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사건 추리, 네티즌 잠 설친다
법의학 전공자, 인테리어 전문가, 무당 … 그럴듯한 제보 잇따라
개
구리소년 사망 사건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미스터리한 범죄다.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실종사건이 11년만에 와룡산 그 자리에 사체로 발견된
것 자체도 놀랍지만, 머리를 흉기로 여러번 찔러 죽인 잔인한 범행 방법이나 유품이 일부만 발견된 점, 무거운 돌 밑에 유골이 깔려 있었던
점 등 의혹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11월 12일 개구리소년이 타살됐다는 결론이 나고, 전면 재수사에 들어가면서 경찰은 1,000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시민의 제보를 요청했다.
이후 대구지방경찰청과 경북대 법의학 교실에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 많지만, “추리에 고심하느라
요즘 잠을 잘 못 잔다”는 네티즌도 꽤 있는 것으로 보아 사건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있다.
특이한 현상은 법의학이라는 전문적인 분야가 이번 계기로 폭넓은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무당의 심령술과 예지력까지
세간에 널리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과 호기심의 결과다.
가위, 포크, 야삽, 등 각종 도구 거론
경북대 법의학교실(http://155.230.
148.174/)과 대구지방경찰청 사이트 게시판( http://www.dgpolice.go.kr), 네이버 토론방(http://news.naver.com/
board.php?id=news_dis27) 및 다음의 법의학 카페(cafe.daum.net/egalmedicine)
등은 개구리소년 사건에 대한 추론과 제보들이 올라오는 대표적인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 글을 쓰는 네티즌 중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나 법의학 전공자들도 많다. 특히, 두개골에 난 흔적에 대해서는 실험을 하거나 당시
도구를 추정해 자문까지 구하는 적극적인 네티즌도 눈에 띈다.
네티즌들이 추정한 범행도구는 다양하다. 낫, 포크, 야삽, 곡갱이, 아이젠, 못 등 여러 가지 도구들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제시되고 있다.
도구에 따라 범인을 추리하기도 하는데, 등산도구는 등산객, 낚시도구는 낚시꾼일 가능성을 타진하는 식이다.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는 범행도구는
포크이고, 이에 따라 범인은 10대 불량배라는 추정이 떠오르고 있다.
칼 같은 일반적인 살해 도구가 아닌, 뽀족한 무언가로 여러 차례 상해를 입힌 것으로 보아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 이 가설의 일차적 근거다.
개구리소년들의 유품 중 동전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잔돈까지 뺏어갈 부류를 상상하게 한다. 두개골에 수많은 상처는 10대 특유의
잔혹함이라는 것이 네티즌들의 설명이다. 담뱃불로 피부를 지지거나, 면도날로 얼굴을 비비는 종류의 범행이라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당시 와룡산은
불량배나 본드 흡입자가 주로 찾는 우발지역이었다는 사실이 10대의 범행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10대가 과연 비밀을 통제하고
범행을 은닉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네티즌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얻었던 도구는 가위다. 권경열이라고 자신을 밝힌 제보자는 이가 엇갈린 쪽가위로 나무를 내리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됐다. 나무에 찍힌 자국은 길게 가로로 찢어진 X자 모양으로 상흔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관련직종으로 평소 도구를 많이 쓰는 권씨는 알고 있는 도구를 총망라하며 자국을 대입 시켜봤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개골의 상흔에 촛농을 채워 굳은 후 꺼내보는 방법이었다. 물론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다. 굳은 촛농을 깨끗이 뜯어낸다는 상상을
했고, 권씨는 그것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옮겼다. 그래픽을 보고 유추해 낸 결과 가위라는 결론이 나왔고, 나무와 얇은 함석에 내리쳐 비슷한
자국을 얻었다. 실험 사진을 올리자마자 권씨에게 언론사와 경찰의 전화가 쏟아졌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도 “범행도구를 찾은 것 같습니다”
“네티즌이 범인을 잡는다” 등 흥분한 반응을 보였다.
