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릴레이(3)>
무료이발, 직업알선
등 봉사대장 천팔용 경사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경찰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가끔 나쁜 면만 비추기도 한다. 비리를 일삼고 무고한 시민을 폭행하는 모습은
자칫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적’이라는 고정관념을 낳기도 한다. 서대문경찰서 천팔용(47) 경사는 이러한 인식을 무참히
짓밟고 ‘시민과 함께 하는 경찰’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대표자다.
“우린 모두 똑같은 사람”
천 경사는 서대문구 문화공원을 비롯해 이 지역 일대 공원과 노인정에서 무료이발을 하고 있다.
비번인 날이면 바리깡과 빗, 거울을 들고 손님을 찾아 나선다. 대충 깎는 게 아니라 6개월 미용학원을 수료한 솜씨로 성의껏 ‘작품’을 만든다.
단지 머리를 깎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 나누는 즐거움 때문에 오는 노인들이 많다.
“처음엔 혼자 시작했지만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20명”이라며 내심 흐뭇한 표정을 짓는 천 경사는 “노숙자도 천대하지 않는다”며 봉사대상에
구분이 없음을 강조했다. 사실 노숙자는 큰맘 먹지 않으면 다가가기 힘들다. 오랜 거리 생활로 악취가 나고 머리는 기름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 경사는 그들의 머리도 정성껏 자르고 공중화장실에서 감겨주는 배려까지 한다.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면 안되지 않습니까? 우린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무료이발 외에 천 경사는 서대문구에서 빈곤층과 독거노인이 가장 많이 거주한다는 홍제3동 일명 개미마을 20여 가구를 돌보고 있다. 어려운
박봉에도 사비를 털어 쌀과 연탄, 내복 등을 제공하고 실업자들에게 취업을 알선해준다. 특히 연탄가스로 가족 모두를 잃은 할머니, 가족에게
버림받은 할아버지 등 혼자 사는 노인에게 마음이 쏠린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대합니다”라는 천 경사는 1990년 모신지 1년도 안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그러다
무료급식소에서 어머니와 너무나 닮은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고 그녀가 정신이상 환자 두명과 고아 한명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뽑기장사와
구걸을 해서 남을 보살피는 할머니는 천 경사의 마음을 울렸고 그가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실버타운 설립이 최종 목표
천 경사는 “실질적으로 지원받아야 할 노인들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짚으면서 “서류상에는
가족이 있지만 실제로는 홀로 끼니를 때우는 노인이 많다”고 말했다. 봉양할 가족이 있으면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버림받은 노인들은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또 “지역구에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해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국가정책으로만
미룰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천 경사는 앞으로 염하는 법을 배워 노인들이 돌아가실 경우 손수 장례를 치러드릴 계획이다. 조만간 승합차를 구입해 자원봉사자들을 태우고
원하는 지역이면 어디든 달려가 무료이발도 할 것이다. 최종 목표는 고향 경북 구미에 실버타운 설립이다.
“할아버지가 전쟁고아를 돌보셨고, 지금은 사촌형들이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집안내력인가 봅니다.”
봉사하는 것이 즐겁다는 그는 진급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막기 위해 경찰 본업에도 충실하고 있다. 북아현동에 근무할 당시 4개월만에
강도 2명, 절도 8명을 체포하는 등 표창도 많이 받았다. “상은 이제 마다하고 싶습니다”는 천 경사는 봉사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우리의 경찰관’이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