친절하며 한 곳에서 필요한 제품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시장을 원하고 있으며, 주차하기 편하고 문화적인 편의시설들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재래시장 전체의 변화를 촉구했다. 재래시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정부의 예산 지원만이 아니다. 손님을 맞는 상인들의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 재래시장 상인회가 운영하는 ‘상인대학’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상인들의 의식구조를 바꿔야 살아남는다는 위기감 속에서 도출 된 것이다. 그러나 재래시장을 찾은 대부분의 시민들, 특히 깍듯한 예절을 갖춘 대형마트에 익숙해진 젊은 소비자들은 이런 재래시장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 방학동 도깨비 시장을 찾은 기자가 물건 값을 묻자, 1천500원, 2천원 등 퉁명한 대답만 돌아왔다. 이에 대해 “교육이 철저한 대형 유통점과 재래시장은 손님맞이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상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은 소비자가 협박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정부 제일시장번영회 김진권 회장
“자생력 갖출 때까지만 대형마트 입점 연기해 달라”
의정부시 제일시장은 지난 10월, 2006전국우수시장박람회에서 전국 1천717개 재래시장 중 우수시장으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의정부시 제일시장은 2002년부터 29억원을 투입, 아케이드설치, 노후시설 개선 등 시설현대 사업추진과 함께 상인대학을 통한 지속적인 상인교육, 각종 이벤트 행사 개최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었다. 물론 눈부신 도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꾸준히 시설 확충에 노력하고 있는 의정부제일시장 번영회 김진권 회장을 만나 제일시장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의정부 재래시장이 국무총리 상을 수상했다. 어떤 이유에서라고 생각하나.
78년에 문을 연 제일시장은 현대화도 가장 빨랐다. 이 때문인지 안이한 생각을 갖게 되었고 결국 몰락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과 민자 유치를 통해 아케이드 설치와 고객동선 확보, 소방통로 및 승용차 진입로 등을 확보 등 장기적 안목을 갖고 실시한 여러 가지 일들이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 또, 어두웠던 점포와 점포 사이를 환하게 밝힌 것, 올해 전국 26개 시범시장에 선정되어 국비 1억원을 지원받아 카트기 구입, 택배시스템 구축 등 부족한 편의 시설을 꾸준히 확충하고 있는 것 등이 큰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뿐 아니라 제일시장만의 특화사업을 위해 생선코너와 휴식공간마련, 세일행사 등 재래시장의 변모 된 모습을 강조했다.
재래시장 상품권 판매율이 저조하다. 시 예산 낭비만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데, 대안이 있는가.
재래시장 상품권이 살기 위해서는 할인이 된다거나 적립금 등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현찰과 마찬가지인 상품권을 누가 굳이 바꿔서 사용하겠나. 5000원 짜리 상품권을 사용하면 2~3백원이라도 할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재래시장에 대한 투자는 많지만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는 정부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돈을 투자해서 살아날 수 있는 시장에 투자를 더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균등한 지원이 아닌 차등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동인구가 10명인 곳과 100명인 곳에 똑같은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 같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투자는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카드사용과 현금영수증 발급이 되지 않는 곳이 많다. 이로 인해 고객들이 재래시장을 외면한다는 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정부 정책이 원칙이고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해도 무관하다. 물론 금액이 크고 남는 게 많은 상점이야 카드 받는 게 어렵지 않지만 10%남기고 장사하는 상인들이 카드 받으면 남는 게 뭐가 있겠는가. 이 문제는 상인들의 의식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고, 정부가 단속에 나서는 것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형할인마트가 의정부역에 들어 올 예정이다. 현재 의정부시에는 입점예정인 마트 외에도 4곳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는가.
당연히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반대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현재 있는 마트야 어쩔 수 없지만 의정부역에 들어 올 마트의 입점시기를 좀 늦춰주길 바란다. 현재 제일시장이 정부의 도움과 상인들의 단합으로 탄력을 받고 성장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된다. 제일시장이 어느 정도 자생력을 키워 경쟁할 수 있게 되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장경영센터에 따르면 재래시장 육성화에 따라 전국에 1만4천여개 빈 점포가 없어졌다고 한다. 결국 1만4천명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준 것 아닌가. 더 크게 보면 점포를 갖고 있는 상인 대부분이 4~50대의 가장이고, 이들이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까지 더 하면 4만여명 이상의 생계를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자리 창출이 어디 있는가. 앞서 언급한 대형마트가 들어온다고 해서 이만큼의 일자리가 창출 될 것이라고 보는가? 절대 아니다. 대형마트에 정직원은 4~50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결국 재래시장 활성화를 통해 서민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