국가기관이 사건에 얽혀있다?
인터넷에서는 제보 이외에 사건과 관련된 황당한 상상이나 음모론도 많이 떠돈다. 특히, 군인과 경찰, 법의학팀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네티즌이
상당수다. “군인이 범인이다” “경찰의 오발 사고다” “법의학팀이 상처를 조작했다”는 등의 가설은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네티즌이 이처럼 음모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허술한 수사 방식 때문이다. 경찰은 11년 전 사건을 단순 가출로만 단정하고 초동수사를 소홀히
했다. 유골이 발견되고 나서는 자연사를 부각시키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찰과 법의학자가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덮으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의혹은 ‘군인이나 경찰, 또는 국가 권력이 범인이다’라는 근거 없는 상상으로 발전했다.
유골과 현장을 훼손한 경찰의 거친 발굴작업이나 법의학팀의 자연사라는 섣부른 판정 등을 일부 네티즌은 사건 은폐를 위한 의도적 행동으로 믿고
있다. 이에 대해 법의학팀은 난색을 표했다. 법의학팀은 우철원군의 두개골 구멍이 총상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발표한 바 있다. 경북대학 법의학교실
채종민 교수는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고, 인근에 주둔했다는 이유만으로 군부대가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군의 명예는 이미 훼손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연사로 몰고 가다 뒤늦게 타살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채 교수는 “나로서는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해명했다. “11년이나 지난 데다가,
지표면에 불과 10∼30cm 깊이로 매몰된 유골을 분석하기는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 채 교수의 설명이다. 유골의 상처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사후 짐승의 이빨 자국이다, 경사면의 돌들이 굴러 떨어지면서 낸 골절이다, 매몰된 후 약초를 캐는 주민들에 의해
발생한 호미와 낫 자국이다 등 갖가지였다. 생전 손상과 사후 손상을 구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말이다.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로 밝힌다?
미국과 일본의 학자들과 첨단 장비가 동원된 법의학으로도 사건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하자, 일부 네티즌은 비과학적 방법에도 귀를 기울이자고
주장한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실종 초기부터 의혹이 가득했기 때문에 사체 발견 이전부터 무속인들의 제보가 넘쳤다. 그 중에는 와룡산 중턱에 시신이
묻혀있다는 주장을 한 무당도 있었다. 역술주간지를 통해 알려진 초능력자인 차혜숙(50) 씨와 무녀 배민선(45) 씨도 개구리소년들이 묻힌
장소와 사체 상태를 정확히 예견했다. 차씨와 배씨는 범인을 지목하기도 했는데, 면식범으로 젊은 여자와 남자이며, 남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등의 내용이다. 최근에는 “범인은 12월 안에 잡힌다”며, 주술적 의식을 치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항을 추가하기도 했다.
장기간에 걸쳐 떠오르는 이미지를 인터넷에 올린 한 무당은 사건 전반에 대해 소름끼치도록 상세한 묘사를 해 놓아 논란을 일으켰다. 무당의
주장에 의하면, 개구리소년 중 한 명이 살인 사건을 목격했고, 이 때문에 모두 납치돼 가정집에 1년 가까이 갇혀 있었다. 유골과 유품의
일부가 아직 그 가정집 앞마당에 묻혀 있으며, 와룡산에 사체를 묻은 사람은 범인과 동일인이 아니다. 무당은 범인은 일본에 2명, 교도소에
1명이 있고, 유물을 옮긴 범인은 20대 청년으로 서울에 있다.
이 같은 믿기 어려운 초능력자들의 제보에 대해 몇몇 네티즌은 “FBI도 예지능력자를 써서 범인을 검거한다” “미신이라고 비웃기 전에 무엇이든
해 보자”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제보 중에는 도움이 될만한 것도 있고, 모든 가능성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제보 내용을 일일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