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가둬둘 순 없다”
노 당선자 취임 앞두고 양심수 사면 이슈…
한나라당 등 일부 야당은 발목잡아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그렇지만 감옥의
체감온도는 아직 영하권입니다. 양심을 가둬둘 순 없지 않습니까? 수많은 양심수가 가족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전 상임의장 임기란 씨는 2월6일 458회째 목요집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눈비에도 아랑곳없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면 서울 종로 탑골 공원을 찾는 양심수 가족들. 자식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길가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들의 사정을 호소하며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하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인권 정부 선언 위해 양심수 석방해야”
민가협 발표에 따르면 2003년 1월9일 현재 양심수는 총 63명. 학생이 24명, 노동자가 28명, 재야인사들이 11명이다. 이들의 죄목은
국가보안법과 노동관계법 위반이 대부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2,204명의 양심수가 양산됐다. 이 가운데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은
1,045명에 달하고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람도 626명이나 된다. 전체 구속자의 76%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수감된 양심수들 중에는 중병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 1998년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돼 7년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중인 박경순
씨는 간경화를 앓고 있는 중증 환자다. 구속 이후 병세가 악화돼 위험한 상황을 수차례 겪으며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고 있다.
2000년 방북사건으로 구속돼 4년형을 선고받고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인 김대원 씨는 지난해 9월 전북대 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은 결과 ‘양극성
정동장애’ 판정을 받았다. 정상적인 수형생활이 어렵다는 의사의 소견도 있었다. 하지만 전주지검은 형집행정지 기각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수감이래
독방생활을 하고 있다.
양심수 가족들은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노무현 정권에 큰 희망을 갖고 있다.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은 “인권회복과 증진의
상징적인 조치로 ‘양심수 석방과 대사면’을 단행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벌써부터 찬서리를 맞고 있다. 노 당선자측이 취임식에 맞춰 양심수 사면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었으나 일부 야당과 언론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 이들은 사면권한이 당선자에게 없다는 점과 양심수라는 표현을 문제삼았다. 특히 양심수가 없다는 것이 현 정부의 공식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 활동과 노동쟁의를 벌이다 구속된 사람들을 양심수라 표현하며 사면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양심수는 “폭력을 주창하거나 직접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신념이나 인종 언어 국적 사회 경제적
지위 때문에 감금된 사람들”을 뜻한다. 이 때의 신념은 어떤 내용의 것이든 상관없다. 일부에서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들이 왜 양심수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강남성모병원 파업으로 4개월여 동안 수형생활을 했던 황인덕 씨는 “노동조합법에 직권중재 조항이 있는데, 이는 노동계의 ‘국가보안법’”이라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파업을 하면 곧 불법파업으로 간주돼 범죄자가 된다”고 말했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병원, 발전소, 철도
등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30일 동안 쟁의행위를 금지한 뒤, 직권중재안이 나오면 아예 파업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제 목소리를 전혀 낼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매년 한국의 노동법에 대해 시정 권고를 해왔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최병모)은 2월6일 대통령직인수위 김병준 간사와 박범계 위원을 만나 ‘양심수 전면 사면안’이 포함된
‘노무현 정부의 인권정책에 대한 제안서’를 제출했다. 민변은 “노무현 정부가 스스로 인권을 위한 정부임을 선언하기 위해서라도 양심수에 대한
전면적인 석방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