않는 ‘눈’
첨단기술에 의한 노동자 감시 심각, 명확한 대응 필요
“회사에 출근하면 마치
내가 짐승이 된 기분이다. 교도소에서도 주위 외벽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어도 모든 행동을 감시 받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8월 CCTV설치로 노사갈등을 겪었던 전북 익산 (주)대용의 한 노동자는 조합 주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 같은 진술을 했다.
이외에도 (주)대용의 60여명의 노동자가 스트레스와 두통, 근육통 증세를 호소했다. 의사로부터 ‘망상적 급성 정신병적장애 추정’ 진단 판정을
받은 노동자도 있었다.
이 같이 노동 환경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작업장 감시 사례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직원의 컴퓨터를 압수해 함부로 이메일을 열람하거나
요양 중인 산업재해 노동자의 행적을 비디오로 몰래 촬영하는 등 ‘무자비한’ 감시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감시도구도 첨단화되는 추세다. △CCTV, 몰래카메라 등의 영상시스템 △GPS, 핸드폰 위치추적 등의 위치추적시스템 △IC칩 카드, 엑티브
배지 등의 전자카드 △지문, 홍채, 정맥 인식기 등의 생체인식기 등의 도입으로 현재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감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위성에 의한 원격감시나 투시감시 등으로 감시대상자가 감시 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초정밀 감시가 가능하며,
대량 감시 또한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감시통제 방법
영상시스템은 그 중 가장 널리 확산돼 있다. 노동통제이자 사생활 침해의 문제를 안고 있는 감시카메라는 특히 병원이나 버스에 설치된 경우
시민들의 사생활과도 관계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망의 급속한 확장으로 인터넷과 이메일 감시 또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다. 노동조합 홈페이지가 투쟁의 공간으로 이용되어지자 사측은
첨단기술을 도입해 사내망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자신분증 역시 생산직과 사무직을 가리지 않는 노동자 통제감시 시스템으로 사용되고 있다. 98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는 RF카드를 출근부
대신 지급해 노동자들의 몸에 부착하게 했다. 노동자들이 판독기 옆을 지나기만 해도 출퇴근 여부는 물론, 특정 장소를 출입했는지 여부, 출입시간
등의 정보가 자동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거래소 상장기업 및 코스닥 등록기업 총 1,494개 중 656개 기업이 도입한 전자적 자원관리시스템은 각각의 기계에 전자정보센서를 부착하여
개별 노동자의 정보를 자동으로 확인하는 기술이다. 개개인의 휴식시간, 작업시간, 생산량, 생산속도, 불량률, 작업장 내 현재 위치 등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자율성이 심각히 축소되며 노조활동도 차단된다는 문제가 있다.
노조탄압에 이용
감시기술 사용자는 절도나 기물파손을 방지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고 법적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감시 장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 노동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월 1일 노동자감시근절연대모임이 주체한 ‘첨단기술에 의한 노동자 감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의
이황현아씨는 “작업장감시 문제는 존엄성과 노동권 문제다”고 역설했다. 이황현아씨는 감시 장비가 ‘신종 노동탄압’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감시 장비가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징계와 해고 등에 이용되고 있다”며, “특히, 노동자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하여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와 통제 없이도 노동자가 알아서 ‘자기통제’를 하도록 이끌어 낸다”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감시장비에 대한 우선적 권리는 노동자에게 있으며, 노동자 스스로 감시시스템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김승만 사무국장은 자신의 이메일이 감시되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이메일 감시에 동의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하고 증거를 최대한 확보할 뿐 아니라
자세한 정보를 사측에 요구해야 한다”며 행동지침을 제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은우 변호사는 “외국에 비해 국내에는 노동자 감시에 대한 구체적인 관련 법률이 없다”며, 규제입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변호사는 입법체계에 대해서는 노동자 감시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은 법률에서 규정하되, 상세한 내용은 법의 위임을 받은 반감시위원회에서
규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반감시’를 넘어 ‘역감시’로
노동자감시는 사생활 침해를 넘어 권력의 문제다. 최근의 감시는 개인보다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경향이 많다. 오늘날 정보기술은 개인의 비밀
정보를 대량 수집할 수 있게 했으며, 수집된 정보의 전송을 용이하게 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정보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수집한 정보는
간단히 체계화할 수 있으며, 정보를 장악한 자는 언제든지 개인의 정보를 쉽게 검색 출력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정보불평등이 강화되고 권력관계의
일방성 또한 심화된다.
정보화, 자동화시스템 등의 첨단기술은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생산성을 높여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발전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기술은
감시통제로 이용됨으로써 오히려 노동자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황현아씨는 “70~80년대까지 노동자들은 퇴근시간에 몸을 수색하는
반인권적 노동자통제에 맞서 싸워왔다. 그러나 회사는 이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의 주머니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수색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황현아 씨는 앞으로 도입될 감시장치에 대해서는 협약을 명시하는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 ‘감시를 받지 않을 권리’를
달성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감시’를 넘어 노동자 민중에 의한 ‘역감시’를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인규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