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 안에 살면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 나갑니다. 성령의 열매가 하나하나 맺힐수록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진리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립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을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요한일서 4:7~8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근본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도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있고,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에도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랑과 세상에 속한 육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에 그에게 주셨던 사랑은 영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가 들어와 영이 죽고 난 후부터는 육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대가를 바라며 자신의 유익에 따라 쉽게 변하기도 하고 배신도 합니다.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바로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나오는 사랑이지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합니다. 이러한 사랑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 바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사랑’입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이지요.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아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6:23). 이러한 저주에서 속량을 받으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은 바 되어 나무에 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갈 3:13)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심으로써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 또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생명 다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를 위해서도 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서도 생명을 주는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마음의 죄와 악과 불법을 버림으로 성결을 이뤄야 합니다. 성결을 이룬 마음에서 참된 사랑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마다 신속히 성결을 이루어 사랑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장 8절) 글: 이재록 목사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