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먹고 후식은 이웃사랑
음식 한 그릇당 50원씩 모아 불우이웃 돕는 강준기 씨
풀빵장사와 채소행상으로 모은 5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생활보호대상 할머니, 20년간 꽃동네 사람들에게 성금을 기부한 환경미화원.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신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모습은 메마른 현대사회의 단비다. 본지는 평범한 이웃의 미담을 진솔하게 그려내,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선행 릴레이’를 기획했다. 비판과 고발 못지 않게 작은사랑의 실천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편집자 주> |
동두천의
한 중국음식점. 여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가게다. 안으로 들어서면 30평 남짓 되는 공간에 식탁과 의자가 놓여져 있고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점원들이 보인다. 그리고 카운터 옆 한쪽 벽면에 빨간 바탕에 흰글씨로 무언가 적혀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음식 한 그릇당 50원씩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여집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함이 있는 이곳 ‘만리향’의 주인 강준기(46세) 씨가 웃으며 다가왔다.
97년 수재민에게 무료급식한 것이 계기
“올해는 모금액 1백4만4,050원과 사비를 합쳐 주변 보육원 두 곳에 내의를 선물하려고요. 학생들이 색깔 예쁜 걸 좋아한다니까 잘 골라야겠어요.
어제 치수와 수량를 적어 왔죠.”
강 씨는 메모를 보여주면서 수량을 꼼꼼히 체크했다. 단지 물건만을 던져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세심한 사랑까지 담아내는 모습이다.
강준기 씨가 처음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7년 여름이다. 당시 동두천은 물난리가 나서 많은 곳이 침수됐다. 다행히 강 씨 가게는 피해를
입지 않아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주문은 밀렸고 가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나 수금된 돈은 거의 없었다. 직원들이 차마
돈을 받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강 씨도 피해상황을 보고는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료급식이었다.
“그때는 이익을 생각할 틈이 없었어요. 그들이 있어야 우리도 있는 건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요?”
무료급식은 1주일간 진행됐고 2,000여 만원의 손해가 났다. 재료값이 비싸진데다 평소보다 오히려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손해가
더 컸다. 강 씨는 그 동안 붓고 있던 적금까지 해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러한 선행에 칭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도
없으면서 너무 나서는 거 아니냐?”라는 핀잔도 들었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조금 섭섭하기도 했죠.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거든요. 한때의 쇼로만 보이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지금의 음식값 50원씩 적립이었어요.”
군인들이 만원을 놓고 가기도
그날부터 간판을 내걸고 모금이 시작됐다. 매월 모인 금액을 대자보에 붙여 손님들에게 알리고 연말에 그 돈으로 불우이웃을 도왔다.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도 기록해서 붙여놓았다. 손님들에게도 이웃을 돕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같은 일이 알려지면서
의정부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고 소요산 등산객들이 일부러 들러서 먹고 가는 일도 있었다. 노인이나 군인들이 음식값 외에 만원을 식탁
위에 놓고 가기도 했다. IMF가 터진 이후에는 주변 다른 업소들이 문을 닫았지만 이곳 ‘만리향’은 장사가 더 잘 됐다.
“저도 많이 놀랐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내가 남에게 베풀면 이렇게 배가 되어 돌아오는구나’라고요.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새삼 더 열심히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내놓은 성금은 98년 400만원, 99년 500만원, 2000년 300만원, 지난해 400만원 등이다. 적립금과 사비를 합쳐 기부한다.
돈으로 직접 주기보다는 기름이나 내복 등의 물건으로 대신하고 주로 노인과 어린이를 위해 사용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저도 초등학교 5년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2달정도 보육원 생활을 한 적 있거든요. 그때 너무 배고프고
힘들었어요.”
아들도 어려운 친구 급식비 몰래 내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고등학교 졸업 후 독일에 가 요리사로 목돈을 모은 강 씨는 서울에 와서 중국음식점을 차렸다. 그러나 석달만에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리고 총재산 600만원을 가지고 동두천으로 오게됐다.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한 강 씨는 그래서인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악으로 버텼지요. 제가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남같지가 않아요. 가끔은 집에 편히 앉아 있을 때도 보육원 애들이 눈앞에
아른거려요.”
강 씨를 닮아서 중학교1학년인 아들도 남 돕는 일에 앞장선다. 한번은 이유는 말하지 않고 4만3,000원을 달라는 아들에게 믿고 돈을 준
적이 있었다. 2달 후 우연히 아들의 메일을 보게된 강 씨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학우가 급식비를 내줘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강 씨는 조용히 선행을 베푼 아들이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또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면 자식도 따라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지금도 공부하라는 말은 안합니다. 머리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이니까요. 저를 믿고 이해해주는 아이가 무척 고마워요.”
강 씨의 가족은 그가 봉사활동 때문에 가족모임에 빠지거나 소홀한 것을 이해해준다. 특히 아내는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업자다.
“제가 빚을 져가며 무료급식을 했을 때도 아내는 묵묵히 따라 주었어요.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일해줬죠. 지금도 제가 하는 일에 늘
찬성하고 도와줘요.”
빠듯한 살림에도 강 씨가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가족들의 성원 때문이다. 평생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의지도 가질 수 있게 했다.
“남을 한번 도우면 계속 할 수밖에 없게 돼요.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찌릿한 게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분이 있거든요,
이것도 중독인가봐요. 아마 죽을 때까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봉사는 계속 할 거에요.”
물질적 도움보다 애정이 중요
그는 물질적 도움만이 전부는 아니라며 그들과 함께 놀아주고 대화하는 것도 좋은 봉사방법이라고 했다. 연말이면 라면박스만 던져놓고 기념촬영에만
신경쓰는 사람들을 한심해했다. 그래서 강준기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보육원을 찾아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정을 나눈다.
“아이들은 물질보다 애정을 더 필요로 해요. 모금한 돈만 전달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저 외에도 도움주시는 따뜻한 분들의 마음을 모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그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단순히 돈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까지 전하는 강준기 씨. 그는 매일 이웃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한다. 가게 안에 얼마전 설치한
커피자판기도 이익금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기 위한 강 씨의 아이디어다.
“제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에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음은 있는데 여건이 안되고 어떻게 할 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거에요. 남을 돕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마음만 있으면 돼요.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방법은 많을 거에요.”
대화를 마친 후 주방으로 서둘러 들어가 음식을 만드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강 씨의 넉넉한 마음이 담겨서인지 ‘만리향’의 자장면은 유난히
윤기나고 푸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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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