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미국과의 2015 프리미어12 결승전 선발투수로 김광현(27·SK)을 선택했다. 예상 외의 선택이었다.
3경기 1승 평균자책점 1.26(14⅓이닝 2자책점) 10피안타 3볼넷 12탈삼진. 한국 야구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본선에서 김광현이 거둔 성적표다. 프로 2년차에 그는 '국제용 투수', '일본 킬러' 등의 칭호를 얻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가 2015 프리미어12에서 거둔 성적은 2경기 1패 평균자책점 5.14(7이닝 4자책점) 9피안타 4볼넷 8탈삼진이다.
이번 대회에서 2번 실패한 그가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받았다. 대표팀 선발투수 중 3경기에 등판하게 되는 것은 김광현이 유일하다.
지난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개막전에 김인식 감독은 김광현을 선발로 내세웠다. 국제 대회 경험이 풍부했고, 본인도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에서 1⅓이닝 8실점 굴욕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광현은 아쉬운 수비와 불운이 겹치며 2⅔이닝 2실점에 그쳤다.
김광현 역시 일본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2번째 경기에서도 그는 반등하지 못했다. 15일 열린 미국과의 예선 5차전에서 김광현은 4⅓이닝 2실점으로 조기교체됐다.
두 경기 모두 비슷한 패턴이었다. 경기 초반의 호투 이후 갑작스러운 난조가 찾아왔다. 특히 미국전에서는 3회까지 9타자를 연속 범타처리했지만 5회가 되자 난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김광현에 대한 신임을 견지했던 김인식 감독 또한 어느정도 한계를 인정했다. 김 감독은 김광현이 부진 원인을 묻는 질문에 "슬라이더는 다들 익숙한 구종이다. 역시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 같은 구종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즉, 체력적인 문제보다는 직구와 슬라이더 두 가지에만 의존하는 투구의 한계라는 것이다. 타순이 돌면서 타자들이 공에 눈이 익으면 어렵지 않게 공략이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20대 초반, 국제전에서 김광현은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나오는 150㎞ 강속구와 KBO리그 최고 수준의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요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그때 만큼의 압도적인 구위가 나오지 않고 있다.
김광현도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지난 4일 쿠바와의 평가전에서 3이닝 무실점 투구를 했던 그는 슬라이더 뿐만 아니라 체인지업과 커브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다른 무기 연마에 매진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되는 것은 아니다. 14일 멕시코전을 앞두고는 "내가 타자들 집중력을 떨어지게 하나보다. 세레모니도 하면서 집중력을 끌어올려야겠다"며 답답한 심경을 은연 중에 내비쳤다.
그는 다시 한번 김인식 감독에게 기회를 얻었다. 명예 회복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타순이 한 바퀴 돌자마자 무섭게 자신을 공략해냈던 미국의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을 상대해야 한다.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총력전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조기 교체를 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팀에서 최고의 호투를 펼치고 있는 장원준(두산)이 이른 진화에 나설 수도 있다.
다만 그럴 경우 '국제용 투수' 김광현의 명성은 회복할 길이 요원해진다. 베테랑 국가대표 투수 김광현이 결승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